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 독일을 단체로 여행한 적이 있다. 내 임무는 맛있는 음식을 적절히 골라 제안하는 것이었다. 다들 유명 셰프가 골라주는 독일 음식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온갖 소시지를 굽고 삶아 내는 맥줏집, 삼겹살을 구워 파는 전통 식당(삼겹살은 한국인이 제일 많이 구워 먹지만 독일도 더러 파는 집이 있다)은 일행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내게는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빵이었다. 독일은 빵이 아주 좋다. 특히 달지 않은 식사용 빵이 일품이다. 프랑스의 바게트, 이탈리아의 치아바타 못지않은 훌륭한 빵을 갖고 있다. 아니, 두 나라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걸 일행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유럽의 빵 가게는 일찍 연다. 맛있는 빵은 빨리 떨어진다. 새벽같이 눈 비비고 나가는 게 유리하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지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다.
독일 빵집, 즉 베커라이(bäckerei)의 하루는 전날 반죽부터 시작한다. 보통 아침 6시가 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온갖 빵이 있다. 통밀가루냐 정제분이냐에 따라 빵 색깔이 다르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깨나 양귀비씨를 붙인 빵도 보인다. 대체로 다른 나라 빵집에 가면 주로 작고 흰빵을 고른다. 실패가 적어서다. 통밀빵이나 너무 큰 빵은 입에 거칠고 다 먹을 수 없다. 빵을 살 땐 언어가 안 돼도 전혀 문제없다. 유럽 빵집은 한국처럼 빵을 골라 계산하는 게 아니라 진열대의 빵을 가리키고 대화가 오간다. 그래서 약간 의사소통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손가락’ 둬서 어디에 써먹겠는가.
당시 작고 맛있는 흰 빵인 브뢰첸 한 개가 0.5~0.8유로, 통밀빵인 볼콘브로트는 반 덩이에 2~3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산 것을 바로 먹을 수도 있고 자기 식대로 주문하기도 한다. 브뢰첸을 반으로 갈라 버터를 바르고 소시지나 치즈를 끼워 그 자리에서 먹는 식이다. 거기에 독일식 커피를 한잔 곁들인다. 재밌는 건 최근 독일 동네 빵집들이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잔을 쓴다는 점이다. 원래 독일 커피 문화는 필터로 내린 연한 커피를 주로 마셨는데, 1980~1990년대 이후 이탈리아식 카푸치노와 카페라테가 빵집 메뉴판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빵은 독일식, 커피는 이탈리아식이 대세다.
하기야 여행자인 내가 독일 빵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독일은 3천 종이 넘는 빵을 비롯해 1,200종의 롤빵과 과자 문화를 자랑한다. 이런 빵 문화가 2014년 독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오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아침에 대부분 달콤한 빵을 먹는다. 크루아상 계열이다. 독일은 빵에 버터를 바르기도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처럼 아침에 달콤한 것을 찾기도 한다. 버터가 듬뿍 들어간 크루아상이나 잼을 넣은 페이스트리를 먹기도 한다. 물론 달지 않은 빵에 달콤한 독일식 잼, 꿀을 함께 내는 전통 방식도 눈에 띈다. 여러 나라의 호텔에서 아침으로 이런 달콤한 재료들을 내놓는데, 듣기로는 독일인 관광객이 많아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연히 유튜브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됐다. 그 덕에 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험을 치르느라 억지로 들었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도 제대로 들어볼 수 있었다. 대표작인 교향곡으로 시작해 유명한 <비창>, <월광>은 물론이고 말년의 세 가지 소나타 또한 클래식의 아름다움과 힘을 전해줬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중 마지막 32번 작품에 깊게 빠지기도 했다.
베토벤의 식습관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기록이 여럿 전해진다. 가장 유명한 건 커피 이야기다. 베토벤은 매일 아침 자기 손으로 커피를 내렸는데, 한 잔에 정확히 원두 60알을 세어 넣었다고 한다. 강박에 가까운 이 습관은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로 자주 인용된다. 빵에 관한 기록은 커피만큼 상세하진 않지만, 마카로니에 치즈를 얹은 요리와 삶은 달걀, 소박한 빵을 즐겼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화려한 만찬보다 단순한 한 끼를 좋아했고,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작곡 중이던 악상을 잊어버리는 일도 잦았다고 전해진다. 그를 따라 커피 원두 60알을 골라보니 대략 소박한 커피 한 잔을 내릴 수 있는 무게였다.
언젠가 베토벤의 생가와 활약했던 도시에 가보고 싶다.
아침에 갓 문 연 빵집을 찾아내서 버터를 바르고, 커피도 한잔 같이 마시고 말이다. 32번 소나타를 연주하는 공연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