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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2001년 가을, 디자인으로 낯선 이의 마음을 움직이다
성정기(미국 루나디자인 디자이너) 2012년 09월호
2004년 미국에 왔으니 벌써 8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루나디자인(LUNAR DESIGN)에서 시니어 콘셉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겨우 미국에서의 디자이너 생활이 익숙해졌지만, 힘들고 고단할 때면 나는 항상 2001년의 가을을 회상한다. 그 순간은 내가 디자인한 ‘무엇’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 디자이너로서의 인생 최초의, 최고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 세계 산업디자이너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산업디자인총회(ICSID)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다. 당시 디자인과 관련된 사람들은 1988년 올림픽을 다시 맞이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흥분된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당시 늦깎이 대학생 신분으로 운 좋게 같은 해에 치러진 LG전자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수상자 자격으로 세계산업디자인총회 부대행사로 개최된 시상식에서 개인 수상작을 발표하는 영광을 누렸다. 세계적 디자이너들과 수많은 관계자들 앞에서의 발표, 하지만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는 어렵게 준비해간 영어 원고를 그저 읽기 바빴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긴장감 속에 발표를 서둘러 마무리하려 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 같았던 내 발표는 마지막 순간 예상치 못한 어느 외국 할아버지의 영어질문으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는 듯했다. 다행히 통역을 해주실 분을 찾았고, 아주 간단한 영어로 겨우 답을 하고 나서야 발표는 끝이 났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외국 할아버지는 그러고도 한참 동안 찬찬히 내 작업을 관찰했다. 그리고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명함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힘겹고도 영광스러운 자리는 마무리됐다.

그날 이후 그 한 장의 명함은 마치 수호신처럼 내 지갑 속에 자리 잡고 내가 힘들 때마다 들여다보는 소중한 존재가 됐다. 사실 유학은 물론 어학연수조차 하기 어려웠던 나로서는 외국에서의 생활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기에 무슨 연락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나에게, 나의 디자인에 관심을 가져준 첫 번째 외국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좋은 기운을 주는 것만 같았기에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디자인 잡지 특집기사에서 왠지 낯설지 않은 이름을 보게 됐다. 그 자리에서 지갑 속 명함을 꺼내 다시 확인하니 내 지갑 속에서 수호신으로 자리 잡고 있던 이름과 같은 사람이었다. 비로소 그 인자했던 할아버지가 세계 최대 디자인회사 중 하나인 아이디오(IDEO)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부터 나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포트폴리오를 그때 받은 명함과 “당신께서 하신 사소한 행동이 어느 한 젊은이에겐 희망이 돼 이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했다.”라는 짧은 글의 편지와 함께 그분에게 보냈다.

다행히도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IDEO로부터 “지금까지 받아본 포트폴리오 중 최고였다.”라는 과분한 찬사와 함께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004년 IDEO 보스턴에 인턴생활도 없이 바로 정직원으로 입사하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회사에서 영어 개인교습과 아파트도 제공받았는데 입사 후 알고 보니 나에 대한 대우는 회사 설립 이래 처음 있는 파격적 혜택이라고 했다.

나를 바라보던 낯선 이의 인자하고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늘 내 마음속에서 매순간 나와 함께하며 나의 길을 가게 하는 그때 그 순간을 어찌 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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