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디지털화로 인한 미국 기업들의 자국 복귀가 당장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진 못하겠지만
무인자동화를 구동하려면 AI 등 수많은 디지털화가 필요하므로 결국 소프트웨어 분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된다.
로마의 시저는 공화정에서 제정 형태로 정치구조를 전환하려다가 공화주의자들에게 피살됐다. 그가 왜 정치체제를 바꾸려 했는지 이해하려면 당시 로마의 경제·사회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로마는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그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군인이나 귀족 등에게 정복지를 분배해 줬다. 이들은 현지 주민이나 전쟁포로 노예들을 이용해 대규모 농장, 즉 라티푼디움을 운영했다. 그곳에서 생산된 값싼 농산물이 로마로 쏟아지며 로마의 자영농은 몰락했다. 그 결과 로마 사회는 중산층이 붕괴되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분열된 두 계층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했다. 이에 시저가 국론이 모일 수 있도록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통합된 정치구조를 조성하려다 시대 변화에 어두운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저지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때 결국 제정이 시작됐고 그 뒤를 이어 오현제 등 출중한 황제들이 등장해 팍스 로마나를 구현할 수 있었다.
글로벌 분업으로 무너진 미국 중산층,
생산 디지털화로 복원 가능성 열려
지난 50여 년 동안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경제는 눈부신 기술혁신 덕택에 발전을 거듭했으나 그 대가로 임금이 상승했다. 생산비 측면에서 산업 경쟁력이 약해지자 그 틈을 뚫고 처음에는 일본이, 그다음에는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그리고 중국이 차례로 들어섰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글로벌 분업구조를 형성했다. 미국 내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생산직으로 대변되는 중산층은 일자리를 잃거나 중국 노동자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반면 해외 현지 생산에 투입되는 기술, IT, 금융 분야의 종사자들은 고소득층으로 도약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계층 간 화합에 금이 갔고 분열과 반목이 점점 심해졌다.
지역적으로는 미국 중서부의 전통적인 산업지대가 피폐해졌고,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 서부 지역과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와 금융산업이 집중된 동부 지역에서는 경제발전이 가속됐다. 정치적 지형 또한 중서부와 동·서부 지역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양보와 타협으로 계층 간, 지역 간 통합을 이루던 미국의 정치는 날카롭게 대립하는 구도로 바뀌었다. 무너진 산업생산을 회복해 중산층을 복원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됐고 이를 실현하겠다는 정치인들로 권력의 추가 기울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들의 해외 생산을 비난하고 이들을 복귀시키겠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래 들어 실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생산방식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로봇에 의해 하루 24시간 연중무휴로 생산라인이 가동되고 초정밀 가공도 가능해져 품질이 높아졌다. 또한 AI가 시장수요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생산 작업을 제어함으로써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즉 생산성이 대폭 높아져 단위당 생산비가 극소화된 것이다. 따라서 굳이 낮은 생산비를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유인이 없어졌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 등 해외로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FDI) 통계를 보면 2010년대 초까지 엄청난 증가를 보이다가 이후 급격히 하락했다. 이 시점은 바로 생산의 디지털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미국 기업들의 복귀, 즉 리쇼어링은 일자리 창출과 이를 통한 중산층 복원을 지향하는 것인데 디지털화로 생산이 무인자동화된다면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생산공정 자체가 무인화되므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일자리 파괴를 부채질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인자동화를 구동하려면 AI 등 수많은 디지털화 작업이 필요하므로 결국 소프트웨어 분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 노동시장에서는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해 디지털화의 병목이 일어날 정도다.
미중 대립과 갈등 또한 미국 기업들의 복귀를 가속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시진핑 집권 이전에 이미 미중 교역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소비재를 수입해 오기 위한 중국 현지생산 투자가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 주된 요인이겠지만, 중국경제가 발전하면서 중국도 인건비가 올랐고, 중국 기업들의 생산기술 축적으로 미국, 일본, 한국, 대만 등으로부터의 부품·소재 수입 비중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 현지생산 이점이 소멸된 것이다. 이에 더해 미국의 지위를 무너뜨리려는 중국의 야심이 드러나 중국과의 국제분업은 용납하기 어렵게 됐다. 한때 중국에서 인도와 동남아 등지로 생산을 이전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돼 현재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미국이 중국과의 교역을 축소 내지 단절하기 위해 고관세 정책을 서두르는 가운데 관세가 부과되면 수입품 가격이 높아져 미국 내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타당한 우려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생산이 확대됨으로써 상승폭이 대폭 축소될 수 있을 것이다.
리쇼어링 기업의 수요에 맞춰 부품 소재
중심으로 대미 수출 전략 바꿀 필요
그렇다면 이 같은 글로벌 경제구조의 변화 추세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미 우리 수출시장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대거 이전하고 있고 대미 수출 증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품목별로도 미국 기업의 자국 내 생산시설 구축에 필요한 소재·장비 등의 수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그동안 우리 수출은 크게 보아 중국의 저가품 생산에 투입되는 핵심 부품·소재 등의 중간재와 미국 등으로 직접 수출되는 고가의 완제품으로 구성돼 있었다. 중국으로의 수출 길이 막힌 가운데 미국이 자국 내 생산으로 회귀하면서 한국산 제품 수입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회귀하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대만 등 다른 나라 기업들이 미국 내로 공장을 이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에 한국에서는 산업공동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우선 확실한 것은 미국 기업들이 복귀해 자국 내에서 생산하더라도 기업 간에는 여전히 경쟁을 해야 하고, 각 생산공정은 분할돼 있다는 점이다. 즉 공장은 미국 내에 있더라도 생산을 위한 부품·소재·장비와 생산의 디지털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등은 여전히 글로벌 조달에 의존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산업생산에서 손 놓고 있었던 미국이 가성비가 낮은 국내 제품보다는 그동안의 생산 경험을 통해 경쟁력이 축적돼 있는 독일, 일본, 한국 등 전통 산업강국의 부품·소재를 조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대미 수출전략도 완제품에서 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부품·소재 등으로 이전하는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우리 대미 수출에서 부품·소재 등 중간재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유의할 것은 중간재의 구매자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이기 때문에 기술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의 R&D와 기술혁신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또한 미국 산업생산의 디지털화에 정합적 관계를 이루도록 한국산 수출품도 디지털화돼야 한다. 반가운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총수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그림> 참고). 한국의 기술력 강화로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