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김광일과 함께 읽는 책「훔쳐가는 노래」
김광일 (조선일보 논설위원 ) 2012년 10월호
마흔두 살 진은영 시인이 낸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창비)를 읽는다. 동아일보에 그녀가 쓴 시 ‘멸치의 아이러니’가 9월 추천작으로 실렸다. 시를 읽으면서 사지가 덜덜 떨린다. 이 시는 ‘멸치가 싫다 / 그것은 작고 비리고 시시하게 반짝인다’로 시작한다. 진 시인은 중간쯤에 이렇게 썼다. ‘대학에 입학하자 나는 거룩하고 순수한 음식에 대해 / 밥상머리에서 몇 달간 떠들기 시작했다 /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 뛰어넘을 수 없는 반찬 칸과 같은 생물들에 대하여 /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 결국 한 말씀 하셨습니다 / “멸치도 안 먹는 년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이 시는 시집 「훔쳐가는 노래」에 들어 있다.

우리가 하는 고뇌는 다분히 이분법적이다. 복권이 당첨될 확률은 경제적으로는 800만분의 1이지만 문학적으로는 항상 2분의 1이다. 당첨되거나 당첨 안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탄생도, 삶도, 사랑도, 죽음도 대개 둘 중 하나다. 칭기스칸도 링컨도 박정희도 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진은영 시인은 ‘멸치’냐 ‘노동운동’이냐를 선택지에 올려놓는다. 사회변혁 운동을 하는 방편으로 시를 쓸 것인가, 미학적인 완성을 구현하려는 욕망으로 시를 쓸 것인가, 둘 중 하나다. 비즈니스도 같다. 계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투자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인문 교양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책방으로 달려가 시집을 사는 비즈니스맨도 있다.

이번 시집이 나오기 전에 진 시인은 ‘70년대 산(産)’이란 시로 독자를 매료시켰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 우리에게 /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 그것이 비극이다 /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 / 밥 먹고 / 술 마시고 / 내내 기다리다 / 결국 / 서로 쏘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도 덜덜 떨었다. 흔히 문인들은 목숨 걸고 쓴다고 한다. 도둑들도 목숨 걸고 훔친다. 사업가는 목숨 걸고 장사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다. 세상은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고, 우리는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세상은 저 혼자 객관적으로, 외롭게 내던져진 상태로 있다. 세상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일도 없을 것이다. 함부로 목숨을 걸었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세상을 만만하게 대한다. 골목길 코흘리개 계집아이가 분홍 훌라후프를 돌리듯 세상을 까분다. 세상이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서로에게 총을 쏘고 그 총에 맞아 우리는 쓰러진다.

진 시인이 쓴 시 ‘멜랑콜리아’도 참 좋았다. ‘그는 나를 달콤하게 그려놓았다 /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 나는 녹기 시작하지만 아직 / 누구의 부드러운 혀끝에도 닿지 못했다 / …’ 시집을 사고, 시를 읽는 이유는 교양인이 되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다. 공감하고, 공명하려고, 같이 덜덜 떨어보려고 시를 읽는 것도 아니다.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노동해방 운동을 하려는 데 있는 것인지, 아니면 멸치 한 마리를 꼭꼭 씹어먹으려 하는 데 있는 것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게 만든다. 우리가 세상을 훌라후프처럼 만만하게 보든, 아니면 목숨을 걸고 달려들든, 세상은 무신경하게 저만치 서 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해준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