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김밥 한 줄에 말아낸 간편식의 역사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5년 11월호


외국에서 한식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주목할 점은 전통적으로 우리가 한식이라 생각하던 것보다는 ‘변방’의 간편식이라 여긴 것들을 외국인들이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떡볶이와 김밥이 대표 격이다.

김밥은 분식집의 간이 음식으로 널리 퍼졌다. 심지어 문방구에서 팔기도 했다. 1980년대만 해도 고급 음식 축에 들었다. 물론 지금도 제대로 만들려면 비용이 꽤 든다. 야외 학습에 해당하는 소풍이나 당시 회사 야유회의 단골 음식이었다. 

김밥은 노포(오래된 가게)라고 해도 연조가 짧다. 이는 김밥의 역사적 속성 때문이다. 과거에는 전문점이 없었고, 있다고 해도 고급 일식집에서 다루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자식들의 소풍 등 행사를 위해 말아내는 가정식이었기 때문이다. 소풍을 가면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든 김밥 올림픽이 벌어졌다. 다른 친구들의 김밥을 한두 점씩 얻어먹는 재미가 소풍의 미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외도 있었다. 김밥 재료가 비싸 싸오지 못하거나 어머니가 안 계셔서 일반 도시락을 들고 오는 학생도 있었다.

김밥이 집에서 어른들 솜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분식집 메뉴로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80~1990년대다. 쌀이 풍부해지고 재료도 다양해지면서 값싸게 말아 팔 수 있게 됐다. 특히 김의 생산량이 크게 늘어 덤핑이 일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쌀, 김, 소시지(햄) 등 주재료의 가격이 대중적으로 되면서 ‘한 줄 1천 원’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낮은 노동비용도 한몫했다. 2000년대에도 싼 김밥값에는 중국 조선족 동포의 이주가 주효했다. 여성 동포들이 식당의 보조 인력으로 대거 들어오면서 김밥값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김밥의 역사에는 중요한 대목이 많다. 우선 용기의 다변화다. 과거에는 나무를 얇게 켠 나무 도시락이었다가 비닐로, 다시 현재의 알루미늄포일, 일회용 용기, 압축종이 상자로 변했다. 주재료의 변화도 있다. 시금치가 빨리 쉬기 때문에 사라지고, 비싸던 햄이 대세가 된 것도 특이하다. 멸치볶음, 볶은 김치 등 가정용 간이 김밥 재료가 대중적인 시판용이 된 것도 특별하다. 야외용으로 개발되면서 변질 방지를 위해 넣던 식초 간도 사라졌다. 최근에는 김밥을 자동으로 싸주고 잘라주는 기계까지 등장했다. 외국에 알려지면서는 냉동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한류와 이른바 K푸드의 첨병이 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밥이 대중에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다. 1940년대 요리책과 신문 지면의 김밥 조리법은 초밥류(노리마키)에 가까운 양념 방식을 따랐고, ‘소풍·등산용 도시락’으로 소개됐다. 김밥이라는 말 자체도 20세기 들어 보편화됐다. 일제강점기엔 ‘노리마키’와 병용되다가, 해방 후 언어 순화 흐름과 함께 ‘김밥’이 일반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오늘날의 김밥이 일제강점기 김초밥의 영향과 토착적 쌈 문화가 결합해 정착했다고 본다. 1950~1960년대 대중화, 1980년대 육가공 기술 발달로 햄이 재료에 본격 편입, 1990년대 김밥 전문점 확산이라는 변화를 연대기적으로 제시한다.

김밥이 널리 퍼진 것은 프랜차이즈 때문이다. 조립 공정이 단순하고 표준화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 선택된 것이었다. 김을 펼치고 일정량 밥을 깔고, 소를 올린 뒤 말아 절단하면 끝이니까. 이런 생산성 덕분에 1990년대 이후 프랜차이즈형 분식점이 늘었고, 김밥은 회전율이 높은 핵심 메뉴가 됐다. 게다가 더욱 바빠진 시대상은 간편한 음식을 요구했고, 이때 김밥과 햄버거가 특수를 탔다. 

나라마다 일하는 사람들이 먹는 패스트푸드가 있다. 우리에겐 김밥이 있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