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진국민인가? 선진국민이란 정의하기 어려우나 대체로 사회적 신뢰, 시민참여, 관용성, 공공성, 책임성이 높은 국민이라고 생각된다. 전 세계 80여 개국의 가치관을 조사하는 세계가치관조사(WVS)는 전 세계를 [전통적 가치 vs. 합리적 가치], [생존 가치 vs. 자기표현 가치]의 두 축으로 나눈다. 전통적 가치로는 종교, 가족, 권위가 중시되는데, 한국은 그 반대편인 합리적 가치가 앞서는 사회다. 한편 생존 가치는 물질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반면, 자기표현 가치는 생존에 대한 우려를 벗고 삶의 질과 타인에 대한 관용·신뢰를 보인다.
소득 높은데도 ‘생존 가치’ 중시하는 한국,
봉사, 사회적 유대감 등 시민의식은 OECD 평균 미달
선진국일수록 대체로 자기표현 가치를 중시하는데, 한국은 소득이 높은데도 생존가치를 훨씬 더 중시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와 관용이 낮다는 뜻이다. 2017~2020년 WVS 자료를 이용해 한국, 미국, 칠레 등 16개국의 사회적 신뢰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 우리의 신뢰수준은 지인에 대해서는 평균 이상이지만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평균 이하였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차이가 16개국 중 그리스,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tribe)은 중시하나 타 부족은 배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높은 인구밀도에서 각자도생으로 빠른 성장을 추구한 것이 배경이 아닐까 생각되며, 앞으로 소득이 더 상승하고 사회보장이 확대되면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으로 시민의식을 비교해 보자. OECD는 시민의식을 “사회 구성원이 공공 문제에 참여하고 민주적 가치와 규칙을 옹호하며,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책임 있게 관여하려는 능력과 의지”라 정의한다. WVS의 자기표현 가치에 개인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추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는 투표참여 중요도, 세금납부 중요도, 법·규칙 준수 중요도 등 8개 항목으로 우리의 시민의식을 측정하는데, 종합지표가 2022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고 있다. 각종 OECD 보고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등에 따르면 우리는 시민의식을 구성하는 자발적 시민단체 참여율, 봉사활동, 사회적 유대감, 기부, 이질성에 대한 포용성 부문에서 모두 OECD 평균에 미달한다.
이러한 지표에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리는 대학진학률이 74%로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을 보이며 높은 정보화 역량을 가지고 있다. 금 모으기 운동, 코로나19 방역 협조, 줄 서는 문화 등에서는 높은 공동체 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휴대폰을 카페에 방치해도 무방하고, 밤길을 걸어도 위험하지 않으며, 지하철 분실물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등 준법정신도 높다.
카페에서 휴대폰을 방치하는 한국에서 왜 사회적 신뢰가 낮은 것일까? 우리가 휴대폰을 방치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믿어서가 아니라 CCTV 등 높은 검거율을 믿기 때문이다. 처벌 내지 체면손상을 우려해 규칙을 지키지만 다른 사람은 경쟁상대로서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긴다.
분리수거는 잘하지만 길거리 담배꽁초는 넘치는 한국?
사적 관계에선 정·신뢰 주지만 공적·익명적 관계는 외면
전 세계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가장 성실히 하는 한국의 길거리 화단에 왜 담배꽁초가 넘쳐나는가? 한국은 국가–개인 사이의 규범에 대해서는 순응하는 편이나 법적 처벌과 무관한 자율적인 시민규범에 대한 존중은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중도덕을 시민 간 약속이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강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공익을 위해 줄 잘 서는 한국인이 왜 30분 동안 자동차 공회전을 하고 있을까? 새치기같이 바로 위반이 확인되는 공공질서는 체면 유지를 위해 잘 지키지만, 공회전은 차안에서 익명성을 유지할 수 있고 피해 계층이 특정되지도 않으며 단속도 없기 때문이다.
정(情) 많고 부의금·축의금을 잘 내는 한국인이 왜 기부에는 인색한가? 이는 한국인이 사적 상호주의는 중시하나 익명의 기부 수혜자와는 직접적·지속적 상호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기부를 담당하는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은 탓도 크다.
낯선 외국인에게 친절한 한국인인데 왜 문화적 수용성은 떨어지는가? 한국인은 외국인을 손님으로 보고 잘해주는 것일 뿐 그들의 이질성을 포용한 것이 아니다. 외국인이 일상의 영역에 들어오면 한국 문화에 동화되기를 요구한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의 국민참여, 이태원 참사에 대한 슬픔 연대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적 유대감은 낮게 나오는가? 우리는 일시적인 사건에 대한 정서적 응집력은 높으나 다른 가치관을 수용하거나 나의 이해관계를 나누는 이성적 응집력은 약하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하던 한국인이 왜 세금을 내는 데는 인색할까? 한국과 같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세금에 대한 저항이 커진다. 그러나 한국인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단결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가 위기 시에는 나의 ‘부족’이 국가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인은 사적 관계에서는 상호주의를 기대하며 정과 신뢰를 주지만 공적·익명적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는 것이다. 공적 관계에서는 정부가 상호주의를 대신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다 보니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어놓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최근 OECD의 ‘공공 부문 신뢰도 조사’에서 6위로 약진했다. 미래는 밝다.
우리가 시민의식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서구형 문화를 닮기 위해서가 아니다. 낮은 시민의식이 불신을 키워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시민의식을 높이기 위해 시민교육 강화, 법치주의 확립, 정부의 투명성 제고, 지방분권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싶다. 지방분권은 의사결정 단위를 축소하므로 구성원의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강화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의 약점을 아는 것이 최우선이다. 우리는 선진국을 달성했다. 이젠 선진국민이 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