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 책임을 묻기보다는, 개인은 정부가 허용한 것만을 하고
문제 발생 시 그것을 허용한 정부가 책임진다는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정부책임주의를 탈피하고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할 때다.
정부는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서 15대 과제 중 하나로 규제개혁을 꼽고 있다. 규제개혁은 지난 11월 대통령이 강조한 6대 구조개혁(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규제개혁은 그간 모든 정부가 추진했으나 대체로 별 진전이 없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부효율성 부문의 기업 여건 항목은 법과 규제가 기업경영에 얼마나 우호적인지를 평가한다. 이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 46~53위를 오갔다. 같은 기간 종합 순위는 20~29위였으니 규제가 우리의 취약 과목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순위가 개선될 기미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규제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먼저 규제개혁의 방향을 알아보자. 규제 방식은 크게 ‘포지티브+사전 허가’ 방식과 ‘네거티브+사후 처벌’ 방식으로 나뉜다. 전자는 한국처럼 가능한 행위를 법에 일일이 나열하고, 그 후에도 사안별로 사전 허가를 받는 방식이다. 새로운 유형의 사업을 하려면 먼저 법령에 그 사업 유형을 올려야 하고, 그 후 사안별로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면 후자에선 미국처럼 안 되는 행위만 나열하고 기업에 자율을 준 뒤 법을 위반하면 사후 처벌한다. 우리도 문재인 정부부터 신기술 분야에선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 입법을 유연화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일부 성과가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적으론 미흡한 상황이며 규제 샌드박스가 규제개혁을 지연시키는 사례마저 있었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이 어려운 이유: 약한 처벌,
정부책임주의, 기득권 고수하려는 행정부·입법부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규제 위반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네거티브 방식은 사후 처벌을 통해 규제 위반을 예방하므로 처벌이 약하면 예방이 잘될 수 없다. 우리의 형사처벌, 과태료, 범칙금, 민사 손해배상, 징벌적 배상, 집단소송, 자격·면허 취소 등은 네거티브 방식을 택한 국가들에 비해 약한 편이다. 사후 처벌이 약한 이유는 뭘까?
첫째, 규제 수준이 과도하게 높아 위반이 일상화돼 있어 강하게 처벌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예컨대 위생·소방 규제는 안 걸리는 사업장이 없을 정도여서 평창 동계올림픽 때 가격을 올린 숙박업소에 대해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규제 수준이 과도한 이유는 정부가 책임 회피를 위해 기준을 높게 설정한 탓이다. 위반이 일상화된 규제는 현실화해야 한다. 둘째, 사법부 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소송에 의한 처벌이나 보상이 지연되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아예 소송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2024년 민사 1심 합의부의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437일로 2019년의 298일보다 47% 늘어났다. 대법원 판사보다 일선 판사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하다. 셋째, 규범 위반에 대한 온정적인 태도도 한 요인이다. 교통범칙금을 올리고자 하면 ‘서민의 주머니를 턴다’는 말이 나온다. 서로 봐주는 집단주의 문화 탓이다.
다음으로,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이 어려운 것은 국민이 문제 발생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 과도하게 묻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무원은 불안한 사안을 모두 사전에 불허해 문제 발생을 예방하려 할 것이다. 2022년 택시 합승을 허용하며 이성 간 합승은 개인 선택에 맡기지 않고 아예 금지했는데, 허용 시 성폭행이라도 발생하면 정부가 비난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네거티브 방식이 가능하려면 합승 택시 속 성폭행은 정부 탓이 아니라 가해자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왜 우리는 정부에 과도하게 책임을 묻는 것일까?
정부가 보호자라는 ‘정부책임주의’ 때문이다.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 책임을 묻기보다는, 개인은 정부가 허용한 것만을 하고 문제 발생 시 그것을 허용한 정부가 책임진다는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대학생 엠티(MT) 중 발생한 실족 사고에 대해 교육부가 대책을 내놓은 적도 있다. 미국은 ‘수영은 본인 책임하에(swim at your own risk)’라고 쓸 팻말에 우리는 ‘수영금지’라고 쓸 것이다. 조선시대까지는 이런 인식이 없었으나 일제강점기와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인식이 굳어졌다. 정부책임주의를 탈피하고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할 때다. 피해자에 대한 민사적 배상이 미흡한 탓도 있다. 피해자가 충분히 보상을 받지 못하므로 정부가 아예 문제 발생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민사 손해배상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다음 두 이유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첫째,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면 사전 허가권을 가진 행정부와 법령 제정권을 가진 입법부의 권한이 사후 처벌 권한을 가진 사법부로 이동한다. 포지티브 방식의 수혜자인 입법부와 행정부가 자신의 권한을 포기해 가며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시켜 줄 리 만무하다. 둘째,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은 기존 공급자의 기득권을 훼손한다. 우버(Uber) 도입이 대표 사례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기존 공급자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얻고 있던 퇴임 후 일자리 혹은 정치적 지지와 같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포지티브 시스템을 고수한다.
규제개혁 추진체계 강화하고
국조실 전문성·개혁성 갖춰 기득권 극복해야 이러한 기득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먼저 현행 규제개혁위원회가 신설 규제 심사에 바빠 기존 규제개혁에 시간을 쓰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아가 규제개혁에 대한 주무 부처의 반대를 돌파하려면 사무국인 국무조정실(이하 국조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자면 국조실의 전문성과 개혁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조실은 규제자인 주무 부처와 피규제자인 기업의 입장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취합·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국조실이 피규제자의 편에 서서 주무 부처를 압박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이 규제개혁이다. 인적 구성이 달라져야 한다. 규제개혁 관련 실국장, 과장 등 간부진 대부분을 민간 계약직으로 수혈하길 권한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규제개혁에 성공하려면 처벌 강화, 규제 현실화, 일선 판사 증원, 정부책임주의 탈피, 민사 배상 강화, 규제개혁 추진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