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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詩)작잠깐
시인 이성미·일러스트 한명지 2025년 11월호




빈둥거리는 발목이 필요해. 까딱거리는 발가락이. 경계를 넘어와서. 나를 휘젓는 발목.

발자국을 찍고 나가는 누구 또는 무엇. 그것의 짙은 코발트색 그림자. 발자국 냄새를 맡는 동안 지구는 잠깐 멈추겠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일 각도만큼 공간이 필요해. 아래로 목을 숙이는 곡선도.

잠깐이 필요해. 한 방울의 물이 눈에 고일 만큼의 시간. 나는 좋은 사람이 될지도 몰라 어쩌면. 너는 좋은 사람이었을 거야.

쓸데없이 중얼거리는 이빨들이 필요해. 발음이 틀린 단어들과 부러진 문장들. 부서진 빵의 귀퉁이처럼. 네가 왔다 간 자리에 떨어진. 너의 것인 먼지들과. 너에 관한 먼지들.

줄 맞춰 꽂은 책들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마룻바닥의 정교한 선을 어지럽히는. 내가 아닌 다른 홀씨들. 내가 아닌 것도 아닌 가루들.

그들에게 말을 걸려면. 잠깐 열어둔 문이 필요해. 열어둔 걸 잊을 시간이. 문이 열린 틈만큼. 좁은 시간이 필요해.

『다른 시간, 다른 배열』(문학과지성사, 20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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