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김중혁의 AI와 미래나이스 드림
김중혁 소설가 2025년 12월호

두 사람이 키오스크에 다가갈 때까지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온갖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밀어내던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구영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키오스크의 뒷면 패널을 뜯어냈다.
“형, 노트북이랑 연결 안 해?”
신상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키오스크가 잠들어 있는 맹수인 것처럼,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동물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도 이제 아날로그 인간이 되어보려고. 지난번처럼 또 당할 순 없잖아? 직접 뜯어보자.”
구영대가 속삭이듯 말했다.
“좋았어. 뜯는 건 내가 더 잘할걸?”
“그럼 여기 잡아봐. 같이 뜯어내자.”
신상도와 구영대는 힘을 합쳐 패널을 뜯어냈다. 작은 나사를 풀고, 조심스럽게 선을 뽑고, 부품들을 제거해 나갔다. 키오스크 내부는 복잡할 게 없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빈 공간이 더 많았다. 한참 부품을 걷어냈더니 그 안에 작은 브라운관 화면이 들어 있었다.
“키오스크 안에 텔레비전? 이건 또 무슨 취미래?”
신상도가 브라운관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면서 말했다. 두 손으로 브라운관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상도의 두 손이 스위치 역할을 한 것처럼 갑자기 화면이 켜졌다.
“작동이 되는 거네? 이걸 왜 여기다 넣어뒀지?”
브라운관에 CCTV 화면 같은 흐린 영상이 나타났다. 두 남자가 가게 앞을 서성이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이어서 급하게 뛰어나오는 장면이었다.
“형, 이거 우리 아니야?”
신상도는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주 오래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메모리 시계점의 모습이었다. 화면은 이어졌다. 흑백에서 컬러 화면으로 바뀌었다. 구영대와 신상도가 밥을 먹는 장면이었다. 누군가 멀리서 망원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두 사람의 다양한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도 있었고, 박물관 앞에서 구영대가 신상도의 멱살을 잡는 장면도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전부 다 우리잖아. 이거, 그때, 뭐야, 내가 못 들어간다고 했을 때 형이 내 멱살 잡은 거잖아. 맞지?”
“맞네. 전부 우리네. 우리를 찍은 거네.”
“누가? 누가 이걸 다 찍어?”
“우리가 처음 만난 데가 어디야?”
“아까 거기잖아. 메모리 시계점.”
“그 화면이 있다는 건 우리가 처음 만날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거네.”
“그때부터 우릴 감시했다고? 왜?”
“침착해. 생각 좀 하자.”
구영대가 뒤로 물러서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화면 속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구영대 씨, 잘했어요. 드디어 화면을 켰네.”
신상도는 뒤로 물러나면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화면 속의 여자 영상은 녹화된 게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어딘가에서 송출되는 영상이었다.
“형, 뭐야? 이 여자가 누군데 형 이름을 알아?”
구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상도 씨, 먼저 내 소개부터 해야겠네. 저는 셀레나예요.”
“아···, 맨날 이름으로만 듣던 그 셀레나?”
“네, 그 셀레나.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이제 이야기가 엔딩으로 향해 가네요.”
“뭐가 엔딩이란 말예요? 시작은 어딘데?”
“10년 전, 당신이 나이스 드림에서 꿈을 꾸었을 때, 그때가 바로 이야기의 시작이죠. 기억나요?”
“기억나죠. 악몽을 지워준다더니 오히려 좋은 꿈을 빼앗아 가버렸잖아.” 
“빼앗아 가다뇨.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꿈을 알게 해줬더니···.”
“잠깐 보여주고 그걸 다시 가져갔잖아요.”
“괜히 시비를 거시네.”
낡은 브라운관 속에서 셀레나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신상도의 목소리는 점점 격렬해졌다. 셀레나의 말이 맞았다. 빼앗아 간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죽기 전 젊은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아빠에 대한 선명한 기억을 심어주었다. 신상도는 아빠와의 좋았던 한때를 꿈에서 본 이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그 꿈을 영상으로 갖고 싶어서 나이스 드림을 습격했지만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꿈은 이미 신상도 안에 있었다.
“신상도 씨, 큰 문제가 있었던 건 바로 우리라고요.”
셀레나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나이스 드림에 무슨 문제가 생겨요?”
“신상도 씨의 그 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이 생겼는지 모르죠? 거대한 철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신상도 씨 꿈 기억나요? 옷을 다 벗고 있었던?”
“기억나요. 부끄러워서 제가 꺼달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모니터는 껐지만 꿈은 계속 재생되고 있었어요. 그 꿈이 계속 무한반복되는 바람에 나이스 드림의 코어 엔진에 접근했고, 오류를 일으킨 거예요. 완전 엉망진창이 되었고, 다른 고객들의 꿈에도 영향을 끼쳤어요. 그걸 바로잡는 데 몇 년이나 걸렸다고요. 아직도 완벽하게 잡지 못했지만···.”
“나이스 드림 때문에 제 인생이 망가진 건 어떻게 할 건데요? 그때 좋은 꿈을 보는 바람에 그걸 갖고 싶어졌고, 그걸 가지려고 들어갔다가 범죄자가 된 거잖아요. 이렇게 살게 된 건 전부 나이스 드림 때문이라고요. 나한테는 하나도 나이스하지 않은 곳이에요. 회사 이름을 바꾸세요. 나이트메어로.”
“신상도 씨의 그 꿈은 일종의 바이러스였어요. 그게 증식하고 변이하면서 나이스 드림 속에서 계속 퍼져나갔죠. 우리도 회사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구영대 씨가 큰 역할을 해줬어요.”
나이스 드림을 해킹하다 검거됐던 구영대는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조건으로 나이스 드림 일을 돕기로 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일을 맡기는 줄 알았는데, 회사의 사운이 걸린 일이라고 했다. 회사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는데, 그 바이러스를 막아낼 백신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구영대는 신상도에게 접근했다. 메모리 시계점에서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범죄를 통해 가까워졌고, 끈끈해졌다. 검거될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셀레나와 나이스 드림이 해결해 주었다. 구영대의 역할은 신상도와 가까워진 후 그의 꿈을 계속 추출하는 것이었다. 나이스 드림의 신형 고글을 신상도에게 선물했다. 신상도는 고글이 꿈을 녹화하는 줄도 모르고 밤마다 고글을 착용했다.
“야, 이거 신형 고글인데 숙면을 도와주는 거래. 써볼래?”
구영대는 이런 말로 신상도를 속였다.
“형, 이거 완전 끝내줘. 나 불면증 있잖아. 어제 몇 시간 잤는 줄 알아? 여기서 나오는 음악 들으니까 잠도 바로 오고, 여덟 시간이나 꿀잠 잤어.”
신상도는 선물받은 고글을 몹시 좋아하며 아꼈다.
실제 꿀잠을 자게 해주는 기능도 있는 고글이었다. 나이스 드림은 수면 유도 기능을 개발했고, 사용자가 잠으로 빠져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꿈 캡처가 시작된다. 문제는 고글의 성능이었다. 휴대용 꿈 캡처도구이다 보니 제대로 된 영상으로 변환하는 것은 힘들었고, 그저 어떤 꿈인지 알아볼 수 있는 정도로만 저장이 가능했다.
“구영대 씨,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요. 지금 당장이라도 신상도를 데려와서 꿈을 뽑아내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는 백신을 만들 수 없대요. 신상도의 꿈을 오랫동안 수집한 다음에 백신을 만들 수 있대요. 구영대 씨의 역할이 중요해요. 계속 신상도 옆에서 관찰하고 지켜보세요. 성능 좋은 고글이 개발되면 또 드릴 테니까 신상도가 계속 꿈을 캡처하도록 해주세요. 한 달에 한 번, 신상도의 고글에 있는 파일을 뽑아서 우리한테 주시면 됩니다.”
셀레나는 구영대에게 임무를 설명할 때 시간을 특정하지 못했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10년이 흘러버렸다. 셀레나가 키오스크 일을 설명하면서 “이번 일이 마지막 임무가 될지도 모르겠어요”라고 했을 때 구영대는 믿지 않았다. 전에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구영대는 처음에 신상도를 속인다는 죄책감에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자기 합리화를 했다. 신상도를 해치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돕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꿈 몇 개 빼오는 것이 대단한 범죄처럼 생각되지도 않았다.
“신상도가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더욱 심각한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셀레나와 내가 뒤를 봐주니까 취미 활동하듯 도둑질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셀레나와 내가 없었더라면 신상도는 진작에 철창 신세를 졌을 것이다.”
구영대는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다. 그 문장을 보면서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신상도를 돕는 사람이다’라며 최면을 걸었다.
키오스크를 해킹하는 동안 벌어졌던 일은 구영대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셀레나가 말해주지 않았다. 경찰에게 쫓겼던 일도, 안전가옥으로 피했던 일도 구영대는 미리 알지 못했다. 셀레나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모든 게 곧 끝날 거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셀레나는 브라운관 속에 있었지만 갇힌 사람 같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주위를 훑어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완성됐어요. 신상도가 브라운관을 만지는 순간, 두 손으로 터치하는 순간 엔딩이 시작된 거예요. 예전에 신상도가 구영대 씨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형, 가장 아날로그한 게 제일 멋진 거예요. 이렇게 만지면 에너지가 통하는 걸 느낄 수 있다니까요.’ 나는 그 말이 좀 멋졌어요. 거기서 답을 찾았죠. 그래, 그동안 많은 조각들을 모아뒀으니까 신상도가 여기에 직접 와서 꿈을 꾸게 만들면 모든 게 완성되겠구나.”
“그래서 뭐 저를 잠들게 하겠다고요? 어디 해볼 테면 해보···.”
신상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영대가 신상도의 허벅지에 마취총을 쏘았다. 신상도는 구영대를 돌아보려다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자, 이제 제 역할은 끝난 거죠? 셀레나.”
구영대는 바닥에 마취총을 버렸다.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잘했어요, 구영대 씨. 곧 신상도를 데리러 나이스 드림의 직원들이 도착할 거예요. 이제 어떡할 거예요?”
“뭘 어떡해요?”
“신상도가 자신을 속인 구영대 씨를 받아줄 리도 없고, 혼자서 일해본 것도 너무 오래전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냔 얘기죠. 이제는 나이스 드림도 구영대 씨를 케어해 드릴 수 없을 거예요. 경찰로부터 보호해 드릴 수도 없고, 장비나 인력 지원도 해드릴 수 없고요.”
“잘 알죠. 이제 더 이상 나이스 드림에는 필요 없는 인간이죠.”
“그동안 고마웠어요. 10년이라니···, 참 긴 시간이었네요.”
구영대는 누워 있는 신상도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악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신상도를 돕는 일이라고 속여왔는데 이번에는 신상도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말았다. 웅크리고 있는 신상도가 추워 보였다. 구영대는 신상도에게 자신의 재킷을 벗어서 덮어주었다. 그때 재킷 속에 있던 알프가 경고음을 냈다.
“키오스크의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번 작전의 성공 확률은 30퍼센트입니다. 작전을 취소하길 요청합니다.”
구영대는 재킷 속의 알프를 꺼내서 리셋 버튼을 길게 눌렀다. 알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끝>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