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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쓸모없음의 쓸모쓸모없음을 희망한다는 것
김중혁 소설가 『펭귄뉴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작가 2026년 02월호


이 꼭지의 제목인 ‘쓸모없음의 쓸모’는 담당 편집자가 붙여준 것이다. ‘우리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가치를 다시 조명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편집자는 제목을 지을 때 장자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나는 『장자 – 내편』을 20대에 읽었다. 읽으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목수가 나오는 대목이었다. 목수는 거대한 상수리나무를 보고 “저 나무로 배를 만들면 곧 가라앉고, 관을 짜면 썩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긴다”며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이 베어가지 않았던 것이라 말한다. 기괴한 장면이 다음에 이어진다. 목수의 꿈에 상수리나무가 등장해서 (요즘 말투로 조금 각색하자면) “야, 어디다가 나를 비교해? 배, 귤, 유자 나무는 열매가 익으면 바로 따가니까 나무가 상하지. 전부 키가 작아. 나는 오랫동안 쓸모없기를 바랐어. 내가 쓸모 있었다면 이렇게 커다란 나무로 자랐겠어? ‘쓸모’로 만물을 비교하는 거, 그거 진짜 이상한 거야.”라면서 목수를 나무란다.

목수의 말과 상수리나무의 말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다. 목수의 말은 결과론적이다. ‘나무가 이렇게 자란 걸 보니, 어디에도 쓸모가 없어서 목수들이 찾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무의 설명은 다르다. ‘내가 쓸모없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장자』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쓸모없기를 바란다는 게 가능할까?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사람은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데, 자신이 유용해지는 순간에 삶의 희열을 느끼는데, 쓸모없음을 희망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일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이야기를 만들 때마다 좌절하곤 했다. 세상에 없는 인간을 등장시켜 가짜 이야기를 만드는 건 쓸모없어 보였다.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더라도 내 머릿속에서 각색된 소설은 완벽한 허구인데,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싶었다. 좀 더 쓸모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소설 쓰기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점점 그럴 듯하게 만들게 되었고, 때로는 사람들의 거짓말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거나 위안을 받기도 했다. 아마 나는 상수리나무였던 모양이다. 세상의 쓸모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바람에 무럭무럭 잘 자라날 수 있었고, 이제는 이렇게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까지 받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쓸모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쓸모에 대한 강박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 녀석 역시 쓸모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저 간단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아주 긴 답변을 내놓는다. 심지어 추가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답변을 해도 좋을지 내게 묻는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대답해 주고 싶지만, 전력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지만, 녀석 역시 자신만의 체계와 목표가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침묵으로 대화를 나누게 될 날이 올까? 나의 질문에 대해 조급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이틀 정도 침묵을 거듭하다가 결국 ‘그건 잘 모르겠네요’라는 시시한 답변을 내놓는 날이 올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인공지능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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