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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양구의 과학토크멍때리기의 배신: 뇌가 당신을 공격할 때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6년 01월호


오전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혼자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모니터를 보고 있거나 점심 먹고 노곤한 상태로 오후 업무를 준비 중인가? 아니면, 오늘따라 혼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사무실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나? 그렇다면 잠시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머릿속에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불쑥불쑥 떠올랐을 테다. 지금 한창 몰두하고 있는 업무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괜히 가족에게 짜증을 부리고 나온 일로 미안한 감정까지. 그러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을 수도 있다. “아, 그래서는 안 됐는데.” 혹은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을 수도 있다.

기까지 읽고서 ‘어, 맞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라면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뇌는 특별한 일에 몰입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활동한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은 바로 그런 뇌 활동의 결과다. 2000년대 들어서 과학자들은 뇌의 그런 상태를 ‘기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멍때리기가 중요한 이유
아직도 기본 모드가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힌다면 그냥 멍하니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렇게 멍한 상태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여러 가지 딴생각이 떠오른다. 이 딴생각을 조금 고상하게 ‘내적 독백’ 혹은 ‘내면의 혼잣말’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런데 굳이 멍한 상태에서 뇌 이곳저곳의 에너지를 써가며 딴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딴생각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자. 딴생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는 과거의 경험이다. 가끔 ‘이 시점에 그 생각(그 사람, 그 장소, 그 경험 등)이 왜 나지?’ 묻고 싶을 정도로 맥락 없는 기억의 조각이 돌출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일이다.

이 두 종류의 딴생각은 기본 모드의 핵심 역할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설명한다. 우선, 뇌는 기본 모드 상태에서 저장돼 있는 기억 정보를 정리한다. 중요하고 유용해서 다시 꺼내 쓸 가능성이 큰 정보는 그것이 새겨져 있는 신경 세포의 연결을 강화하고, 애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혹은 쓸모가 없어진 정보는 그것이 새겨진 신경 세포를 가지치기한다.

그렇게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억 조각이 바로 딴생각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본 모드는 과거의 정보를 토대로 미래에 우리가 특정한 자극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학습한다. 이 과정에서 미래를 상상하고 걱정하는 일은 어찌 보면 필수적인 일이다.

이렇게 기본 모드에서 딴생각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기억을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다르게 말하면 바로 자기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멍때리며 딴생각하는 시간을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소셜미디어나 ‘쇼츠’ 콘텐츠에 끊임없이 주의를 빼앗기며 쓸데없이 몰입하는 현대인에게 멍때리는 시간이 중요한 이유다.

여기서 반전! 이렇게 중요한 기본 모드는 뜻밖에 심각한 위험성도 있다. 이 역시 자기를 가만히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이든 미래의 상상이든 딴생각의 명암을 따져보면 밝은 것(긍정)과 어두운 것(부정) 가운데 어느 쪽이 많았나? 전자(긍정)보다 후자(부정)가 많다고 답한다면 역시 정상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인류가 진화해 온 수백만 년의 시간 동안 살아남은 이들은 누구일까? 과거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렸던 위협(부정)을 되새기고,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상상하고(부정) 걱정하며 대비했던 이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컸다. 우리는 그렇게 걱정하면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조상의 자손이다.

이런 진화의 흔적은 뇌 구조에도 또렷하게 자리 잡았다. 뇌에서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는 편도체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편도체는 바로 뇌에서 감정, 특히 공포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처리를 맡아서 하는 기관이다. 해마와 편도체가 가깝다 보니 기억 가운데 부정적인 감정이 묻어 있는 것일수록 더 강렬할 수밖에 없다.

이제 기본 모드가 위험한 이유를 알았을 테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딴생각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묻은 딴생각에 잡아먹힐 수가 있다. 그렇게 딴생각에 잡아먹힌 결과가 바로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현대인에게 갈수록 많아지는 정신 질환이다.

최근에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스포 주의). 오랫동안 함께했던 회사 동기가 퇴사 압력에 몰려 자살을 시도하고 나서, 여러 불운이 겹쳐 자기도 25년 다닌 회사에서 쫓겨난 김 부장은 시도 때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다 결국 과호흡과 같은 공황 장애, 즉 불안증을 앓는다. 딴생각에 잡아먹힌 것이다.

딴생각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알고 보면, 과학자까지 나서서 권하는 명상의 효과가 바로 기본 모드의 부정적 효과를 막는 일이다. 명상할 때 항상 ‘마음을 비우고 손끝의 감각이나 호흡의 감각에 집중하라’고 권하는 이유도 ‘딴생각과 거리를 두고’ 감각이나 호흡 같은 대상에 잠시라도 ‘몰입’하는 상태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긴장은 이완하면서도 딴생각에 잡아먹히는 일은 막으려는 것이다.

현재 부정적인 딴생각 연구의 최고 권위자는 심리학자 이선 크로스다. 그는 부정적인 딴생각이 폭주할 때의 대비책으로 ‘벽에 붙은 파리’가 되는 방법을 최우선으로 제안했다. 벽에 붙은 파리가 상황을 지켜보듯이, 내 고민과 거리를 두고 마치 남의 일인 양 멀리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말이 쉽지, 마음먹은 대로 될 리 없는 어려운 조언이다.

좀 더 쉬운 방법도 있다. 한 가지는 “강양구! 정신 차려!”, “양구야! 그러면 안 돼!” 이렇게 자기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면서 상황을 살펴보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놀랍게도 드라마에서 김 부장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자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며 딴소리 지옥을 헤쳐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 방법이 가장 쉽다. 공간 환경을 바꾸면, 특히 숲이나 바다 같은 자연 풍경에 노출될수록 딴생각의 폭주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게 어떻게 쉽냐고? 우리 뇌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모니터 대기 화면을 자연 풍경으로 바꿔놓고, 딴생각이 폭주할 때마다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새해에는 중요하지만 과하면 절대로 안 되는 딴생각을 내 편으로 만들어보자. 나도 당장 모니터 대기 화면부터 멋진 자연 풍경으로 바꿨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렇게 기본 모드를 내 편으로 만들면 뜻밖의 이득도 있다. 바로 기본 모드에서 엉뚱해 보이는 기억 조각들이 서로 부딪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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