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은 늘 ‘양심적인 작가’라는 후광을 달고 등장한다. 그러나 호주 출신의 소설가이자 전직 인권 변호사로 개인의 침묵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애나 펀더는, 오웰의 후광 뒤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한 권의 책 속에서 (특히 오웰의 팬이라면) 꺼림직할 만큼 명징하게 비춘다. 그 그림자의 이름은 오웰의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이며, 그 책은 바로 『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이다.
원제인 ‘와이프덤(wifedom)’에 대해 먼저 언급해야겠다. 이 제목 자체가 이미 이 책의 논평이기 때문이다. 권력 구조가 존재하는 상태에서의 지배 질서를 내포하는 접미사 ‘-dom’[이를테면 ‘slavedom(노예신분)’이나 ‘kingdom(왕국)’에서처럼]을 붙임으로써 펀더는 아일린의 상황이 단순히 ‘아내 됨(wifehood)’이 아니라 ‘제도에 속박된 상태로서의 아내 됨’, ‘남편이라는 권력의 체제 안에 존재하는 신분’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니까 펀더가 말하는 ‘와이프덤’은 단순한 결혼 상태가 아니라 한 여성이 결혼을 통해 식민지화된 상태다. 그리고 펀더는 이 단어를 ‘자유(freedom)’와 대비시키며 접미사의 아이러니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마치 조지 오웰(로 대변되는 수많은 남성들)이 ‘자유’를 외치며 철저히 이기적이고 일견 악랄한 행보를 보일 때 그 옆에는 ‘와이프덤’에 철저히 갇힌 여성들이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라는 듯이.
펀더가 들춰낸 오웰은, 추천사를 쓴 여성학자 정희진의 표현을 빌리면 “난봉꾼, 강간범, 교활한 겁쟁이, 착취자였다”. 오웰은 문학 속에서는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권력의 폭력을 고발했지만, 끊임없이 외도를 일삼고 때로는 그 방식이 강간이었으며 가사 노동을 비롯한 모든 일을 당연히 여성의 몫으로 여겼고 그 탓에 아일린이 과로와 나빠진 건강으로 5년 넘게 비참한 생활을 하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아일린을 착취했다. 아일린의 상태가 위중한 걸 알면서도 도망치듯 유럽으로 떠나면서 본인이 원해서 입양한 아기의 육아까지 병든 아일린에게 무책임하게 떠맡겼고, 결국 아일린이 수술 도중에 사망한 뒤 아일린의 검시 보고서조차 읽지 않고 “아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섹스, 육아, 청소, 요리, 교열, 심리상담, 살림살이 운영)는 결혼제도 밖에서는 조달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재빨리 새로운 아내를 집요하게 물색했다. 그가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경험을 기록한 『카탈로니아 찬가』는 내전의 중심에서 목숨을 걸고 용감히 활약한 아일린 덕에 완성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책에서 아일린을 거의 삭제한다.
이 책이 탁월한 이유는 오웰의 개인적 결함을 ‘한 남자의 비도덕성’으로 축소하지 않고, ‘근대적 가부장제가 “시대의 양심”이라고까지 평가받는 남성 작가의 윤리마저 어떤 식으로 작동시키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커다란 아쉬움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다. 가부장제와는 상관없는 오웰의 개인적인 결함들(그는 정말 비열하고 이기적인 개자식이다)까지도 가부장제가 남긴 구조적 맹점이라고 포괄해 버림으로써 펀더의 날카로운 통찰들의 일부가 물음표로 희석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눈부신 성취가 바래는 건 아니다. 특히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문학적 질문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던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그저 조용히,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보여준다. 결코 분리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정말 그렇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아마도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아일린’들이 숨어 있는 작품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분리해 볼 기회조차 여전히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이다.
“여성들은 완전히 지워질 수 없을 때는 의심을 받고, 하찮은 존재로 변해버리고, 그도 아니면 폰트 크기 8의 주석으로 전락해 버린다.” -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