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곽승영 교수는 2011년 4월 25일 미국 메릴랜드 포토맥(Potomac)자택에서 74세로 별세했다. 필자를 포함해 그를 아는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그의 갑작스런 타계를 애도했다. 그는 1937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3년부터 워싱턴 소재 하워드대에서 화폐경제와 국제금융을 가르쳤다.
버클리대를 졸업한 후 곽 교수가 미국 재무성에서 일한 것이 그 후 미국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매우 귀중한 경험이 됐다고 했다. 필자는 지난 20년 이상 미국 학회에서, 국내 학회에서 그리고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SEA(남부경제학회) 연차총회에서 여러 차례 논문 발표자로 곽 교수를 만나 논문 내용뿐 아니라 한국경제에 관해 많은 것을 토론한 바 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개인적으로도 매우 성공해 자신의 생활에 매우 행복해 했다. 그는 활동 후반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그와 가족의 성공적 삶에 대해 ‘하나님께 매우 감사’한다는 표현을 자주했다. 필자가 그분을 미국서 처음 만나 “어디 사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나 부뚜막(포토맥)에서 살지. 허허!”라고 유머 있게 답하던 분이셨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미국 부자들이 모여 사는 포토맥에 그는 큰 저택을 가진 분이었다. 슬하에 1남 2녀 자녀를 뒀는데 아들과 장녀는 의사고 차녀는 변호사다. 그리고 부인은 버클리대 수학 박사로 오랫동안 곽 교수 자신과 같이 하워드대에 동료 교수로 재임해왔다. 곽 교수는 생전에도 모교에 장학기금을 만들어 경제학부 후배학생들을 도왔는데 그가 별세한 후 그의 부인이 서울대를 직접 방문해 ‘곽승영 장학기금’ 1억원을 기부했다. 이처럼 곽 교수와 그의 가족 전체가 그의 모교와 모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곽 교수는 생전에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한 정책방안을 많이 발표했다. 그가 마지막 남긴 논문은 ‘글로벌 시대의 도전과 한국의 의식행동 구조변화의 필요’다. 이 논문은 그가 별세하기 전 한국제도ㆍ경제학회가 발간하는 「제도와 경제」 학술지에 제출한 것으로 동 학술지 제5권 제2호(2011년 8월 출간)에 게재됐다. 이 논문에서 곽 교수는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 한국인에게 특히 정치가와 관료 그리고 사회지도자들에게 의식과 행동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또한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모습들과 관련해 정책책임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강모 부총리가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는 강모 기획재정부 장관이 각각 외환보유고가 많아 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한국경제의 기반이 강하다고 언급했지만, 결국 한국은 양대 위기를 맞았고 외국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진정시켰다”고 그는 당시 책임 장관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경제위기는 경제가 가지고 있는 결함 때문에 나오는 것인데 구조적 결함은 고치지 않고 위기를 단시간 내 막대한 금융지원, 신용카드 발부, 가계부채 증대를 통해 모면했으며, 그 결과 신용 버블, 부동산 버블이 기존에 있던 구조적 문제와 결부돼 오히려 또 다른 경제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곽 교수는 한국사회는 능력 중심이 아니고 학벌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부형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 ‘열광’한다면서 이런 풍토를 없애기 위해선 대학졸업 타이틀 자체가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관행이 불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4개월여 남겨두고 한국의 경제위기설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지금, 우리 경제의 지도자 모두는 곽 교수의 유언을 한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