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은 곧 어딘가를 향한 매혹으로 이어지고, 매혹은 곧 새로운 감(inspiration)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그리하여 나는 예술가들이 떠난 여행지에 매혹된다. 예술가들의 여행지는 눈부신 영감으로 가득하다. 고갱은 타히티로 떠나 야생의 매혹으로 가득한 인물들을 그렸고, 고흐는 아를로 떠나 남프랑스의 햇살과 색채에 눈을 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 자체가 여행이기에 나는 이미 그와 관련된 수많은 장소로 떠나 『빈센트 나의 빈센트』라는 책을 썼고,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장소들에 매혹되어 『헤세로 가는 길』을 내기도 했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라벤나는 단테의 도시, 클림트의 도시 그리고 모자이크의 도시이기에 더 매혹적이었다. 단테의 무덤이 있는 곳이 바로 라벤나였고, 클림트가 <키스>를 비롯한 걸작들을 작업할 때 영감을 받은 도시가 바로 라벤나였으며, 미술이나 건축 애호가들이 모자이크의 진수를 보러 가는 대표적인 여행지이기도 하다. 알록달록한 돌조각 위에 영원의 염원을 담은 흔적이 모자이크라면, 시인의 언어로 영원을 갈망한 흔적이 바로 단테의 『신곡』일 것이다.
‘마지막 안식처’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곳
인생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낱낱이 체험하고, 슬픔과 절망과 그리움과 비탄이 섞인 마음으로 다시 그 모든 이야기들을 돌아볼 때,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여기가 인생의 마지막이다 싶을 때 당신이 의지하고 싶은 안식처가 있는가. 라벤나는 나에게 그런 ‘마지막 안식처’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세상의 모든 오묘하고 신비로운 빛깔들을 다 모아놓은 듯한 모자이크의 도시, 장엄한 모자이크 예술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시, 라벤나. 이곳에서는 광장의 벤치조차도 오밀조밀한 모자이크로 만들어져 있다. 평범한 가게도 아기자기한 모자이크 장식이 눈길을 끌어 자꾸만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라벤나의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모자이크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라벤나 사람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라벤나는 위대한 작가 단테의 마지막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자, 그의 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테는 지금은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살아 있을 때는 온갖 박해와 차별을 피해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라벤나였다.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이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단테에게 라벤나는 단순한 망명 도시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닿은 항구였다. 마치 평생토록 찾아 헤매던 첫사랑 베아트리체의 그리운 얼굴처럼, 라벤나는 그에게 마지막 안식처를 제공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라는 신비로운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말 한 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이상향을 경험한 단테는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과 결혼한 베아트리체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단테는 그녀를 평생 잊지 못했다. 현실에서는 안타까운 짝사랑으로 끝난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마음은, 『신곡』이라는 걸작을 통해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다시 태어난다.
빛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에 걸맞은 어둠과 그림자가 필요하다. 화려한 빛으로만 가득한 곳에서는 각각의 빛깔과 음영, 명도와 채도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미묘하고도 복잡한 빛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때로는 어둠과 빛의 조화가 필요하다. 단테의 삶도 그랬다. 글쓰기와 정치·외교술 등 온갖 재능으로 빛났던 젊은 시절에는 아직 인생의 그림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랑의 슬픔과 기쁨, 상실의 트라우마, 그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차별과 박해 등 온갖 ‘인생의 그림자’가 그를 압박한 뒤, 비로소 그는 평생의 걸작 『신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연옥과 지옥을 거쳐 마침내 천국에 다다르는 그의 여정은 인생의 그림자, 즉 슬픔과 트라우마를 경험한 뒤 더욱 숭고한 향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안내해 주는 그 머나먼 ‘죽음 이후’의 여정에서, 단테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고단한 일생을 지켜주는 가장 크고 깊은 빛은 바로 사랑이었음을. 고난과 아픔으로 얼룩진 생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조차도 그를 마지막까지 지켜주었던 희망의 빛은 바로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이었음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지라도, 한 번도 마음껏 고백해 본 적 없는 사랑일지라도. 그 순수한 사랑의 빛은 단테의 일생을 지켜주는 영혼의 빛이었다.
모자이크 예술의 정점, 산 비탈레 성당
산 비탈레 성당에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황후 테오도라의 눈부신 행렬을 나타낸 모자이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신곡』을 시각적 이미지로 감상하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황금빛 배경 속에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성인과 권력자들의 얼굴은 단테가 천국편에서 그린 영광의 합창과도 닮았다.
단테는 『신곡』에서 이렇게 말한다. “빛은 한 점에서 나와 무수히 퍼져나갔지만, 그 퍼짐은 다시 하나로 모여, 마치 사랑의 반향처럼 나를 휘감았다.” 이 세상 모든 색채들을 수집해 놓은 듯 다채로운 빛깔로 빛나는 모자이크는 저마다 다른 색채로 보이지만, 그 모든 색채는 결국 눈부신 ‘사랑의 반향’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단지 사람에 대한 사랑, 가까운 존재에 대한 사랑을 넘어 세상을 향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는 사랑의 메아리일 것이다.
고통의 터널을 막 지나가고 있을 때는 인생의 빛이라곤 보이지 않는 듯하다. 나에게만 불행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 같은 아픔과 억울함, 서러움이 북받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단테에게 빠져들었다. 삶의 끝에서 만난 안내자가 바로 단테가 가장 존경하던 시인 베르길리우스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단테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 가장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나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머나먼 길을 안내받을 수 있다면. 게다가 그가 안내해 주는 연옥, 지옥, 천국의 모든 여정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킬레우스, 오비디우스 등 위대한 영웅들이 죽음 저편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질투와 탐욕에 눈이 멀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영혼들은 물론, 삶에서 저지른 과오를 뉘우치고 점점 고통의 무게로부터 놓여나는 영혼들도 만나게 된다. 마침내 그 길의 끝에서 만난 마지막 구원의 빛은 바로 꿈에도 그리던 베아트리체였다. 각각의 순간은 슬픔과 후회로 물들어 있을지라도 그 마지막을 빛내는 순간이 ‘사랑’일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삶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는 궁극적으로 눈부신 구원의 빛깔로 채색되지 않을까. 이승의 삶을 후회하는 수많은 영웅의 모습을 만난 뒤에 마주한 최후의 인물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사랑했던 그 여인’이라는 점도 좋았다.
평범한 골목 곳곳에서도 펼쳐지는
눈부신 색채의 향연
라벤나의 모자이크에서 특히 ‘화룡점정’의 빛을 뿜어내는 금빛 가루의 역할이 바로 그 ‘사랑’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클림트가 <키스>를 비롯한 수많은 걸작에서 보여준 모자이크의 향연과 별빛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황금의 이미지는 바로 라벤나의 모자이크를 실제로 연구한 뒤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삶이 아무리 괴롭고 아플지라도, 그 길 끝에서 만난 마지막 구원의 이미지가 사랑의 빛이라면 우리는 이 생의 수많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의 빛과 황금빛 모자이크는 서로 닮은 데가 있다. 사랑은 모든 고통의 서사를 ‘마침내 구원’의 빛으로 물들게 하고, 황금빛 모자이크는 어떤 복잡다단한 색깔의 모자이크 조각들도 ‘마침내 성스러움’의 빛으로 물들게 한다.
클림트는 라벤나의 모자이크를 연구하면서 빛과 색채의 조화에 대한 커다란 영감을 얻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실제 황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전과 후의 색감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라벤나에서 영감을 받은 모자이크 기법과 황금빛 색채의 대담한 적용을 통해 클림트의 예술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게 된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았던 클림트의 노련한 감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산 비탈레 대성당뿐만 아니라 라벤나의 평범한 골목 곳곳에서도 눈부신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라벤나 사람들은 빛과 색채의 조화에 유독 민감한 것 같다. 서서히 석양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 아래 비친 거리 곳곳의 풍경도 아름답다. 라벤나의 거리를 걷다 보면 다채로운 색채로 우아하게 수놓아진 듯한 모자이크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로마나 피렌체의 높은 물가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웠던 와인과 디너 또한 라벤나에서는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포폴로 광장에서는 저녁에 흥겨운 와인 축제가 벌어진다. 10유로 정도면 다양한 와인을 몇 잔이고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일상 속의 와인 축제다. 음식 인심도 후하고 외국인에게도 친절한 라벤나 사람들의 정감 어린 표정이 그리워진다.
클림트의 <키스>와 <우먼 인 골드>에서 느껴지는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빛의 대향연은 마치 그림 위에서 빛과 그림자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 같은 환희를 전한다. 라벤나 곳곳에서 보이는 모자이크 예술의 느낌도 바로 그런 것이다. 빛이 없는 순간에도 빛을 보게 만드는 마술 같은 힘. 그것은 모자이크 각각의 조각이 지닌 색채뿐만 아니라 그 위에 신묘하게 흩뿌려진 금빛 가루의 마술적 조화가 보여주는 색채의 하모니다. 자연광과 어우러진 천장 모자이크화의 장엄함은 탄성을 자아낸다. 햇살이 구름 뒤에 숨어 어두울 때는 어두운 대로 그윽하고 신묘한 빛을 뿜어내고, 햇살이 밝게 비칠 때는 마치 지상의 온갖 빛깔이 거대한 모자이크 작품 위에 ‘빛의 집’을 지은 것처럼 우아하고 화려한 광채를 뿜어낸다. 자연과 인공의 빛이 어우러지는 그 찰나의 예술적 광휘를 지켜보며, 여행자들은 온갖 시름을 잊는다.
내 삶도 그렇게 모든 순간 빛나기를. 내 삶도 때로는 그윽하고 때로는 화려하게 빛날 수 있기를 염원하게 된다. 사랑의 빛으로 그 모든 파란만장한 생의 고통을 마침내 이겨낸 단테처럼, 햇살과 모자이크의 빛을 통해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흡수해 마침내 우리 삶도 찬란히 빛나기를. “사랑이여,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여”라고 노래했던 단테처럼, 마침내 세상을 움직이는 마지막 구원의 빛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사랑의 힘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