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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양구의 과학토크우리가 몰랐던 꿈 이야기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5년 12월호

혹시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가? 평생 꿈을 거의 꾸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꿈의 정체를 생각해 봤을 테다. 세상을 뜬 아버지나 어머니가 꿈에 나와서 알려준 숫자로 복권에 당첨됐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부터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젯밤의 알쏭달쏭한 꿈까지···. 도대체 꿈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실부터 확인해 보자. 우리가 하루 일곱 시간, 여덟 시간 정도 잠을 잘 때(이상적인 수면 시간이다!) 크게 세 단계의 수면 상태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얕은 잠’에 들기 시작해 어느새 ‘깊은 잠’을 자는 상태가 된다. 깊은 잠을 잘 때는 근육도 이완돼 있고, 뇌 활동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뇌파도 느리다. 눈의 안구 운동도 둔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깊은 잠을 자던 사람의 뇌파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거의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뇌파가 빨라진다. 바로 ‘렘(REM)수면’ 단계다. 깊은 잠을 잘 때는 거의 멈춰 있던 안구가 다시 빠르게 움직이는(REM; Rapid Eye Movement)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통 하룻밤 잠을 잘 때 ‘얕은 잠→깊은 잠→얕은 잠→렘수면’의 수면 주기(약 90분)를 4~5회 반복한다. 이 수면 주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할수록, 또 깊은 잠(약 15%)과 렘수면(약 25%)의 비율이 적당할수록 좋은 잠이다. 반면 수면 주기가 엉망진창이 될수록, 깊은 잠과 렘수면의 비율이 부족할수록 잠을 자도 온몸이 찌뿌둥한 상태가 된다.

기억을 지혜로 바꾸는 잠

과학자들이 처음에 관심을 가졌던 수면 단계는 깊은 잠이었다. 그냥 쉬는 상태로만 보였던 이 단계에서도 뇌의 여러 부위 가운데 특히 기억 기능과 긴밀하게 연결된 해마와 신피질(전전두엽피질)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했다. 이런 활동의 정체도 어느 정도 밝혀졌다. 낮 동안 뇌에 새겨진 수많은 기억의 파편을 정리하는 일이다.

낮 동안 뇌로 들어온 수많은 정보(기억) 가운데 버릴 건 버리고, 오랫동안 보관할 건 뇌의 한구석에 고정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미 뇌에 자리를 잡은 기억에 오늘 경험한 새로운 기억이 조화롭게 덧붙여진다. 수면 과학자 매슈 워커는 이 과정을 “기억을 지혜로 바꾸는 일”이라고 멋지게 표현했다.

깊은 잠을 자는 일의 중요성은 알았다. 그렇다면 렘수면의 역할은? 오랫동안 렘수면은 미스터리였다. 얼른 보기에도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히 잠을 자고 있는데도 뇌 활동과 안구 운동이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더구나 이런 렘수면이 전체 수면 시간의 4분의 1이라니! 눈치챘겠지만 우리가 꿈이라 부르는 현상이 이 렘수면 단계에서 나타난다.

먼저 렘수면 단계에서 나타나는 몸의 반응부터 알아보자. 렘수면 단계에서는 뇌에서 근육 활동을 일으키는 운동 신경세포로 가는 신호가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꿈속에서 뛰고 날고 심지어 영화 속 액션 배우처럼 치고받고 싸워도 팔다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어젯밤만 해도 기억나지 않는 꿈속에서 팔을 휘두르다 놀라서 깼다.)

꿈을 앞장서 연구했던 프랑스의 과학자 미셸 주베가 1959년에 렘수면을 ‘역설수면(paradoxical sleep)’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서다. 주베는 뇌파는 깨어 있을 때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근육은 이완돼서 움직이지 않는 렘수면 상태에서 ‘모순’을 떠올렸다.

도대체 렘수면은 왜 존재하고 그 상태에서 꾸는 꿈의 정체는 무엇일까? 주베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찾은 거친 답변 가운데 유력한 해석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낮 동안 경험했던 기억 속에 묻힌 감정의 파편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역설수면)’ 뇌에서 공연처럼 펼쳐진 결과가 꿈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때 뇌에서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가 감독을 맡는다.

(대부분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꿈속에서 타인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은밀한 경험을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남모르게 사모하는 짝사랑 상대와 꿈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직장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상사에게 주먹을 날리고, 지구를 지키고, 벼락부자가 되고, 벼랑에서 떨어지는 일 모두가 낮 동안에 쌓인 감정의 파편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꿈으로 구체화하면서, 즉 대안 현실로 나타나면서 감정의 응어리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 꿈은 밤에 은밀히 일어나는 ‘심리 치료’다. 당연히 잠을 잘 때 렘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을 호소할 때마다 잘 자라는 당부가 따라오는데, 사실은 충분한 렘수면, 즉 꿈꾸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직은 연구 초기 단계지만, 꿈은 깊은 잠 단계에서 자리 잡은 기억의 덩어리를 서로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꿈꿀 때 활발하게 일어나는 뇌 활동이 바로 이렇게 각각의 기억을 품은 신경세포 덩어리를 서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우리의 기억은 꿈꾸면서 서로 연결된 작품으로 완성된다. “기억을 지혜로” 만드는 또 다른 과정인 셈이다.

꿈으로 정체성을 바꿀 수 있을까?

바로 이 대목에서 미셸 주베 같은 과학자는 좀 더 대담한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의 기억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작품, 그것이야말로 한 개인의 ‘정체성’ 아닌가? 주베는 이렇게 매일 밤 기억을 재배열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의 총합, 즉 꿈이야말로 유전자와 환경이 뒤섞여 ‘나’를 이루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핵심 과정이라고 봤다.

주베의 주장은 솔깃하지만 꿈을 연구하는 후배 과학자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그 자신도 2017년 세상을 뜰 때까지 실험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2004년 소설 『꿈 도둑』을 펴내 과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주장을 가상 세계에서 밀어붙였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도 ‘미셸 주베’다.

소설 속 주베도 한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꿈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정체성, 즉 인격이 바뀌기 시작한다. 주베의 주장에서 영감을 얻은 한 국가의 정보기관이 꿈을 조작함으로써 한 개인의 정체성을 바꾸는 실험을 진행했고, 그가 실험 대상이 된 것이다. 황당한 이야기라고?

놀라지 말라. 미국의 뇌 과학자 켄 팔러가 바로 그런 연구를 진행 중이다. 팔러는 잠을 잘 때 낮에 경험했던 기억과 연결된 특정한 자극(예를 들어 소리 등)을 주면, 전날 습득한 그 표적 기억(정보)을 정확하게 기억해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억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 같은 편견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이 정도면 색다른 기억 강화 방법을 넘어서는 시도다.

수면, 특히 꿈의 역할을 둘러싼 과학 연구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의 힘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세다는 사실이 확인될 테고, 어쩌면 주베가 주장했듯이 한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좋은 꿈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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