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은 종이에 쓰고 있다. 다 쓴 다음 컴퓨터로 옮길 것이다. 전체 원고를 종이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원고량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원고 청탁을 받을 때 ‘원고지 몇 매 분량’, ‘A4 몇 페이지 분량’이라는 기준이 있는데, 정작 종이에 쓰는 동안에는 정확한 분량을 계산할 수 없다. 워드 프로그램으로 글을 쓸 때는 지금까지 몇 글자를 썼는지, 몇 단어를 썼는지, 그걸 원고지에 옮기면 몇 장쯤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종이에 쓰는 동안 나는 여러 단어를 지웠고, 글씨의 크기도 제각각이고, 띄어쓰기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한 분량을 계산할 수 없다.
얼마 전부터 소설도 종이에 쓰고 있다. 단순한 이유였다. 다르게 써보고 싶었다. 키보드로 글을 쓰는 것과 종이에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란 사실을 깨닫고 있다. 키보드로 글을 쓸 때면 늘 생각이 앞서 달린다. ‘생각하는 나’와 ‘기록하는 나’가 분리된다. ‘기록하는 나’는 늘 저릿한 손목 통증을 달고 사는,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재치로 똘똘 뭉쳐 있는, 새로운 생각으로 남들을 놀라게 하고 싶은 사람이다.
둘은 서로 싸우며 일한다. ‘기록하는 나’가 힘들다며 휴식을 요구할 때도 있고, ‘생각하는 나’가 머리가 굳었다며 산책을 함께 나가자고 조를 때도 있다. 종이에 만년필로 글을 쓸 때는 두 사람이 분리되는 경우가 적다. 생각의 속도와 글쓰기의 속도가 비슷하다. 어쩌면 빠른 글쓰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각이 느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의 기념관에 가면 가장 흥미롭게 보는 것이 ‘자필 원고’다. 위대한 화가들도 엉성한 스케치를 남겼고, 완벽해 보이는 작가들도 지운 글자가 많다. 위로가 된다. 어떤 문장을 지웠고 어떤 문장을 남겼는지 확인하면 글 쓰는 사람의 마음 궤적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나는 지운 문장들이 실패의 흔적 같아서 좋아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실패를 하더라도 그걸 기록하긴 힘들다. 영화 <트루먼 쇼>처럼 삶의 모든 순간이 기록된다면 모를까,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글쓰기에서만큼은 실패의 흔적을 기록할 수 있다. 워드 프로그램에도 수정의 흔적을 기록하는 기능이 있지만 종이에 만년필로 쓰는 것만큼 직관적이지는 않다. 지운 내용이 남고, 고치기 전의 생각을 볼 수 있다. ‘쓸모없음의 쓸모’이고, 지워지면서 완성에 기여하는 것이고, 허공으로 건물의 중요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종이에 썼다. 원고지 8매 분량을 요청받았는데, 6매쯤 썼다. 종이 원고를 컴퓨터로 옮기면서 지운 내용은 대부분 ‘그렇지만’, ‘그러나’ 같은 접속부사들이었다. 종이에 쓸 때는 사고의 흐름이 보여서 자연스러웠는데, 옮기면서 보니 불필요해 보이는 게 많았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결론이 달라진다. 최대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면 내 속의 다양한 의견들이 더 자주 싸우게 될 것이다. 나는 만년필과 컴퓨터와 연필과 태블릿과 휴대전화를 수시로 바꿔 사용하면서 그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