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이 있었다. 디스코가 있었고, 트로트가 있었다. 포크와 댄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록이 있었다. 19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장르 다양성이 꽃핀 시대였다. 여러 가수와 밴드가 등장해 다채로운 장르의 팔레트를 대중에게 선사했다. 그 중심을 장악한 전설을 대중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1980년대가 장르적으로 다양했다는 점은 다음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전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언더그라운드는 요즘 말로 하면 인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덜한 대신 주류 음악계의 압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를 상징하는 뮤지션과 밴드는 여럿이지만 딱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이 이름이 될 수밖에 없다. 들국화다.
2025년은 들국화의 역사적인 1집 <들국화>가 발매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널리 알려진 이 앨범은 한국 록 역사를 떠나 대중음악 전체에서 1위로 꼽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단지 비평 분야에서의 성취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들국화>는 당시 웬만한 메인스트림 뮤지션의 음반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기본적으로 들국화는 라이브 지향 밴드였다. 1985년 공개된 1집에 콘서트 할인권과 전국 순회공연 일정표를 끼워 넣을 정도로 라이브를 중요시했다. 1977년생인 나는 당시 들국화의 라이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없었지만 내 주변에는 1980년대 중반 그들의 라이브를 봤던 사람이 몇 있다. 공통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들국화 1집을 ‘록’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보면 포크 성향의 노래가 오히려 많다. ‘세계로 가는 기차’,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축복합니다’ 등의 곡이 그렇다. 그러나 들국화의 진면목은 역시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같은 강렬한 밴드 음악에 있다. 마치 공연장의 천장마저 꿰뚫고 치솟을 듯한 전인권의 절창은 들국화라는 밴드의 트레이드마크다.
역사는 길지 못했다. 2집은 기대에 못 미쳤고, 결국 들국화는 1987년 해산을 선언하고 고별 투어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끝냈다. 같은 해 전인권은 멤버 허성욱과 함께 <추억 들국화>를 발표해 인기를 모았다. 1988년 발표한 솔로 앨범에서는 ‘사랑한 후에’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성원의 경우 ‘제주도의 푸른 밤’이라는 명곡을 남겼고, 1990년대엔 패닉이라는 그룹을 프로듀싱했다. 드러머 주찬권 역시 여러 장의 음반을 통해 자기만의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이후의 스토리는 여러분이 아는 그대로다.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다. 잠깐의 재결합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활동도 1집의 거대한 존재감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바꿔 말해 들국화 1집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슴 벅찬 ‘행진’을 들으면서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친다. 큰 이변이 없는 한 50년 후에도,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