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바게트값이 싼 이유는?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5년 12월호

여행 유튜브를 즐겨 본다. 그 순간만이라도 여행을 떠난다. 미국과 유럽 여행은 비싼 물가가 눈에 띈다. 두 명이 식당 밥값으로 일이십만 원 내는 건 보통이다. 내가 유럽을 다니던 때 궁리를 짜냈다. 하루 두 끼를 먹되 아침은 호텔의 조식, 저녁은 슈퍼를 이용하기로. 슈퍼에서 산 재료로 저녁을 먹었고 매일 다른 메뉴를 짰다. 다음은 그때 프랑스에서 쓴 메모다. 싼 빵값을 주목해 주시라.

“모차렐라치즈 한 덩어리 2.2유로, 미니 바게트 1개 0.8유로, 믹스 샐러드 1.8유로 = 4.8유로”, “저민 햄 3.4유로, 저민 치즈 3.2유로, 바게트 1.5유로, 초콜릿 2.4유로 = 10.5유로”.

두 번째 메뉴는 3분의 2 이상 남아서 다음 날 점심으로 또 먹었다. 유로 환율이 아주 높은데, 물가 비싼 유럽에서 그들에게 1유로는 우리 감각으로 대략 1천 원의 가치다. 환율 감각을 그대로 적용하면 맞지 않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큰 바게트 한 개에 2천 원이 안 된달까. 어쨌든 싸다. 빵값만큼은 사회적·국가적 통제 아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오랫동안 빵값을 통제했다. 18세기 구체제(ancien regime)부터 그랬다. 빵값 폭등이 바로 1789년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전 국토가 황폐한 상태였다. 농사지을 청년들이 전쟁에서 죽었다. 비료도, 트랙터 기름도 없어서 농사가 잘될 리 만무. 인플레이션도 밀어닥쳤다. 빵값 안정은 정부가 사활을 걸고 챙긴 과제였고 매년 빵 판매가격을 통제했다. 빵의 무게와 길이, 지역별 값이 법령으로 정해졌다. 가격 통제는 1980년대에 풀렸지만 품질 규격은 강화됐다. 이른바 빵 법령(le decret pain)을 공포했다.

“전통 바게트(baguette de tradition francaise)는 제빵 현장에서 직접 제조돼야 하며 냉동 반죽, 첨가제, 보존제 등을 사용할 수 없다.” 우리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정부가 국밥, 짜장면 등의 대중 식사 가격에 개입했다. 가격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가격을 사실상 통제했다. 공산품 중에는 라면이 그 주요 대상이었다. 라면값이 상대적으로 싼 것은 이런 역사가 반영돼서다. 프랑스 바게트를 우리 식생활에 대입하면 쌀(밥)이다. 쌀값 폭등은 민심의 바로미터였다. 짜장면값이 오르는 건 어찌어찌 참아내도 쌀값이 오르면 민심이 흉흉해졌다. 수매가도 정부에서 정하고, 쌀값도 사실상 정부 소관이었다.

지금은 정부가 가격을 정하지 않지만,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식생활 변화로 밀가루 등 대용식을 엄청 많이 먹게 되면서 국민이 쌀값에 기울이는 관심이 옅어지기는 했다. 그래도 예민한 대상이다. 농민이나 소비자나 쌀값은 상징적인 생존의 가피로 인정받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로 쌀을 넉넉히 사지 않는다. 언제든 살 수 있고, 소비량도 적어서다. 하지만 연세 있는 분들은 여전히 여유 있게 사고, 보관량이 많다.

쌀은 심리적으로 식료품이 아니라 그 너머 어디에 있는 든든한 저축이다. 요즘 소설가는 궁핍한 상황을 묘사할 때 ‘인터넷도 끊기고 커피도 떨어졌다’라고 할 텐데 과거 작가들이 상투적으로 쓴 표현은 이랬다. “쌀독에 바가지 긁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에 쌀을 꾸러 갔다···.”

쌀을 아무리 적게 먹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쌀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굳이 식량안보니 하는 걸 떠나서도 그렇다. 따스하게 지은 쌀밥 한 그릇의 미덕을 떠올려보시라.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