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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여울의 나란히 한 걸음오래된 골목길의 아름다움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도시
정여울 『감수성 수업』,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2025년 04월호

 
저 골목길을 굽이돌아 걸어나가면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톨레도의 골목길 곳곳을 걸으며 나는 골목길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새삼 깨달았다. 멀리서 바라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든 골목길에 저마다의 생생한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시간의 흔적들이 마치 수백수천 겹의 페이스트리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골목길을 걷는다는 것. 그건 미지의 시간 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의 설렘처럼 다가온다. 유난히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는 톨레도 곳곳을 걷다 보면, 겹겹이 스며 있는 시간의 결을 느끼느라 온 마음의 모공이 열리는 듯하다. 워낙 오래돼 칠이 벗겨진 간판조차도, 갈라진 벽돌 사이로 마치 케이크의 시트를 쌓아 올리듯 층층이 올린 흙벽들까지도, 소중한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져 그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유럽에서 만난 우리 마을 골목길의 정겨움

내게 ‘골목길의 아늑함’을 가르쳐준 최초의 도시가 바로 톨레도다. 분명히 실외에 있는데 어딘가 안전한 실내 같기도 한 아늑하고도 따스한 느낌. 톨레도의 골목길은 그런 따사로운 감수성을 선물해 주었다. 대로변은 너무 탁 트여서 확실히 실외라는 느낌을 주지만, 오래된 벽돌로 단단히 쌓아 올린 성벽 같은 옛 골목길을 걸으면 실내의 아늑함과 실외의 개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 게다가 톨레도의 옛 골목길에는 역사적 흔적이 가득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옛 도시의 골목길을 걸으면 그 길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하다. 어쩌면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쓰던 시절, 위대한 화가 엘 그레코가 세계 3대 성화 중 하나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그리던 시절, 한때 유럽 최고의 제철수공업으로 이름을 날리던 톨레도의 옛 장인들이 칼과 온갖 금속 장식을 만들어내던 시절까지. 그 모든 역사의 흔적이 톨레도의 고풍스러운 골목길 곳곳에 아련하게 스며 있는 듯하다.
 

 
빌딩 숲으로 가득한 대로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 골목길 특유의 아늑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가 톨레도의 골목길에서 경험한 아늑함이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이 살던 작은 골목길의 아늑함과 비슷한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골목길은 마을공동체라는 더 커다란 세계와 어린 나를 연결해 주는 공간이었다. 집이나 카페처럼 정해진 장소는 아니지만 ‘걸어 다니면서 무언가를 직접 만나는 공간’이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마주하는 풍경과 소리는 실로 다채로웠다. ‘엄마는 잘 지내시니?’ 하고 따스한 안부인사를 건네오는 동네 사람들,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이 좁은 골목길을 놀이터 삼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얼음 땡’을 하며 신나게 노는 장면들. 어느 집에서는 김치찌개를 끓이는 냄새가 나고 어느 집에서는 삼겹살을 굽는 냄새가 났다. 작은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그 정겨운 골목길은 여전히 나에게 ‘골목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을공동체의 흔적이자 삶의 현장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에 함부로 건물을 부술 수 없는 톨레도에는 아직도 골목길의 그런 정겨움이 살아 있다. 분명 한국이 아닌 스페인이지만, 내가 톨레도에서 ‘우리 마을 옛 동네’ 같은 아늑함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그 골목길만이 품어낼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따스함이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보편적 정서였기 때문이다. 
 

뭔가 이국적이면서도 하나의 고정된 양식에 집착하지 않는 듯한 톨레도의 독특한 건축과 문양은 아마도 ‘세 문화의 도시’로 알려진 톨레도의 오랜 역사 때문이 아닐까. 톨레도는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의 문화적 영향력이 섞여 있다. 세 문화는 충돌과 조화를 거쳐 이제는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때는 전쟁과 종교 갈등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거듭난 톨레도처럼 우리도 평화로운 공존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미래를 꿈꾸게 된다. 내 나라에 두고 온 일상에 대한 온갖 걱정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은 톨레도의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점점 평화와 안정을 되찾아 갔다. 톨스토이는 『나의 종교』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전 생애는 개인의 안전에 대한 염려와 삶을 위한 준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지금 현재를 위한 삶을 전혀 살지 않습니다.” 그 문장이 마치 불화살처럼 마음에 와서 아프게 박혔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일상은 온갖 걱정, 불안, 삶을 위한 엄청난 준비만으로 가득 차서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내는 것,
그 소중함을 일깨우는 도시


말갛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은 왜 이토록 어려울까. 온갖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지금, 여기’에 붙들어 두는 힘. 그것은 바로 다른 어떤 존재들과도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소중함을 붙드는 용기, 즉 ‘오늘, 여기를 사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톨레도에서 나는 그렇게 내 온 감각을 사로잡는 그곳, 골목길의 온갖 상점들과 발길에 와닿는 오래된 돌길의 감촉에 집중했다. 아직 오지 않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내는 것이 소중하지 않은가. 머나먼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가 저마다 살고 있는 이곳, 지금 여기가 아름답지 않은가. 지금 여기를 사랑하는 나, 지금 이곳의 삶 자체가 빛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톨레도의 골목길은 신비스럽게도 이런 치유와 안정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권태를 느낄 때마다, 나는 톨레도의 그 고색창연한 골목길을 생각한다. 아주 오래된 골목길이지만, 마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품고 있는 듯한 정겹고 소담스러운 골목길의 이야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기적은 매일 조용히 일어납니다. - 수술실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길가에서 낯선 사람의 갑작스러운 출현에서도. 그런 기적은 거의 집계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런 기적의 횟수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찬란한 기적은 저 머나먼 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 그 모든 우연과 필연을 거쳐 ‘지금, 여기’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따스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아직 무사하게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기적처럼 느껴진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 그것만으로도 감사와 축복을 느끼게 되는 도시. 아름다운 골목길로 가득 찬 축복과 감사의 미로, 톨레도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글·정여울 『데미안 프로젝트』,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저자
사진·이승원 『공방예찬』, 『학교의 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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