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김중혁의 AI와 미래인생은 꿈, 꿈이 곧 인생
김중혁 소설가 2025년 10월호


신상도는 꿈을 자주 꾸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높은 빌딩에서 떨어지는 꿈도 많이 꾸었고, 거대한 동물에게 쫓기는 꿈도 여러 번 꾸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나면 엄마가 달려와서 “또 꿈꾸었니, 상도야?”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악몽을 꾸는 건 싫었지만 엄마가 지켜주는 건 좋았다. 꿈을 해석해 주는 사이트에서 의미를 물어보면 ‘키가 크는 꿈’이라거나 ‘뼈가 두꺼워지는 꿈’이라는 식으로 해석해 주었다. 아무리 의미가 좋은 꿈이라 하더라도 자주 꾸는 건 싫었다. 나이가 들면 꿈을 꾸는 횟수가 줄어든다는 말을 믿고 싶었지만 신상도의 꿈은 줄어들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최소한 이틀에 한 번 악몽을 꾸었다. 자다 깨는 일이 잦았다.
스물다섯 살 즈음 길을 걸어가다가 기묘한 간판을 보았다. ‘당신의 악몽을 지워드립니다’라는 글자가 신상도의 두 눈에 큼지막하게 보였다. 신상도는 낡은 건물로 들어가서 곧 부서질 것 같은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끝방에 ‘나이스 드림 꿈 상담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실내에서는 라디오헤드의 노래 ‘Nice Dream’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푸른 빛이 밖으로 새어나왔다. 신상도는 슬며시 문을 열었다가 안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상담소의 주인 ‘박채영’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나이스 드림.”
박채영은 처음 본 신상도에게 다정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학교 다닐 때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정한 인사를 거의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신상도는 박채영의 웃음이 무서우면서도 상담소 안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다.
“악몽을 지워줘요?”
신상도는 접수대에 선 채로 물었다.
“상담소 처음이시죠?”
박채영이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네. 처음인데요, 상담 같은 거 하면 비싸죠?”
신상도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하하하, 그렇게 안 비싸요. 노래방 가끔 가죠? 그 정도 가격이에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첫 방문 때는 할인도 해드리니까 일단 등록해 보세요.”
신상도는 박채영의 가슴에 달려 있는 ‘꿈 상담사 박채영’이라는 이름표를 눈여겨보았다. 태어나서 ‘꿈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났지만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꿈에서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상도는 서류에 이름과 나이를 적고 간단한 설문에 답을 했다. 잠의 패턴과 수면의 질, 꿈의 종류, 꿈의 길이 등을 적었다.
“와, 꿈 많이 꾸시네요?”
박채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네, 악몽을 자주 꿔요. 그러면 상담이 힘든가요?”
신상도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아뇨. 오히려 좋죠. 일단 여기에 누워보시겠어요?”
박채영이 가리킨 곳은 리클라이너 소파처럼 생긴 의자였다. 온갖 선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헬멧을 썼더니 우주 비행사가 된 것 같았다. 현실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좋았다. 신상도는 곧바로 잠이 들었고 여섯 시간 만에 깨어났다. 뭔가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나는 건 없었다. 밝았던 창밖은 이미 어둑해졌고, 건물 밖에서 사람들이 흥겹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몇 시죠?”
신상도는 박채영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현실 감각이 없었다. 구토가 날 것 같기도 했고, 허리가 뻐근하게 아팠다.
“대단하세요. 여섯 시간 동안 잠들었고, 그중에서 네 시간 동안 꿈을 꿨어요.”
박채영이 태블릿 속의 데이터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대단한 건가요?”
“그럼요. 이렇게 길게 꿈을 꾸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제가 원래 꿈을 많이 꾼다니까요, 진짜.”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원래는 꿈이 잘 기억나야 하는데, 기억이 안 나요.”
“고객님이 자는 동안 저희가 다 없앴으니까요.”
“없앴다고요? 어떻게요?”
“저희가 하는 일이 그거잖아요. 악몽을 없애주는 것.”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요?”
박채영은 기술을 믿지 못하는 신상도를 위해 삭제한 꿈을 보여주었다. 선명한 화면은 아니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한 꿈이었다. 거대한 괴물 쿠키가 뒤를 쫓아왔고, 새하얀 우유에 빠지는 꿈도 있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가 갑자기 구름 위로 점프를 하는 아슬아슬한 장면,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시험을 치는 교실이 나타났던 상황도 저장돼 있었다. 마지막 꿈은 신상도가 자신의 나체를 보는 것이었다. 거대한 철문을 열고 저택으로 들어서자 엄청나게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자신의 나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만, 그만 볼래요.”
신상도가 손바닥으로 모니터를 가리면서 말했다.
“고객님,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꿈이잖아요. 저도 제 몸이 발가벗겨진 꿈을 꾸는데요, 실제 몸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박채영이 모니터 스위치를 끄면서 말했다.
“저 꿈들이 제가 꾼 거라면 기억이 나야 하잖아요. 그런데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기억나면 지운 게 아니죠. 고객님이 원하시면 기억 속에다 꿈을 다시 넣어드릴 수 있어요.”
“그럼 제가 원하는 꿈만 넣을 수도 있어요?”
“저희가 악몽을 캡처하는 원리는 간단해요. 악몽을 꿀 때는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바뀌니까 그때의 꿈을 캡처하는 겁니다. 코르티솔 분비가 높아지거나 작은 경련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죠.”
“그렇다면 평상시 꿈도 캡처할 수는 있는 거죠?”
“가능하죠. 그런데 좋은 꿈을 지울 필요는 없잖아요?”
“아뇨, 지우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으려고요.”
“아, 보관용으로요?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그건 법적으로 금지돼 있어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고요? 왜요?”
“좋은 꿈을 보관하는 건 위험하니까요. 꿈에서만 살고 싶어 하고, 현실로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사례가 많았거든요.”
“그럼 악몽만 저장할 수 있는 거군요.”
“악몽도 저장하는 건 안 됩니다, 고객님. 지워드리거나 고객님의 머릿속에 다시 넣어드리거나 둘 중 하나죠.”
“제 꿈은 바로 지워지는 건가요?”
“하루 보관하고 바로 지워집니다.”
“그러면 다시 잠들 테니까 좋은 꿈을 캡처할 수 있을까요? 그 꿈을 영상으로 보고 싶어요. 그러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음···, 좋아요. 고객님이 원하시면 보여드릴 순 있죠.”
“여기 몇 시까지 영업하세요?”
“하하하, 저희는 24시간 영업이에요. 꿈은 아무 때나 꿀 수 있어야죠. 수면제 처방해 드릴 테니까 나이스 드림 하세요.”
신상도는 다시 잠들었다. 이번에는 두 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박채영이 꿈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전부 평범하거나 좋은 꿈이었다. 엄마와 함께 강변을 걷는 꿈도 있었고, 식탁에 앉아서 아빠가 고기를 구워주는 꿈도 있었다. 죽기 직전 젊었을 때의 아빠 모습이었고, 신상도 역시 비슷한 나이였다. 그동안 아빠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던 순간이 거의 유일했다. 고기를 함께 구워 먹는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의 웃는 모습이 그 어떤 영상보다 생생했다.
집으로 돌아온 신상도는 좋은 꿈을 떠올리면서 행복하게 잠들 수 있었다. 새벽 3시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신상도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꿈이 희미해진 걸 깨달았다. 몇 시간 지나면 모든 꿈이 사라질 것이다. 신상도는 ‘나이스 드림’을 습격하기로 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이었지만 직원은 한 명뿐이고, 경비도 허술했다. 
들어가서 저장돼 있는 꿈만 가지고 나오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상도의 첫 번째 범죄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이스 드림에 들어가서 직원에게 칼을 들이미는 순간 사방에서 경보음이 울렸고, 5분 만에 출동한 경찰에게 검거됐다. 꿈을 다루는 대부분의 업체가 정부시설이란 걸 몰랐던 데다 자신의 행복한 꿈을 되찾으려는 갈망이 너무 커서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한 탓이었다.


신상도가 열쇠 전문가이자 빈집털이 마스터가 된 것은 첫 번째 범죄의 실패 때문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꿈을 되찾기 위해서, 꿈 상담소에 다시 들어가 좋은 꿈을 가져오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다 보니 지금의 신상도에 이르렀다.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온 후, 신상도는 좋은 꿈과 악몽을 모니터로 보았던 ‘나이스 드림 꿈 상담소’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여섯 시간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의 기분과 시뮬레이션에서 빠져나왔을 때의 기분이 비슷했다. BBB의 정문에 서서 3번 키오스크로 걸어가는 순간, 이 모든 게, 나이스 드림에서 BBB의 키오스크와 시뮬레이션까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아까 그 말 왜 했어?”
신상도는 걸어가고 있는 구영대에게 물었다.
“무슨 말?”
구영대는 바닥의 빛을 유심히 살피면서 대답했다.
“내 꿈속에 형이 들어왔다고 그랬잖아.”
“내가 그랬어?”
“응, 믿으면 현실이 된다고.”
“아···, 농담을 이해하면 현실이라는 얘기였어. 꿈에서는 농담 같은 거 안 통하거든. 지금이 꿈 같아, 현실 같아?”
“십몇 년 전에 어떤 상담소에서 꿈을 꾼 적이 있어. 내 꿈을 전부 영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 어떤 기분인 줄 알아? 모니터 안에 있는 꿈속의 길을 내가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
“뭐? 꿈 상담소? 혹시 거기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나?”
“응. 나이스 드림이라는 곳이었어.”
“망할···. 이게 전부 다 나이스 드림 때문이었구나.”
“무슨 얘기야?”
“예전에 나이스 드림을 해킹하다가 잡힌 적이 있어.”
“형이? 나 만나서 같이 일하기 전에?”
“한 10년 전인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같이 일하게 된 것도 나이스 드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 어째서?”
“우리 처음 만났던 데가 어딘지 기억나?”
“메모리 시계점.”
“넌 거기 어떻게 가게 됐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디선가 정보를 듣고 간 것 같은데?”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조건으로 한동안 나이스 드림 일을 도왔어. 메모리 시계점도 나이스 드림 속 꿈에서 본 거고. 가장 완벽한 목표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길 간 거야.”
신상도와 구영대는 키오스크를 향해 걷다 말고 멈춰 섰다. 나이스 드림 때문에 엮이게 된 두 사람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함께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유리를 지나고, 생각을 읽는 키오스크를 향해, 함정일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겁이 났지만 거기에 가야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좋아. 이제 진짜로 우리 운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다음 화에 계속)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