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광명역과 인접한 광명지식산업센터. 이곳의 한 사무실에서 어른 손 두 배 정도 크기의 로봇핸드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전문 오퍼레이터가 센서를 붙인 글러브를 낀 채 손과 팔을 움직이자 로봇핸드가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사람의 손가락처럼 마디마디가 따로 꺾이는 움직임에 지켜보는 이들 모두 놀라워했다. 같은 층 다른 공간에선 여러 대의 로봇핸드를 조립 중이었다. 휴머노이드나 산업용 로봇의 손 부분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테솔로(Tesollo)의 사업장이다.
수백 대의 휴머노이드가 줄지어 행군하고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공중 뒤돌기를 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하지만 휴머노이드가 실제 우리 일상이나 산업 현장에 쓰이기 위해서는 손이 관건이다. 아무리 인간을 닮았어도 물체를 적당한 힘으로 집어 올리거나 옮길 수 있어야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 집게형 그리퍼뿐 아니라 사람의 손처럼 물체를 잡고 돌리고 정밀하게 조작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바로 이 시장에서 한국 스타트업 테솔로가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창업,
사람 손과 유사하게 섬세한 작업 가능한 다관절 모델 개발
테솔로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에서 로봇핸드를 연구하던 김영진 대표가 2019년 설립했다. 연구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만들겠다는 열망이 컸다. 그는 “연구 단계에서 만든 로봇핸드는 논문용으로는 훌륭했지만, 그 성과를 공정 라인에 적용하려면 내구성과 신뢰성에 대한 연구개발(R&D)을 또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그런 부분을 개선해 보려고 로봇핸드 전문기업을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명은 ‘테크놀로지’에 ‘유일하다’는 뜻의 ‘sole’을 결합해 ‘테솔로’라고 지었다. 그 이름처럼 테솔로는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휴머노이드 완성체나 로봇팔 전체가 아닌 ‘손’이라는 말단부에 집중하고 있다(sole에는 말단부라는 뜻도 있다).
김 대표는 “보행의 경우에는 ‘쓰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에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손은 그렇지 않다”며 “물체·환경·작업 종류마다 잘 작동한다는 기준이 달라 잘 작동하는 로봇핸드가 어떤 것인지 정의 내리는 것부터 어렵다”고 말한다. 게다가 손가락은 마디마다 관절이 있어 이를 기계로 똑같이 구현하는 것은 까다로운 영역이다.
그런데도 김 대표가 로봇핸드에 매달린 데엔 연구원 시절부터 이를 개발해 온 열정은 물론, 스타트업으로서 전략적인 고민도 담겨 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이 제한적인데 이걸 분산하면 잘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로봇핸드에 집중해 다양한 사용자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개발을 가속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는 로봇핸드시장 확대를 직감했다. “팬데믹 시기 외국인 근로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등 각종 제조업 현장에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며 “노동력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수요가 반드시 생길 것이고 로봇핸드가 거기에 핵심이 될 수 있겠더라”고 돌이켰다.
로봇핸드가 사람 손처럼 움직일 수 있는지를 따지는 대표적 척도가 ‘자유도(DoF; Degree of Freedom)’다. 자유도가 높으면 사람 손과 흡사하게 정교한 동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손을 대개 24자유도라고 한다. 테솔로의 최신 모델은 20자유도 다관절 로봇핸드로 사람 손에 근접하다. 손가락 각 마디를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복잡한 물체도 안정적으로 잡아낸다. 겹쳐 있는 종이컵을 하나씩 빼 올리거나 얇은 필름을 섬세하게 집어 올리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손가락 끝마디는 확장성을 고려해 금속이나 실리콘 부품으로 갈아 끼울 수 있게 했다.
테솔로는 지난 11월 한국기계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는 ‘2025 대한민국 올해의 10대 기계기술’ 중 하나로 선정됐다. 테솔로의 로봇핸드가 조립·포장·정렬 등 일반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작업하는 게 필수였던 영역을 대체하면서 제조와 물류 각 공정에서 로봇화(robotization)를 주도할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앞서 10월에는 로봇 분야 해외 시상식인 ‘2025 휴머노이드 로보틱스 인더스트리 어워드’에서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는 테솔로가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 첫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으면서 이미 16개국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테솔로의 로봇핸드를 도입하거나 실증에 나섰다. 그 영역도 자동차부터 전자 제조업까지 폭넓다.
조립·포장·정렬 등 사람 손 대체하는 기술력 인정받으며
올해 16개국에 진출
김 대표는 “글로벌 기준으로 봤을 때도 로봇핸드 분야 원톱이라고 평가해도 좋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올해는 다양한 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였다면, 내년부터는 각 나라에서 점유율 확대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추가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테솔로는 올해 30억 원대로 예상되는 매출액을 내년에는 그 두 배 이상인 70억 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지난해 3월 휴머노이드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판단해 앞에 놓인 사과를 집어 주는 장면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휴머노이드 업체 피규어AI의 로봇이 오픈AI와 협업한 결과였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앞으로는 사과를 집어 올리는 건 기본이고 손안에서 사과를 돌리고, 도구를 쓴다거나 섬세하게 손을 움직여야 하는 작업을 로봇이 수행하는 단계가 올 것”이라며 “테솔로는 이때 꼭 필요한 핸드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엔 직접 걸어가야 했던 거리를 자동차의 발명으로 운전해 이동하게 됐듯이 삶의 조건과 환경을 바꾸는 게 혁신”이라며 “내가 하던 일을 로봇이 대신하고 나는 그 로봇의 동선과 일정을 짜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 또한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로봇이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혁신의 흐름 속에서 꼭 필요한 컴포넌트(부품)를 만드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고 목표를 밝혔다.
휴머노이드와 AI를 결합한 피지컬AI가 각광 받고 있지만 그중에서 까다로운 분야가 손이다. 테솔로는 전략적 집중과 기술력으로 이 분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를 이끌겠다는 포부다. K로보틱스 스타트업 테솔로가 세계시장이라는 거대한 ‘사과’를 움켜쥐는 미래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