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한 양돈 축사. 돼지 한 마리가 내부 복도를 걸어간다. 사람 작업자는 보이지 않는다. 돼지가 특정 구간을 통과하자 벽에 붙은 모니터 화면에 ‘한 마리’를 뜻하는 숫자 1이 뜬다. 그 옆에는 돼지의 몸무게, 활동성 등이 자동으로 측정돼 수치로 나타난다. 오로지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분석(머신비전)해 나온 결과다.
딥러닝 기반 영상 분석 기술로 가축 모니터링···
축산 농가의 고질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돈사(돼지), 우사(소) 등 축산 현장은 먹거리산업의 출발점이지만 첨단과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는 역설적으로 기술을 잘 적용하면 혁신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을 졸업한 전광명 대표가 2019년 설립해 올해로 7년 차인 인트플로우는 머신비전에 AI를 접목해 양돈 과학화에 앞장서는 토종 스타트업이다. 앞선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국내는 물론 글로벌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인트플로우는 CCTV 카메라로 찍은 영상과 음성 등 각종 정보를 AI로 분석하는 기술을 갖췄고, 이를 양돈업에 적용한 게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양돈 농가는 인트플로우가 판독·분석하는 영상만으로 돼지 생육 단계별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적은 일손으로도 24시간 돈사를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AI 모델을 고도화하는 선순환도 일어났다.
창업 전 GIST에서 디지털 신호 처리와 패턴 인식을 공부한 전 대표는 AI 머신비전에 자신 있는 청년이었지만 농업·축산업과는 인연이 없었다. 전 대표와 동료들은 기술을 적용할 분야를 찾다 전남의 양돈 농가와 접점이 생겼다. 현재 광주에 인트플로우 본사를 둔 전 대표는 “2019년 당시 AI를 활용한 기술창업이 많았다”면서 “창업을 결심하고 사업 방향을 탐색하던 시기에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인에게 양돈장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찾아간 양돈장에서 만난 농업법인 대표에게 기존 양돈 방식이 가진 문제, 노동력 부족 상황 등을 들어보니 기술적으로 해결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서 “우리가 실험을 해봐도 되겠냐?”고 물었고, 흔쾌한 동의를 얻어 ‘돈사 기술 실증(PoC; Proof of Concept)’을 진행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이를 통해 비대면 가축·동물 건강관리 솔루션 ‘엣지팜(Edgefarm)’을 개발했다.
엣지팜은 딥러닝 기반 영상 분석 기술을 활용해 가축의 활동량, 식이 패턴, 이상 행동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서비스다. 가축의 질병을 예측해 조기 관리하고 번식 효율성을 높이며 사료비를 절감해 농가의 수익성을 개선한다. 현재 엣지팜은 가축 두수를 관리하는 엣지팜 카운트(Edgefarm Count), 활력도와 성장을 관리하는 엣지팜 그로우(Edgefarm Grow)로 세분화됐고, 방역이 중요한 농가에서 외부 출입자들의 방역 확인 등을 돕는 엣지세이프(EdgeSafe)도 탄생했다. 2025년 10월 현재, 농가 150곳에서 하나 이상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인트플로우는 2020년 액셀러레이터(AC)인 엔슬파트너스의 프리시드 투자 등을 받으며 투자시장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됐고, 2022년 6월에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패밀리 기업으로 지정됐다. 인트플로우는 KISTI의 기술지원과 컨설팅을 거쳐 올해 농림축산식품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주관하는 ‘스마트팜 다부처패키지 혁신기술개발사업’에 선정돼 3년간 20억 원 규모의 AI 활용 질병 예찰 기술 연구과제를 수주했다. 한편 2023년엔 삼성의 외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C-Lab 아웃사이드 광주’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 ‘CES 2024’에서는 인간안보 부문 혁신상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그 독창성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애그테크 경험 바탕으로
도로·공항·실버타운으로 영역 무한 확장한다
물론 카메라로 사람이나 제품을 찍어 분석하는 기술은 독창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엣지팜은 국내에서 머신비전을 양돈 축사에 적용한 선도적 사례라는 데 의의가 있으며, 센서 부착 없이 영상만으로 정밀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때문에 센서 기반의 다른 스마트팜 기술과 차별화된다.
“인트플로우는 돼지 몸에 어떤 센서도 붙이지 않고 영상 속 활동량으로 아픈 돼지를 찾거나 체중으로 출하 시기를 결정하는 등 기존 업체들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전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기술 자체는 영상, 소리 등 현장 데이터를 센서로 받아 AI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기술 속성은 자율주행차나 로보틱스, 자동화와 비슷한데 우리 선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양돈 관리였다”고 덧붙였다.
양돈 분야에서의 경험으로 양돈장만큼 복잡한 조건에서도 ‘여기까지는 할 수 있다’는 기준이 생겼고 현장의 어려움도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전 대표는 지금은 축산 부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지만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한다. 공정 불량, 아픈 사람, 도로에서 멈춘 차량 등을 찾을 때도 카메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항의 대기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여행객이 줄 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돕거나 실버타운 등 시설에서 낙상 위험, 이상 징후 등을 감지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다.
전 대표는 “‘ 해보면 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해본 것’은 다른 이야기”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산업현장에서 실증을 거쳐 노하우를 쌓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CES 혁신상을 한 차례 받았지만 앞으로 양돈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영역에서도 제품을 잘 만들어서 더 보편적인 기술로 인정받아 CES 최고혁신상을 받아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트플로우는 첨단기술과 장비를 사용하는 AI와 첨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농축산업, 이 두 분야를 연결해 농가의 AI 전환(AX)을 이끌고 있다. 애그테크(농업기술) 혁신기업이자 AI 선도기업으로서 인트플로우가 한국을 넘어 해외시장에서도 활약할 날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