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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순대는 어디서 왔을까?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6년 01월호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그랬다. 먹성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데 고기만큼은 많이 먹지 못했다. 누가 고깃집 가자고 하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삼겹살 1인분을 겨우 먹을까 말까 했고 무슨 이유인지 고깃집에만 가면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순대만큼은 잘 먹었다. 딸려 나오는 내장이며 머릿고기도 꽤 먹었다. 어려서부터 먹어서였을까.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순대를 얻어먹곤 했다. 당시 시장에는 순대좌판 골목이 크게 있었다. 대충 목로(나무로 된 등받이 없는 장의자)에 둘러앉아 찜솥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순대를 썩썩 썰어주면 마구 집어먹었다. 순대에는 내장을 섞어주는 게 기본이었다. 난 그때도 간을 좋아했다. 초등학생이 순대 좌판에 앉아 “간 많이! 허파 조금”을 외친다고 상상해 보시라. 

요즘 나는 그 시절 그대로 좌판이 있는 시장에 가길 좋아한다. 재래시장에서도 순대좌판은 거의 사라졌다. 대개는 가게를 얻어 정식으로 장사를 하는 집만 순댓국을 팔면서 살아남았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순대는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린 소중한 존재였다. 순대를 시키면 뚝배기에 대충 된장 풀고 돼지뼈로 우린 국물을 내줬다. 좌판에 쭈그려 앉아 그 국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차가운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던 사내들의 등판을 많이도 봤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전국을 돌며 노포를 이십여 년 취재했다. 업종별로 보면 국밥집이 제일 많다. 다른 국밥과 달리 순댓국집은 기사쓰기가 상당히 어렵다. 해장국이나 곰탕집은 옛 문헌에도 자주 나오고 언론 자료도 많다. 하지만 순댓국집이 어떻게, 왜 이렇게 많이 생겨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요즘 말로 ‘레퍼런스’가 드물다. 1970년대 공장형 사육이 늘면서 그 부산물을 다루는 순댓국집도 많이 생겼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순댓국을 먹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과거에는 돼지 말고도 소, 양이나 개 등으로 순대를 만들었다. 19세기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양(羊)의 염통, 양, 창자를 깨끗이 씻어 양의 고기를 다져 파, 기름, 간장으로 양념하여 창자에 채워 넣고 삶는다”는 순대 제조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또 1670년경 나온 다른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소의 창자에 여러 재료를 넣어 삶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17세기에도 순대 형태의 음식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순대는 당시 고급 음식이었던 것 같다. 이런 조리서 자체가 양반의 음식문화를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순대의 기원도 미스터리다. 순대의 시작을 보통 ‘몽골 전래설’로 본다. 이 주장에 따르면 순대는 13세기 몽골이 고려를 침입한 시기에 전해진 음식이다. 몽골어로 양의 창자 요리를 뜻하는 ‘순다이(sundai)’ 또는 ‘쉬르데(shurde)’가 순대의 어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몽골에는 양의 창자에 양고기와 양파, 마늘 등을 넣어 만든 전통 음식이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순대가 몽골에서 왔다는 직접적인 문헌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유사한 음식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상식적으로 짐승을 잡으면 내장에 피와 고기를 넣어 쪄 먹는다는 발상은 어느 지역에서나 자연발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순댓국의 난제는 또 있다. 바로 순대 없는 순댓국이다. 꽤 많은 집에서 그렇게 판다. 순댓국을 시켰는데 순대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총신대입구역 근처 시장의 순대국밥집에는 아예 “우리 순댓국에는 순대가 들어 있지 않다”고 써놨다.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경고문인 셈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런가 보다’ 하고 항의하지 않는다. 

돼지머리를 푹 고아서 뽀얀 국물을 내고, 내장과 순대 몇 점을 썰어 넣은 국밥 한 그릇이 너무도 간절하다. 막걸리 한잔을 곁들여서 그렇게 겨울을 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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