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여름이면 동네에 붉은 깃발이 걸렸다. 흰 글씨로 ‘냉면’이라 써놓은 천 조각이었다. 냉면집 아무 데나 들어가면 새콤한 국물에 토마토 한 쪽, 오이채, 얼음 덩어리가 얹혀 나왔다. 면은 미리 뽑아둔 걸 삶는 집이 많았는데, 직접 뽑는 집들은 ‘기계냉면’이라는 간판을 굳이 붙였다. 이상했다. 칼국수는 손칼국수를 자랑하는데 냉면은 왜 기계냉면을 자랑할까.
나중에 알았다. 메밀은 반죽을 단단히 해서 압출식 기계로 눌러야 면발이 나온다. 손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기계로 제대로 눌러 뽑는 집이라는 뜻이었다. 요즘 인기 있는 냉면 노포들이 바로 기계냉면집인 셈이다.
이른바 ‘평냉’, 즉 평양냉면만 인기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함흥식이 더 흔했다. 새콤달콤한 비빔냉면 말이다. 서울 중구 오장동, 종로 예지동 시계골목에 가면 함흥식 냉면집이 여럿 있었다. 사십여 년 전이니까 그때만 해도 생존한 실향민이 아주 많았다. 함경도 사투리를 들으며 냉면을 먹었다. 어머니는 냉면이 나오기 전 늘 한 문장을 준비했다. “자르지 마세요.” 홀 직원들이 냉면을 가져오면 가위부터 대고 자를 건지 물어보는 게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냉면은 원래 이렇게 정색하고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백석의 시 <국수>에서 냉면은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으로 그려진다. 희끄무레한 색이다. 지금 흔히 보는 짙은 갈색 면과는 결이 다르다. 냉면은 원래 집집마다 식당마다 배합이 달랐다. 메밀을 100% 쓰는 집도 있고 메밀에 밀가루나 전분을 약간 섞는 집도 있었다. 어느 하나를 정통이라 못 박기 어려운 음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냉면을 둘러싼 강령 같은 것이 생겼다. 식초와 겨자는 치지 않는 게 세련된 태도이고, 메밀 함량이 높아야 향기롭고, 가위를 대지 않는 게 정통이라는 식이다. 취향이 규범이 돼버린 셈이다.
이런 흐름과 별개로 최근 몇 년간 냉면을 둘러싼 진짜 뜨거운 화두는 맛도 정통성도 아니고 가격이다. 서울 유명 냉면집의 냉면 한 그릇 값은 이미 1만5천 원을 넘어 2만 원에 근접하는 곳도 나왔다. 여기에 사리나 만두를 더하면 2만 원을 훌쩍 넘긴다. 서울 냉면 평균가는 몇 년 새 20% 가까이 뛰었다. 짜장면이나 칼국수보다 유독 가파른 상승세다.
이 가격을 두고 두 갈래 설명이 맞선다. 한쪽은 원가론이다. 메밀은 밀가루나 전분보다 훨씬 비싸다. 육수 하나 내는 데도 고기 선별, 핏물 제거, 장시간 끓이기, 기름 걷어내기 같은 손 많이 가는 공정이 들어간다. 면을 직접 뽑는 집이라면 제분, 반죽, 숙성까지 사람 손을 거친다. 이런 공을 생각하면 지금 가격도 과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다른 쪽은 반발한다. 냉면이 아닌 음식이라고 해서 공이 덜 들어가는 게 어디 있느냐, 메밀값이 비싸다는데 한 그릇에 2만 원 가까이 할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 또 비싸지 않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드는 함흥식은 왜 그리 비싸냐고 묻는다.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 그리고 줄을 서서라도 먹겠다는 수요가 가격을 밀어 올린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넷과 SNS가 낳은 거품이라고도 한다. 한국소비자원이 원가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도 없고 애초에 식당마다 재료비가 각기 다르니 원가분석을 하기도 어렵다. 결국 어느 쪽 주장도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채 매년 여름철이 되면 같은 논쟁만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몇 해 전에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냉면 적정가를 두고 소동이 인 적도 있다. 어떤 이는 7~8천 원이 적절하다고 했고, 냉면집 쪽에서는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반발했다. 이런 주장도 있다. 유명 냉면집들이 대개 도심 요지에 자리 잡고 있으니, 재룟값보다 자릿값이 가격에 더 크게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원조 논쟁, 노포 프리미엄, 대기줄 마케팅 같은 요소까지 겹치면서 한 그릇의 가격이 순수하게 원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느 쪽 말을 들어도 일리가 있고, 어느 쪽 말도 완결된 답은 아니다.
음식 하나를 두고 이토록 뜨거웠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러니 “맘 편하게 인스턴트 냉면 한 봉지 끓여 먹고 말겠다”는 사람도 많다. 냉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음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