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정여울의 나란히 한 걸음‘아름다운 고독의 방’으로 초대하는 월든 호수
정여울 『데미안 프로젝트』,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2025년 09월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인생 여정을 따라 콩코드를 걷다

어떤 장소는 다녀오면 다녀오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든다. 상상을 뛰어넘는 감동, 무엇을 기대해도 기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장소들이 있다. 내게는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태어난 곳이자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고향인 미국 콩코드가 그랬다. 콩코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는 아니다. 뉴욕처럼 세련되거나 화려하지도 않고, LA처럼 온갖 엔터테인먼트의 향연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겐 미국의 많은 도시 중에서 가장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콩코드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고향, 콩코드

뉴욕으로 가 보스턴 여행을 한 뒤 콩코드로 가는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보스턴 직항으로 바로 콩코드로 가는 방법도 있다. 개인적으로 뉴욕과 보스턴을 여행한 뒤 콩코드를 여행하는 경로를 추천하고 싶다. 미국의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과거 중에서도 더욱 원초적인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뉴욕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최첨단 도시로 손꼽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보스턴은 미국의 과거를 잘 보존한 도시다. 게다가 콩코드에는 미국 건국 초기, 지금과는 다른 이상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던 시기의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콩코드는 ‘현재의 미국’을 있게 한 위대한 작가들을 대거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주홍글씨』와 『큰 바위 얼굴』로 유명한 너새니얼 호손, ‘미국의 셰익스피어’ 또는 ‘미국의 양심’으로 찬사받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 『작은 아씨들』로 전 세계 여성 작가 지망생들에게 ‘둘째 딸 조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 루이자 메이 올컷, 무엇보다 헤르만 헤세와 오바마 전 대통령, 간디 등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겉으로 보면 아주 한적한 시골 마을에 가까운 콩코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아마 ‘자연’과 ‘책’에 대한 콩코드 사람들의 무한한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오래전 콩코드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이 농사를 지었지만, 상인들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였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하버드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역시 졸업 후에도 항상 ‘책 읽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문필가로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자신에게는 책이 유일한 자본이자 연장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런데 콩코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어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졌고 책을 살 형편도 넉넉지 않았다. 그런 그가 하버드대 학장에게 손편지를 보내 “나는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니 하버드대의 책을 빌려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놀랍게도 하버드대 학장은 소로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었고, 소로는 멀리 하버드대까지 가지 않고 우편으로 많은 책을 빌려볼 수 있었다. 평생 자유롭게 하버드대의 풍부한 서적들을 집으로 대출받는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청년의 공부와 글쓰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서관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쓴 소로의 마음을 학장은 깊이 이해했던 것 같다. 여기서 ‘나 같은 사람’이란 책을 너무도 간절히 원하지만, 책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청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대학은 형식적으로 학생들을 졸업시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학이 초석을 놓아준 교육을 완성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야 하며, 그 완성을 돕는 방식이 바로 도서관 이용이라고 설득한 것이었다. 그렇게 소로는 젊은 나이에 『월든』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있었고, 그에게 눈부신 영감을 준 것은 도서관에서 빌린 수많은 책이었다.

이렇게 지식을 향한 순수한 열망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너새니얼 호손, 루이자 메이 올컷, 랄프 왈도 에머슨 같은 대문호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책을 사랑하는 콩코드 사람들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도서관과 동네 서점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영감과 영혼의 성숙을 선물해 준 숲과 호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숲속을 걸었고, 숲속을 걷고 나면 나무보다 훨씬 키가 커져서 나왔다(I took a walk in the woods and came out taller than the trees).” 아름다운 콩코드와 월든 호수 주변의 숲길을 산책하는 것은 그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었다. 이 고백은 독서, 사랑, 우정 같은 것들에도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책 속을 탐험하고 사랑에 빠지고 진정한 친구를 얻게 되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크고 깊어진 영혼의 깊이를 느끼게 되지 않는가. 콩코드 여행은 내게도 그런 아름다운 숲길을 산책하는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콩코드는 다른 대도시들 같은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그 어떤 대도시보다 커다란 영혼의 성숙을 선물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를 통해 전혀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용기였다.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과 그의 아버지 브론슨 올컷은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교육 운동가이기도 했다. 프루트랜드(Fruitlands)는 브론슨 올컷이 주도하는 실험적 공동체였는데, 그는 모두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고 그 어떤 계급적 불평등도 없으며 누구나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향을 추구할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었다. 브론슨 올컷이 그의 이상을 실험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에서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로 가벼운 점심을 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들을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참으로 좋았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려 했던 브론슨 올컷의 실험은 7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의 이상주의적 실험은 여전히 아름다운 박물관과 공원의 형태로 만날 수 있다. 『월든』을 쓴 소로의 내면을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도 바로 브론슨 올컷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삶 자체가 위대한 실험임을 알았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실험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콩코드의 숨은 명물은 슬리피 할로우라는 아름다운 묘지다. 묘지가 무슨 관광지냐고 하겠지만, 이 묘지 자체가 아름다운 공원이고 역사 공부가 가능한 훌륭한 곳이다. 이곳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그의 가족묘는 물론 랄프 왈도 에머슨, 루이자 메이 올컷, 너새니얼 호손의 묘지 등이 다 모여 있다. 콩코드를 빛낸 위인들이 묻혀 있을 뿐 아니라 묘지 자체가 아름다운 숲으로 조성돼 숲속을 고요히 산책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월든에서 대면한 ‘삶의 정수’

콩코드의 다이아몬드 같은 장소는 당연히 월든 호수다. 월든 호수는 그동안의 모든 스트레스를 다 가라앉혀 주는 듯한 차분한 물빛을 띠고 있다. 그리고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음을 기억해 냈다. 국립공원이 없었다면 전 세계의 자연은 지금만큼 보존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국가가 적극 나서고 국민이 세금을 내 보존하지 않는다면 자연을 ‘자원’으로만 생각해 자행되는 온갖 ‘개발의 광풍’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월든 호수는 늪지대 특유의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가득하고, 수영하는 사람과 낚시하는 사람, 독서하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신기할 만큼 고요하고 평화롭다. 무엇보다 월든 호수의 매력은 우리를 ‘아름다운 고독의 방’으로 초대한다는 데 있다. 바로 그곳에서 소로는 1845년부터 약 2년 2개월 동안 머물며 첫 책을 썼다. 그가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소란스러운 바깥세상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정수’를 온몸으로 대면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마주하고, 삶이 나에게 가르쳐줄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내가 진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했음을 발견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삶의 온전한 정수, 즉 모든 장신구를 떼어낸 삶의 뼈대를 절실히 경험하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짓고 그 안에서 은둔하며 ‘내 안에 있는 최고의 잠재력’을 끌어내려 분투한 것이다.

수천수만의 관중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용기이고, 용감하게 전쟁터에 나아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용기이지만, 나는 소로처럼 ‘자기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는 용기’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사는 용기의 정수임을 믿는다. 콩코드, 슬리피 할로우, 월든을 향한 여행은 바로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진짜 나 자신’을 만나고픈 열정을 발견하기 위한 내면의 모험이었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