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다시 꺼내 읽는다. 프롤로그만 읽었는데도 가슴이 뛴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애가 타 황급히 책을 덮고 미문을 가만히 음미한다. 따로 꾸미지 않은 건조한 문체인데도 깊은 통찰력이 투명하게 비치는 문장이 지독하게 아름답다. 김훈은 문장을 짧게 쓴다. 그런데도 읽다 보면 종종 숨이 찬다. 단어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밀도 때문이리라. 그는 대표작 『칼의 노래』를 쓸 때 소설을 여는 첫 문장을 “꽃은 피었다”로 할지, “꽃이 피었다”로 할지 조사 하나를 두고 고민하며 날밤을 새웠다고 한다. 담배를 끊어가던 무렵인데도 한 갑을 다 피우며. 편집자들도 그 밀도를 알아서일까, 선생의 책은 대체로 행간의 품이 넉넉하다. 다행이다.
내 여행의 기원이 되어준 책
김훈 산문의 정수로 알려진 『자전거 여행』은 작가가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길에서 본 풍경과 만난 사람들, 떠올린 생각을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원고지에 눌러쓴 에세이집이다. 오래된 여행기지만 세월을 가로질러 여전히 단단하고 빛난다. 고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읽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책의 배를 잡고 후루룩 넘겨보니 민망할 정도로 밑줄이 많다. 다시 정독할 요량이지만 급하게 한 대목을 먼저 찾아 읽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목.
재첩은 콩알만 한 크기의 민물 조개다. 섬진강 아랫마을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그 국물은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고, 그 맛은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다. 차마 안쓰러운 이 국물은 그 안쓰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워준다.
가장 낮은 곳에 사는 가장 작은 조개 속에 깊은 맛이들어 있다. 조개 몇 마리와 물과 소금이 그 국물의 형식의 전부다. 재첩 국물은 삭신의 구석구석으로 스며 들뜬 것들을 가라앉힌다. 재첩 국물 속에도 작은 숲이 들어앉아 있다.
내 고향 부산의 어른들은 재첩국을 즐겨 먹는다. 낙동강 하구에서 많이 잡혔다고 한다. 어릴 적엔 새벽녘의 주택가 골목마다 재첩국이 담긴 양철동이를 머리에 이고 목청 좋은 소리로 “재치국 사이소, 재치국” 하며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흔했다. 숙취에 좋아 아버지가 특히 애정했는데 나는 재첩국의 심심한 맛이 입에 맞지 않아 오래도록 먹지 않았다. 하지만 김훈의 미문은 안 먹는 재첩국도 먹고 싶게 만들었다.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은 국물이라니, 작은 숲이 들어앉아 있는 국물이라니! 세상에 어떤 음식이 이런 상찬을 들을 수 있을까. 글을 읽었을 땐 이미 낙동강 재첩은 멸종되다시피 해 부러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여행을 가 섬진강 재첩국을 먹는 유난을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군대에 있을 때 읽었다. 당당하고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없던 시절이라 잠과 맞바꿔 밤에 조금 읽고, 점심을 거르고 화장실에 숨어서 조금 더 읽고. 그때도 한달음에 읽지 않고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었다. 청년 시절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내 여행의 기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책. 타인의 여행을 통해 내 여행을 반추하고 가다듬어보려는 이번 연재에서 처음으로 꺼내든 책이니 말 다했다. 각설하고, 덮었던 책을 다시 들춘다. 그때도 좋았지만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더 좋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오르막에서 지친 몸이 내리막의 바람 속에서 다시 살아나 자전거는 또 다른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오르막이 끝나는 고갯마루 쪽을 아예 잊어버리고 길바닥에 몸을 갈면서 천천히 나아가야만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 타기는 생각할 것도 없는 단순한 행위 같은데, 김훈은 그것을 잘 관찰하고 낱낱이 통찰해 이토록 아름답게 본질을 풀어헤친다. 문장 몇 개를 옮겨적는 동안 연신 탄복이 터져 나왔다. 20대 때 나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돈벌이의 의미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영화판은 열정을 볼모로 착취가 횡행했다. 교통비라도 아끼려면 늘 자전거를 타야 했다. 김훈의 자전거 찬미를 읽고 보니 내 삶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가 보통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다. 단순하지만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계장치, 오직 몸으로 저은 만큼만 나아가는 정직한 운송수단. 내겐 늘 자전거가 있었고 지금도 두 대를 갖고 있다. 꽤 잘생긴 녀석 하나와, 앙증맞게 접히는 녀석 하나.
차로 갈 때는 절대 만날 수 없을 자전거 여행의 환희들
김훈에 견주자면 쭈그러들어야겠지만 나도 자전거가 너무 좋다. 빈곤한 청년 시절을 함께 건너온 동지 같아서랄까. 요즘은 예전만큼 자전거를 탈 일이 없지만 집에 드나들 때마다 계단참에 놓아둔 자전거에 잊지 않고 눈길을 준다.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자전거 사진이 여럿이고, 자전거 여행자라도 만나면 내가 더 신이 나 주머니에 든 것을 다 내어준다. 물론 내가 자전거 여행자가 되기도 한다. 호주의 동부 해안을 자전거로 여행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 촬영이 없는 여름이면 일본 홋카이도로 자전거 여행을 가려고 벼르고 있다. 자전거로 여행할 땐 세상이 느리게 흘러간다. 그러니 구석구석 야무지게 구경하고 찰지게 사람을 만난다. 차로 갈 때는 절대 만날 수 없을 여행의 환희들.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향기도 난다. 아이들은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자란다. 이 아이들을 끌어안아보면, 아이들의 팔다리에 힘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서는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이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20여 년 전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인데, 다시 읽어도 까닭 없이 눈물이 핑 돈다. 주체하지 못해 밑줄을 덧댔다. 김훈은 친구 김용택 시인이 사는 전북 임실에 종종 여행을 가 동네 아이들이며 동네 개들까지도 다 사귀었다고 한다. 안장 높이를 낮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한 것은 물론이다. 보통의 시골 분교 아이들도 선생의 글 속에선 비상한 아름다움을 품은 존재가 된다. 세월이 무상해 지금은 잊힌 기억이지만 오래도록 김훈을 흠모했다. 선생의 날렵한 관찰력과 묵직한 통찰력, 고고한 문장을 닮고 싶어 여행을 수행으로 여기며 그토록 열심히 다녔나 보다.
머리글을 보니 김훈은 50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자전거 여행을 한 모양이다. 몇 년 지나면 나도 곧 쉰이다. 수행이 한참 부족했던지 내 사유와 문장은 뭉툭해 김훈의 것에 한참 못 미친다. 그를 따라가려는 허황된 노력은 이미 오래전에 관두었다 해도, 선생 덕분에 열심히 여행하고 공부하게 됐으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내가 가진 『자전거 여행』은 초판이다. 절판되었으니 귀한 책인데 당시에 함께 영화를 공부하던 선배가 선물해 준 책이라 더욱 귀하다. 헛장에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녀의 글귀가 남아 있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누빌 날을 기다린다. 김훈의 보석 같은 글을 함께 읽어서 기분이 좋다. 2001년 8월 공정미.” 공정미의 말마따나 좋은 글을 나눌 때의 행복이 있다. 부족하나마 김훈의 아름다운 여행기에 헌사하는 글을 쓰게 되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