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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음세대 용감하고 다정한 놀이풍경다음 세대는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담긴놀이풍경 안에서 자란다
지정우 이유에스플러스건축 대표건축가 2025년 11월호
우리 도시는 개발, 공급, 재개발, 혁신, 랜드마크 등의 이름으로 기존에 있던 것을 쉽게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는다. 과거에 꽤 정성스럽게 만든 건축물이나 도시 공간도 그렇게 사라져 가곤 한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서울 남산 중턱의 힐튼 호텔은 어느 건축물보다도 훌륭한 건축적 가치와 시민의 이야기가 축적돼 왔다는 의미가 있음에도 더 큰 상업적 이익을 위한 재개발로 철거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현재를 참아내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고 이야기해 왔다. 지금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보다는 미래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주입하면서. 그런데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그렇게 성장하지 않는다. 실제 도시도 그런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옛 기억을 삭제하고 새로운 판타지로만 채워지는 도시는 건강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욕망의 장소이며, 현재가 없는 다음 세대는 급변하는 미래를 제대로 버틸 기초가 없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에겐 무조건 ‘새것’보다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시 공간이 필요하고, 다음 세대에게는 그 안에서 지나간 시간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느끼고 놀며 생활하는 놀이풍경이 필요하다.



50년째 각기 다른 세대의 놀이를 담고 있는 곳

몇 해 전 우리나라 조각가 문신의 전시회가 열렸다. 여러 작품 중 특히 눈을 붙잡은 것은 어린이 놀이 조형물 계획안, <무제>(1972)였다. 큰 환경 조형물을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이들이 그 위에 올라타고 통과하고 미끄러지는 계획도 했으리라 짐작했다. 

한편 일본계 미국인인 이사무 노구치는 조각가로서 일반 조각 작품들과 함께 놀이풍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언덕과 분지 같은 지형을 조성하는 놀이터부터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삼차원 조형물들이 조합을이루는 놀이터 등 그의 조각으로서의 놀이터 연구는 여러 자료와 전시를 통해 잘 아카이브돼 있기도 하다. 

이런 연구가 제대로 실현된 사례인 미국 애틀란타의 플레이스케이프(playscapes)는 무려 1976년, 미국독립 2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도시 중심부의 피드몬트 공원 안에 만들어졌다. 놀이기구들을 단순히 집합해 놓은 것이 아니라 조형 및 공간 경험으로 해석해 설계한 이 놀이풍경은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이고 신비로우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콘크리트, 강철 등 단단한 재료로 조성돼 마치 현대 조각품같이 보이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놀지 미리 정해 놓지 않은 채 공간을 탐험하고 상호작용하며 놀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1976년부터 2025년인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각기 다른 세대의 놀이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때때로 시민들 사이에서 안전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어나고 철거가 제안된 적도 있었지만, 1996년과 2008년에 복원과 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조형적으로 원안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업데이트된 안전 기준은 충족하도록 보완된 것이다. 공원 및 관련 문화예술 기관들은 이 놀이풍경을 문화적 자산으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하고 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처럼, 놀이풍경도 필요하면 수리해 가면서 적어도 3대가 공간의 이야기와 경험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 이제 우리도 가능한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 놀이터의 부모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일본의 ‘플레이 파크’는 “자기 책임으로 자유롭게 놀기”를 모토로 하는 모험형 야외 놀이공간이다. 1979년 도쿄에 생긴 하네기 플레이 파크(Hanegi Play Park)와 세타가야 플레이 파크(Setagaya Adventure Play Park)가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등 유럽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모험(adventure) 놀이터’ 개념을 도입해 실제로 불을 피우고 못질과 톱질을 비롯해 만들고 부수는 것 등도 허용된다.



예를 들어 세타가야 플레이 파크에는 1명의 총괄 매니저와 3명의 플레이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머물며 유지와 관리를 하고 있기에 이러한 모험 활동이 가능하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며 그에 대한 대응도 알아서 익힐 수 있도록 한다. 이곳의 부모들은 누구도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는커녕 들고 있지도 않는다.

역시 1979년에 생긴 하네기 플레이 파크에는 콘크리트로만 만든 미끄럼틀, 미로 같은 거친 놀이공간, 흙을 직접 만지거나 간단하고 원초적인 놀이 장치들을 이용해 놀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엄마들은 필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곳에선 실제 톱이나 망치 등을 갖고 노는데 엄마로서 불안하지는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실제 물건을 가지고 놀아도 안전하게 놀고, 커뮤니티 리더분이 항상 잘 지켜주고 계십니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잘 나와 놀지 않는 편인데 어떻게 이렇게 유지가 되고 있나요?” “이곳은 1970년대부터 동네의 중요한 장소로 인식돼 왔습니다. 동네 주민 모두 자신의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의 자녀들까지 함께 돌봅니다. 아이들도 서로 사귀며 놀고 엄마들도 같이 어울리는 것이지요.”

시간을 갖고 만들어가는 지역의 커뮤니티 속에서 놀이문화도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 있는 답변이었다.

도시의 놀이풍경은 어린이만의 공간이 아니라 시대의 가치관과 도시의 방향이 응축된 축소판이다. 그 형태와 재료, 유지 방식 속에는 한 사회가 공간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노구치의 조각적 지형이든, 세타가야의 느슨한 커뮤니티 구조든 모두 ‘개발’과 ‘새것’으로만 정의된 도시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현재에도 이용되고 있다. 

오래된 놀이풍경을 지키는 일은 과거를 붙드는 행위가 아니라 도시가 시간과 관계를 다루는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1963년 서울 남산에 만들어졌던 어린이 놀이터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다면, 새로운 세대의 놀이가 계속 이어져 지금 우리가 도시를 대하는 태도도, 일상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더 성숙해졌을지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지나간 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반영한 우리의 놀이풍경을 만들어나가기를, 또 그 놀이풍경이 도시와 함께 나이 들어가기를 바라며 이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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