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부모가 빚보증을 잘못 서 한동안 가세가 기울었던 집이 꼭 하나쯤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덕선이네가 빚보증으로 살림이 기울어 정환이네 반지하에 살게 됐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어릴 때부터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돈 빌려주는 것 아니다”, “정 빌려주고 싶다면 돌려받지 않아도 될 만큼만 그냥 주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빚을 멀리하라 배우며 자란 세대가 이제는 빚 없이 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를 배우면서 빚은 너무 가까이해서도, 멀리해서도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금융자본주의에서 빚 없이 노동소득만으로 자산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젊은 시절 산 ‘똘똘한 한 채’로 노후를 준비한 고령층이나 상승기에 갈아타기로 강남까지 입성한 3040이나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불렸다고 하지만, 이는 주택담보대출을 지렛대 삼아 쌓아 올린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테크를 논할 때 빚 혹은 대출 대신 ‘레버리지’라는 표현이 흔하게 쓰인다.
변동성 커진 시장에 빚으로 뛰어드는 투자자들
‘빚이 무섭다고 몸을 사리면 벼락거지가 된다’는 교훈 때문일까, 최근 주식 투자에까지 빚을 끌어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코스피 지수가 역대 최대 하락률(12.06%)을 기록한 지난 3월 4일, 마이너스 통장을 ‘땡겨’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식을 더 사모았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개인 마이너스 통장 잔액은 3월 3일부터 사흘간 1조3천억 원이 불어났다. 상당수가 주식 저가 매수에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란 전쟁 후 첫 개장일인 3월 3일부터 증시는 크게 출렁였고, 주식 빚은 매일 기록을 경신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5일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3조6,945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초단기 빚투(빚내서 투자)’인 위탁매매 미수금 역시 2조1,487억 원으로, 전쟁 전보다 배가 늘었다. 위탁매매의 경우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2거래일 안에 대금을 갚아야 한다. 갚지 못하면 3거래일에 강제로 주식이 매각되는데, 이를 반대매매라 한다. 3월 3일 0.9%였던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3월 5일 6.5%로 급등했다.
상품 자체에 레버리지가 내장된 코스피·코스닥 레버리지 ETF도 일평균 거래량이 전월 대비 66% 늘어날 정도로 관심이 크다. 코스피·코스닥이 오를 땐 2배로 벌고, 떨어질 땐 2배로 잃는 종목이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바구니째 투자하는 지수형만 레버리지 ETF 출시가 가능했는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개별 종목의 레버리지 ETF도 조만간 등장할 예정이다. 하루 만에 10% 이상 오르내리는 종목을 2배로 쫓아간다는 이야기다.
수익보다 ‘감당 가능한 빚’부터
개인도 사회도 빚에 너무 둔감해진 것 같다. 대출 규제가 강화된 덕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98.7%에서 지난해 기준 89%로 줄었지만, 여전히 OECD 가입국 중 6번째로 높다.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크게 널뛰는 주식시장에 레버리지를 서슴없이 동원하는 데는 유머러스한 자조와 밈이 넘치는 주식 문화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람들은 ‘남들도 한다’고 생각하면 실제보다 덜 위험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레버리지 없이 ‘중산층의 삶’을 꿈꾸기 어려운 팍팍한 현실도 이해가 가지만,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메는 법이다. 돈을 불리는 것만 재테크가 아니다. 애써 모은 돈을 지킬 줄 아는 지혜도 재테크다. 시장 움직임이 예상과 달라도 감당할 수 있는 빚이 어디까지인지, 냉정하게 선부터 그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