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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림의 겉과 속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
정석범(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 2012년 09월호
기모노 차림의 한 젊은 여인이 상념에 잠긴 채 서있다. 청색의 화문석 위에 발을 디딘 그의 손에는 꽃이 그려진 부채가 들려있다. 또 그의 뒤에는 화조도 병풍이 나른하게 팔을 벌린 채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다. 병풍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사슴처럼 목을 길게 뺀 청화백자가 돗자리와 한 세트인 양 묵묵히 서 있다.

그림 속 풍경으로 보아 무대는 아마도 일본인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우아하게 치장한 여인은 일본여인이라기보다 서양 여인에 가깝다. 또 그림의 제목은 왜 하필 ‘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일까. 작가는 아마도 일본을 염두에 둔 듯한데 굳이 ‘도자기 나라’라고 얼버무린 이유는 뭘까. 그러나 주제를 너무 심각하게 따져 들어가 봐야 헛수고다. 그림을 그린 제임스 애벗 맥닛 휘슬러(1834∼1903년)는 그림에서 논리성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19세기 후반 일본복장을 한 서양 여인을 그린 사람은 휘슬러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흔한 유형은 모델에게 기모노를 입히고 손에 부채를 들게 한 다음 병풍 앞에 세우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후기 인상주의자 툴루즈 로트렉, 네덜란드 화가 게오르게 헨드릭 브레이트너 그리고 미국 작가인 윌리엄 메릿 체이스 등이 이런 유형의 작품을 앞다퉈 그렸다. 특히 모네가 부인 카미유를 모델로 그린 ‘일본여인’(La Japonaise, 1876년)은 19세기 후반 서구의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휘슬러만큼 일본취미를 선도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녹여 넣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휘슬러는 미국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그림공부를 하다 1855년 파리로 유학간 후 글레르에게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을 배웠다. 그러나 마네, 모네 등 인상주의자들과 교유하면서 점차 개성적인 화풍을 구축해나갔다. 1859년 런던에 건너간 휘슬러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입장을 취하며 회화를 주제의식에서 독립시키고 조형요소 간의 조화를 중시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예술은 예술 자체의 목적이 있을 뿐 작가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이와 같은 생각은 건축가인 에드워드 윌리엄 고드윈을 통해 일본미술을 접하게 되면서 심화되는데 고드윈은 호쿠사이의 작품을 비롯한 에도시대 컬러판화를 열렬히 찬미했다. 휘슬러의 작품에 드러나는 평면성과 색채 사이의 조화를 중시하는 입장은 일본판화의 영향이다. 이런 휘슬러의 성향을 고려할 때 ‘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휘슬러에게 중요한 것은 주제가 아니라 형태와 형태, 색채와 색채 사이의 하모니였던 것이다. 그러니 주제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 작품은 휘슬러가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던 크리스틴 스파르탈리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1863년 말부터 1864년 초에 걸쳐 그려진이 그림은 스파르탈리가 자기 아버지에게 구매할 것을 요청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거절했다. 이유는 작가의 사인이 지나치게 튄다는 것이었다. 사인의 위치도 아래쪽이 아니라 왼쪽 상단에 관람자의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무는 위치에 잡아 불쾌감을 자아냈던 것이다. 이 작품은 1885년 파리의 살롱전에 전시됐고 몇 년 뒤 리버풀의 선박왕 프레데릭 레이랜드에게 팔렸다.

이 작품에서 휘슬러는 사각형과 원형의 조화를 꾀했다. 돗자리와 병풍이 딱딱한 직선적 형태라면 공주와 부채, 청화백자 화병은 부드러운 원형의 미감을 보여준다. 특히 서 있는 공주의 신체는 에스(S)라인의 유연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휘슬러가 좀 더 무게를 둔 것은 색채의 조화였다. 그가 사용한 색채는 불과 서너 가지에 불과하다. 가운데 공주의 머리와 착용하고 있는 기모노의 흑색이 화면의 중심을 잡아주고 상단의 짙은 회색 톤과 하단의 돗자리의 청색이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이 무거운 색감을 완화시켜주는 것은 공주가 걸친 가운의 베이지색과 뒤편의 병풍의 흰색 공간이다.

중요한 것은 휘슬러는 이러한 색채 사이의 조화를 음악적 하모니와 동일한 차원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그가 자주 작품에 ‘하모니’(harmonies)니 ‘녹턴’(nocturnes)이니 하는 제목을 붙인 데는 그런 관점이 반영돼있다. ‘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백색의 심포니, No. 2: 작은 하얀 소녀’(1864년)는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와는 다른 휘슬러만의 독자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그림을 사들인 레이랜드는 이 작품을 청화백자가 즐비한 런던 자택 응접실에 걸었다. 그는 내친김에 휘슬러에게 이 방의 리노베이션을 맡겼는데 휘슬러가 자기 맘대로 공작새 금장식(그래서 ‘공작새의 방’이라 불림)을 덧붙이는 바람에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1892년 주인이 죽은 뒤 크리스티 경매에 붙여진 이 그림은 ‘공작새의 방’과 함께 미국의 기관차 사업가인 찰스 랑 프리어에게 넘어갔다. 프리어는 이 작품들을 세상 뜨기 전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일괄 기증했다. 청년시절 미국을 떠난 후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이국에서 생을 마감한 휘슬러는 그렇게 몸 대신 작품으로 고국의 품에 안겼다. 그림 속의 공주는 곧 서양 문화의 본고장 유럽에서 동양 문화를 동경하던 미국인 휘슬러의 착잡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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