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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중혁의 AI와 미래우리 말고 더 있거나 우리뿐이거나
김중혁 소설가·일러스트 에이프릴디셈버 2025년 06월호


구영대가 외계인을 만난 건 열두 살 때였다. 학교, 집, 학교, 집을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오가다 아버지가 선물해 준 플라스틱 무전기 세트에 재미를 붙였다. 다락방에 앉아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게 재미있었다. 무전을 하면 보통 누군가를 목소리로 호출하거나 모스 부호를 이용하는데 구영대는 자신만의 언어를 개발했다. ‘닷닷닷닷(····)’은 기쁨, ‘대시닷대시닷대시(-·-·-)’는 놀라움, ‘대시대시대시(---)’는 슬픔이었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감정의 언어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의 감정을 무전에 실어 어디론가 보냈다. 누군가 자신의 언어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답장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패턴에 집착하던 구영대는 모든 소리의 리듬을 신호로 생각했다. 세탁기가 작동되는 소리를 한 시간 동안 들으면서 그 안에 어떤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 소리의 높낮이가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계로부터 신호가 왔다.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저녁 구영대는 옥상에 올라갔다가 기이한 흔적을 보았다. 바닥에 ‘대시닷대시닷대시(.....)’ 모양으로 흙먼지가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히 생긴 모양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센 돌풍이 부는데도 흙먼지는 날려가지 않았다. 외계에서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분명했다. 구영대는 옥상에서 떠나지 않고 새로운 모양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내가 보낸 신호를 받고 놀랐다는 답장을 보내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옥상에서의 경험 이후 구영대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걸 믿게 됐다. 친구들이 외계인이 있는지 없는지 토론을 할 때 구영대는 조용히 앉아서 웃기만 할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그때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구영대는 안전가옥까지 운전하는 내내 외계인이 자신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운영체제 ‘아르테미스’를 리셋시키고 난 다음부터 계기판이 이상한 방식으로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접촉 불량인가 싶었는데 모스 부호나 어린 시절에 자신이 만들어낸 언어처럼 불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안전가옥에 거의 도착할 때쯤 구영대가 신상도에게 말을 건넸다. 신상도는 조수석에서 초조하게 내비게이션을 보고 있었다. 
“너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냐?” 
구영대의 질문에 신상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형.” 
신상도는 구영대를 잠깐 보고 나서 곧장 내비게이션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지. 먼 우주 어딘가에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나는 말야, 이런 거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솔직하게, 형, 만약에 외계인이 있다면 진작에 지구를 침략했을 거 같아.” 
“침략?” 
“외계인 입장에서 생각해 봐. 우주를 관찰하다가 지구처럼 살기 좋은 환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런데 거기 사는 생명체 중에 우두머리는 죄다 욕심덩어리에 멍청하고 약해 빠진 인간들이야. 형 같으면 자기네 땅으로 삼고 싶지 않겠어?”
“외계인이 평화주의자면? 친구 먹고 싶을 수도 있잖아.”
“나는 문명이 진보할수록 사악해진다고 봐. 이렇게 좋은 게 있는데 굳이 왜 친구를 먹어. 지배하면 편한데.”
“그럼 우리 지구도 머지않아 사악해지겠네.”
“에이, 벌써 사악해졌지. 지구에 있는 동식물은 벌써 다 장악했고, 머지않아 화성도 장악할 거고, 만약 거기 생명체가 산다면 지배하려고 들겠지.”
“넌 참 비관적이구나.”
“형은 참 낙관적이어서 좋겠다.”
“나이가 들면 점점 낙관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비관적이어야 되는 거 아냐?”
“낙관적인 생각을 했을 때의 결과가 더 좋아. 통계적으로도 그런데 굳이 왜 비관적인 생각을 하겠어.”
“외계인에 대한 유명한 말 있잖아. 이 넓은 우주의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면, 엄청 공간 낭비다.”
“영화 <콘택트>에 나오지.”
“어쩌면 공간 낭비를 하는 게 신의 특기일지도 모르잖아. 신은 엄청 미니멀리스트라서 우주처럼 넓은 공간이 있는데도 지구에만 생명체를 만든 거야.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아파트 60평에 사는데 방 하나만 쓰고 나머지는 비워두는 사람. 관리하기 힘드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
“나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형은 그럴 줄 알았어.”
구영대가 뭔가 이야기를 덧붙이려고 할 때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속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었다. 임도를 따라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곳이었고, 산림청 소유의 관리사무실처럼 생긴 곳이었다. 송전탑이 보였고, 오래된 채석장도 보였다. 휴대전화 신호도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 구영대는 자동차를 주차한 다음 위장막으로 덮었다.
실내는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건이 갖춰져 있었고, 장식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콘크리트 벽, 알루미늄 조립식 창, 낮은 형광등, 세면도구, 응급약, 정수기, 전기포트, 비상식량, 가스난로, 방독면, 기본 통신장비, 보안 노트북이 무표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식탁에 있는 태블릿에서 메시지가 떴다.
“이틀 정도만 숨어 있으면 상황이 정리될 거예요. - 셀레나”
신상도는 안전가옥 곳곳을 뒤지면서 연신 감탄을 했다. 특히 현관과 방에 달려 있는 자물쇠를 꼼꼼하게 관찰했다. 구영대는 구석에 있는 침대에 누웠다. ‘안녕, 구영대’라고 인사를 해오던 키오스크 화면을 떠올렸다. 어쩌면 누군가 키오스크를 해킹한 것이 아니라 외계인이 키오스크를 통해 자신에게 인사를 하려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이 외계인과 상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이 자물쇠 골 때려.”
신상도가 아이 같은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뭐가?”
구영대는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로 대답했다.
“이 자물쇠, 퍼즐 자물쇠인데···, 진짜 이상하게 생겼어. 내가 퍼즐 자물쇠 좋아하는 거 알지?”
“알지 그럼. 전에 맨날 가지고 다니면서 풀었잖아.”
“완전히 처음 보는 거야. 이거 풀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겠다.”
“난 좀 잘게.”
구영대는 눈을 감았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옥상 꿈을 꾸었다. 돌풍이 불고 흙먼지가 무릎까지 쌓였는데, 표식은 또렷하게 보였다. ‘대시닷대시닷대시(-·-·-)’, 눈동자 같기도 했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네가 너무 놀라워. 너는 지구의 누구보다 특별해.” 가까이 다가온 존재는 따뜻했다. 손을 뻗었다.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온기가 조금씩 멀어지면서 바람이 옅어졌다. 구영대는 외계인을 붙잡고 싶었다.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눈을 떴더니 신상도가 눈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시끄럽게 해?”
“내가? 내가 잠꼬대를 했어?”
구영대는 꿈에서 빠져나오는 게 싫었다.
“안전가옥 노출되는 줄 알았잖아. 나는 형이 그렇게 소리 지를 수 있는 줄 몰랐네.”
“꿈을 꿨어.”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여기에 있어요. 막 그러던데? 연애하는 꿈 꿨어?”
구영대는 답하지 않고 일어나서 물을 마셨다. 열기가 여전히 몸속에 남아 있었다.
“아까 키오스크에서 마지막에 계속 이상한 화면 깜빡였던 거 기억나?”
구영대가 신상도에게 물었다.
“와, 나, 그거 ‘광과민성 발작’, 말로만 들었지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네.”
신상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진저리를 쳤다.
“네 바디캠에 그거 촬영됐을까?”
“처음에는 화면 앞에 있었으니까 아마 됐을걸요. 다시 보게?”
“확인할 게 있어서.”
“셀레나한테 실내 CCTV 화면 녹화된 거 달라 그래요. 다 녹화하고 있었을 거 아냐.”
“셀레나한테 물어보기 전에 일단 확인 좀 하자.”
신상도의 바디캠에 들어 있던 메모리 카드를 노트북에 넣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꿈에 나올까 봐 겁났던 키오스크 화면이 나타났다. 빨강, 파랑 화면이 빠른 속도로 반복되는 게 보였다. 신상도가 바닥에 엎드리는 바람에 바디캠에 찍힌 장면은 길지 않았다. 다른 부분을 모두 편집하고 키오스크 화면에 반복적으로 나타난 화면만 남겨두었다. 화면은 짧게, 조금 길게 계속 깜빡였다. 구영대는 화면이 바뀌는 길이를 모두 적었다. 어린 시절에 만들었던 자신의 언어처럼 분명히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조합의 수가 많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구영대는 키오스크가 잠시 자신의 노트북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가방의 노트북을 꺼내서 열었더니 바탕화면에 처음 보는 파일이 있었다. 누군가 거기에 동영상 파일을 넣어두었다. 구영대는 바이러스 검사를 했고, 시스템 오류가 없는지 확인했다. 깨끗한 파일이었다.
구영대는 동영상 파일을 보며 망설였다. 살면서 후회하는 몇 가지 일이 있다. 처음으로 물건을 훔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쳐 나올 때 가슴이 쿵쿵쿵 뛰었는데, 그건 분명히 두려움이었는데 쾌감으로 착각했다. 처음으로 깊이 사랑했던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괴롭혔고, 결국 헤어지게 된 일을 잊지 못한다. 키오스크 해킹 일을 맡은 것도 조금 후회하고 있다. 후회할 일을 하나 더 만들게 될까 봐,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까 봐 쉽게 파일을 열지 못했다.
“형, 뭐 좀 먹자. 배고파.”
신상도가 해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와서 잠깐은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노트북을 닫고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다. 주방 찬장에 있던 위스키를 절반이나 비운 신상도는 곧바로 잠들었다. 다시 혼자만의 시간이 돌아왔고, 노트북 바탕화면의 동영상 파일과 맞닥뜨리게 됐다. 구영대는 노트북의 메신저를 열어서 셀레나에게 도움을 구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요약해 줄 수 있어요?”
10분이 지나서야 셀레나가 답을 보냈다.
“뭐가 알고 싶은 건데요?”
문자의 말투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키오스크를 해킹하는 간단한 일이 왜 이렇게 복잡하게 됐냐고요.”
“구영대 씨는 외계인 있다는 거 믿어요?”
“갑자기 외계인 얘기는 왜 하는 거죠?”
“저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긴 한데···,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내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힘이 작용한 건가? 설마 외계인?”
“현실에는 외계인보다 더 힘센 사람들이 많죠.”
“키오스크 화면을 계속 분석하고 있는데, 도무지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구영대 씨 예상대로 단순히 키오스크를 해킹하는 일은 아니었어요. BBB의 서버에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어서 그걸 찾으려는 거였는데, 엄청난 힘이 문을 막고 있었어요. 우리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그게 외계인이라고요?”
“아서 클라크의 말 중에 이런 게 있죠.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관한 두 가지 가능성이···.”
“우리 말고 더 있거나, 우리뿐이거나. 두 가능성 모두 끔찍하다.”
“알고 있군요? 어느 쪽의 끔찍함이 좋아요?”
구영대는 셀레나에게 답하지 않았다. 대신 동영상 파일을 열었다. 5분 길이의 동영상이었고, 시작하자마자 흙먼지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화면이 보였다. 흙먼지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을 배회하더니 천천히 차례대로 땅에 내려앉으며 형상을 만들었다. 구영대가 어릴 때 보았던, 그리고 꿈에서 보았던 ‘대시닷대시닷대시(-·-·-)’였다. 구영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가움인지 놀라움인지 알 수 없었다. 이어지는 영상에는 놀라운 장면이 가득했다. 구영대는 동영상을 보는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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