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립·자강을 실천할 경우 ‘국산화→수입 감소→한국 기업에 대한 불리함’으로
이어질 것이란 인식은 중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파급효과를
수출입 증감의 문제로 축소 해석하게 한다.
최근 중국에서 산업·기술 정책을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가 ‘과학기술 자립·자강 전략’이다. 중국 정부는 2022년 이후 각종 정책 문건과 공식 발언을 통해 이 개념을 전면에 내세워 왔으며, 현재는 중국의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을 관통하는 핵심 기조로 자리 잡았다.
해외 의존 줄이고 기술 주도권 확보하는 자립·자강 전략,
재정·금융·산업·인재·제도 등 패키지로 작동 중 중국이 말하는 과학기술 자립·자강 전략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반도체, 핵심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의 취약 지점으로 인식돼 온 분야에서 해외 의존을 줄이고, 외부 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술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취약 영역을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 공급이 끊길 수 있는, 이른바 ‘목을 조를 수 있는’ 지점이라는 뜻의 ‘차보즈 기술’이라고 부르며 산업 경쟁력은 물론 경제안보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소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정책 문구에서의 ‘자립(自立)’은 핵심 기술과 제조 역량의 외부 의존도를 낮추는 단계를, ‘자강(自强)’은 이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단순한 기술 추격을 넘어 산업의 규칙과 구조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인식은 2018년 미중 무역갈등 이후 더욱 강화됐다. 글로벌 기술·투자 환경에서 중국을 둘러싼 제약요인이 확대되자 중국은 기술과 산업의 외부 의존이 곧 경제안보의 취약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체감하게 됐다. 이후 중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자주적 혁신’을 뛰어넘는 더욱 강한 의미의 자립·자강으로 방향을 잡게 됐다.
중요한 것은 이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가다. 중국의 자립·자강 전략은 단순한 기술개발이나 국산화 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재정 투입, 금융 지원, 산업 육성, 인재정책, 표준제도 정비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특정 산업이나 품목을 육성하는 수준을 넘어 기술과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익숙한 인식에 기대어 이 전략을 단순하게 이해해 온 측면이 있다. 중국이 자립·자강을 실천할 경우 ‘국산화→수입 감소→한국 기업에 대한 불리함’으로 이어질 것이란 인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만으로는 중국이 무엇을 바꾸려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중국의 자립·자강은 특정 품목의 생산 여부가 아닌 기술·금융·인재·시장·제도가 결합된 산업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하면 중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파급효과를 수출입 증감의 문제로 축소 해석하게 된다. 이제 중국의 자립·자강을 둘러싼 세 가지의 익숙한 인식을 차분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자국 기술 대체’가 아닌 ‘산업 재편’ 전략…
한국은 중국 자립·자강 생태계 ‘안쪽’에 자리 잡아야 첫째, 자립·자강의 방향이 ‘제품의 국산화’라는 인식이다. 중국의 자립·자강이라는 표현은 흔히 ‘외국 기술을 중국산으로 대체한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중국은 반도체, 산업용 소프트웨어, 핵심 장비 등에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정책 수단과 재정 투입의 실상을 보면 중국이 집중하는 대상은 국산 제품개발을 넘어선다. 중국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정부인도기금, 산업 클러스터, 국가급 연구 인프라, 인재육성정책을 하나의 흐름으로 결합하고 있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작동하는 환경을 먼저 구축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자립·자강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것이 ‘국산 제품의 목록’보다는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 기술 생태계와 국가혁신 체계임을 보여준다.
둘째, 자립·자강 전략으로 수입이 감소할 것이라는 인식이다. 중국이 전략산업을 육성하면 수입이 줄어든다는 인식도 익숙하다. 실제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서 이러한 변화는 이미 확인되고 있다. 중국이 해당 분야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한 이후 완성차와 배터리, 부품 수입은 장기적으로 감소했고, 태양광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이 글로벌시장을 주도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그러나 중국정책의 목적은 특정 품목의 수입을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중국이 지향하는 것은 기술·공정·금융·데이터·인재가 결합된 완결형 산업 구조다. 이 구조 안에서 일부 품목이나 기술은 계속 수입될 수 있고, 외국 기업과의 협력 역시 유지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수입 규모 자체가 아니라 해당 산업이 외부 기술·자본·공급망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가다. 중국은 개별 품목보다 산업 전체의 ‘자주적 내구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셋째, 중국의 자립·자강이 강화될수록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물론 일부 품목에서는 중국의 기술 내재화가 한국 기업의 수출 기회를 제한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중국의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 등 외국 기업이 어느 정도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위치와 역할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국의 산업 생태계가 고도화될수록 핵심 공정, 표준 제정, 인증 체계, 데이터 규칙 등 산업의 운영 규칙이 새롭게 정립되고 있다. 이 과정에 외국 기업과 기술이 얼마나 깊이 참여하고 의견을 내느냐에 따라 중국의 산업 시스템 안에서 수행하게 되는 역할 역시 달라진다. 즉 ‘중국에 제품을 팔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설계하는 산업 구조 안에서 어느 단계까지 함께 들어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해 보면 중국의 자립·자강은 외국 기술을 국산으로 바꾸는 문제보다는 산업의 작동 방식을 재편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개별 기술이나 품목보다 기술·자본·인재·시장·규칙이 결합된 산업 구조 자체를 중국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의 대응 역시 수출 확대나 생산 이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국의 자립·자강이 기술·금융·인재·시장·규칙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전략이라면 우리도 이 정책 생태계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표준 제정, 인증 체계, 공정 기준, 데이터 규칙 등은 중국 산업 구조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기업이 이 영역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경우 중국 산업 생태계 안에서 자리를 확보할 여지가 생긴다. 이는 중국 표준을 무조건 수용하자는 뜻이 아니다. 규칙이 굳어지기 전에 그 형성 과정에 개입해 불리한 구조를 최소화하자는 전략적 대응이다.
결국 중국의 자립·자강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국 기업의 전략도 달라진다. ‘무엇을 덜 팔게 될 것인가’보다 중요한 질문은 ‘중국이 재편하는 산업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다.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중국의 자립·자강 시대를 대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