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비행을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추천해 주고 싶은 여행 장소가 오키나와다. 허리통증이나 피로에 취약하면서도 ‘뭔가 이국적인 공간을 향한 그리움’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바로 오키나와 아닐까. 2시간 정도의 짧은 비행시간, 드넓게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설탕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새하얀 해변, 인구 130만이 넘는 나하시의 북적북적하고도 살가운 사람살이의 모습들, 그리고 역사 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까지. 오키나와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저렴한 물가, 다채로운 해양 스포츠와 아름다운 바다 풍경으로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의 복잡한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평화로운 휴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오키나와는 최적의 장소다.
‘나’라는 존재의 무게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신비로운 곳
오키나와의 해변을 걷고 있으면 갑자기 무중력 상태로 우주의 한가운데를 유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된다. 이렇게 한국과 가까운 곳에, 복잡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이렇게 광대무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문득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냥 ‘바다와 나’만 있다는 느낌이 들다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바다만 있고 어느새 나는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잠시 사라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건물이나 부대시설이 거의 없는 오키나와 해변에서 한없이 걸어보기를. 평소에는 ‘나’라는 존재를 결코 잊을 수 없는 우리 현대인들이 나라는 존재의 무게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신기한 무중력의 공간이 열리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오키나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하시 국제거리는 북적거리는 인파로 불야성을 이룬다. 땅콩으로 만든 오키나와식 두부, 투명한 젤리처럼 생긴 포도 모양의 해초 등 오키나와의 특산품도 눈에 띈다. 온갖 해산물과 다채로운 먹거리를 판매하는 시장통을 걷다 보면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을 연상시키는 푸근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나하 시장 한복판에는 정겨운 서점도 있다. 오래된 책을 사랑하는 주인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다정한 서점에서는 오키나와 역사가 담긴 책과 그림엽서가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겉으로 보이는 오키나와는 매우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역사적으로 이곳은 태평양전쟁 최후의 격전지로서 무려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간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중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바로 한인이었다. 징병으로 끌려오기도 하고 징용돼 끌려오기도 했던 수많은 한인이 오키나와에서 희생됐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는 한국인 위령탑이 있어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을 때에는 마치 땅 위에서 타오르는 태양처럼 샛노란 해바라기가 한창이었다. 해바라기는 놀라운 생명력으로 자라나 비바람 속에서도 강렬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오키나와의 가장 강렬한 색채로 기억된다. 또 마치 강인한 오키나와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커다란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은 뒤에도 굳세게 살아남아 풍요로운 자연과 토착 문화를 지켜냈기에.
오키나와의 골목골목을 걷고 있으면 오래된 상점들이 빛을 잃지 않으면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채로 건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십 년이 넘은 노포들이 빛바랜 간판 그대로 푸근한 주인의 미소와 환대를 가득 안고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런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낡음’이나 ‘빛바램’이 아니라 삶의 고색창연함으로, 아름다운 아우라를 풍기며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밝은 미소와 푸근한 인심에는 온화한 기후의 영향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이곳에는 혹독한 추위가 없다. 한겨울에도 포근하고 온화한 기후를 자랑한다. 바닷가에 가면 늘 해산물이 풍부해서 사람들은 먹을 것에 대한 결핍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오키나와에서 찾은 장수의 비결
오키나와는 세계적인 장수마을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을 한데로 모으는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 중 하나가 ‘이키가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라는 의미인데, 단지 노동이 아니라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이유’를 가리키는 것이다. 90세가 넘는 할머니는 증손녀의 햇살 같은 미소를 보기 위해 일어나고, 80세 노인은 아픈 친구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기 위해 일어난다. 그들은 각자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치는 것이야말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70이 넘어도, 80이 넘어도 좀처럼 은퇴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즐겁게 노동하며, 늘 음악과 춤, 친구들과 함께하는 일상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오키나와에는 ‘모아이’라는 돌봄의 공동체가 있는데, 이것은 평생 마을에서 알고 지낸 친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서로 지켜주는 우정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는 이러한 따스한 관계 맺음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장수마을을 연구하는 ‘블루존 프로젝트’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 이유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키가이와 모아이 그리고 채식 위주의 소식이라고 말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비결은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한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며, 비싼 병원비를 내고 최첨단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일상 속에서 정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고, 가족과 친구들을 보살피며 매일매일 아름다운 하루를 만들어가는 소담스러운 시간 그 자체였다.
오키나와를 여행하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동으로 내 일상을 간신히 지탱해 왔는지를 깨닫게 됐다. 하지만 그토록 불완전한 내 삶을 후회하지만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운 오키나와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행이 항상 어여쁘고 향기로운 추억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몸과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지독한 외로움에 가슴앓이를 하기도 하고, 두고 온 집이 그리워 ‘내가 도대체 왜 떠나왔나’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은 분명 우리 가슴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어떻게 간직하느냐에 따라, 그 추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는 바뀐다. 상처조차도, 아픈 체험조차도, 당신의 가슴에 아름다운 이야기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