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띠뽀에서 두타 와디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롱용사원에 이른다. 모터보트를 운전하는 삐삐는 롱용이 ‘덤불에 둘러싸인 호수’라는 뜻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날의 여행에는 우리 말고도 아홉 살 이사벨과 아빠 밥,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된 현지인 가이드 예(Ye)가 있었다. 이사벨 가족은 세계일주 중이었는데 그날 막내가 몸이 좋지 않아 엄마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쉬는 중이었다. 이사벨 또한 그다지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왜 꼭 거기 가야 돼?” 인형처럼 예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서, 보트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몇 차례나 아빠에게 묻고 있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타인에게 물어 답을 구할 수 있는 정보형 질문과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답을 구할 수 있는 성찰형 질문. 아이들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일차적으로 부모에게서 찾는다. 정보형 질문에 대한 답은 부모를 통해 쉽게 충족되지만 성찰형 질문의 답은 그렇지 못하기에, 그 답이 놓인 자리와 부모가 놓인 자리 사이의 거리를 아프게 가늠하면서 아이들은 비로소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물론 어떤 질문들은 나이와 무관하게 답이 찾아지지 않기도 한다. 왜 35도가 너끈히 넘는 한낮에 정글 속에 숨어 있는 절을 찾아가야만 하는가. 어쩌면 그 순간, 밥 또한 답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 회사의 사장이면서 안락함을 버린 채 여행을 떠난 그였다. 하지만 우리는 답이 있어도, 없어도, 가던 길을 간다. 그것이 ‘시작됨’의 숙명이다. 밥과 이사벨의 여행이 그러하고,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
강을 따라 달리던 보트가 모래밭에서 멈췄다. 우리는 정글로 들어섰다. 갈 길이 멀어 보이자 이사벨이 울기 시작했다. 그들의 개인 가이드 예가 이사벨을 업었다. 예는, 실은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최고 학부를 나온 엘리트였다. 영어와 일본어 등 3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뿐만 아니라 고립된 국가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세계정세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해온 지적이고 영리한 청년이었다. 가난한 나라의 엘리트 가이드는 부자 나라에서 온 고객의 우는 딸을, 물론 등에 업어야 한다. 식민지 시절에도 그러했고, 그 이전에도 백인들은 그렇게 아시아를 여행했다. 물질문명에 익숙한 자들이 버리는 안락함에는 늘 한계가 있었다. 밥도 그 상황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우리 쪽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어올렸다.
롱용사원에 도착했다. 삐삐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이 숲에서 나무를 베던 사람이 조그만 돌부처를 발견했어요. 오래된 그 돌부처에는 신묘한 아름다움이 있었죠. 그는 돌부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한데 다음 날, 돌부처가 사라진 거예요. 수소문 끝에 돌부처가 다시 숲 속 제자리에 돌아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는 재차 돌부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이번에는 밤새 눈을 부릅뜨고 지키기로 결심하면서요. 하지만 그날 밤도, 그 다음날 밤도,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한 순간 잠이 쏟아졌고 돌부처는 숲 속으로 돌아와 있었어요. 소문을 들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돌부처를 지키기로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정한 시각이 되자 누구도 잠을 물리칠 수 없었고 돌부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자리로, 바로 이곳으로 돌아와 있는 거였습니다.”
주지스님이 밭에서 갓 따온 파인애플을 내왔다. 그토록 즙이 많고 달콤한 파인애플은 처음이었다. 이사벨은 파인애플 세 쪽을 연달아 먹은 뒤 드러누웠고, 중빈은 아이를 잘 다루는 밥의 무르팍에 앉아 그가 간지럼을 태울 때마다 까르륵 까르륵 웃었다.
마침 수업을 마친 견습승려들이 마루 한쪽 구석에 누워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들 곁으로 가니, 한 견습승려의 뺨에 보는 이가 다 아파질 만큼 커다란 종기가 솟아 있었다. 이미 외과적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커져버린 상태였다. 짐작컨대, 약 한 번 바른 적 없이 종기는 불결한 환경을 먹고 자꾸만 커졌으리라. 저쯤이면 열도 나고 몹시 불편할 텐데. 열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승려 이전에 한 아이인 그의 고통스런 뺨을 살펴보고 싶었으나 남방불교에서 남녀 간의 신체접촉은 불가하다.
미얀마에서 마주치는 견습승려들은 한결같이 연민을 자아냈다. 시도 때도 없이 탁발에 동원되어 구걸하듯 거리에 부려졌다. 가난한 미얀마인들에게 어린 견습승려들은 귀찮게 들러붙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쫓아낼 수도 없는 어떤 것이었다. 견습승려들은 공양이 바쳐질 때까지 상점 앞을 떠나지 않았다. 주인은 시간을 끌며 그들이 떠날 때만을 기다렸다.
절에서 보트로 돌아오는 길, 예와 나란히 걸었다.
“한국으로 가는 취업비자를 얻는 데 드는 돈은 7천달러에요. 그게 여기서 얼마나 큰돈인지는 익히 알고 있으시리라 생각해요. 가짜 브로커에게 속아서 7천달러를 전부 날린 사람도 보았어요. 온 가족이 전 재산을 털어서 만든 돈이었는데 말이죠. 일본에 가서 흠씬 두들겨 맞고 불구가 되어 돌아온 사람도 알고 있어요. 일본 고용주들은 많이 때린다고 해요. 그래도 미얀마인들은 어떻게든 돈이 모이면 일본이나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죠. 몇 년 눈 딱 감고 고생하면 이곳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으니까요. 한국 고용주들은 어떤가요? 때리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이런 질문은 에어컨이 있는 곳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들어도 일이 초간 숨이 막힌다. 하물며 열대의 정오 햇살 아래서야.
“한국도 다른 곳과 같아요.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지요.”
“아, 그렇군요.”
예는 낙담한 듯 고개를 수그렸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도 있지요.”
“아, 그런가요?”
예가 다시 희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우물가에서 잠시 물놀이를 했다. 기분이 좋아진 이사벨이 재잘거렸다.
“우리 집 정원에 내 키만 한 인형집이 있었어요. 진짜 집하고 똑같았어요. 화장실에 욕조도 있었어. 지금은 알아요. 우린 너무 많이 가졌었어요. 그런 걸 사고…. 미쳤어.”
밥이 이사벨의 마지막 말을 되풀이했다.
“맞아.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어….”
돌아오는 길, 이사벨은 씩씩하게 잘 걸었다. 먼 훗날 이사벨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쩌면 달콤한 파인애플 조각으로 남을 수도 있고, 어쩌면 훨씬 의미 있는 조각으로 남아 성인이 된 그녀의 내부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오늘 그녀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못하지만, 버리고 섞이는 용기가 멈춰져서는 안 된다. 잠시 일부를 버린다 해도, 버리고 멈춰 주변을 돌아보는 행위 자체에는 언제나 거룩함이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업혀서 내디딜지라도, 한번쯤 ‘우린 너무 많은 걸 가졌어’라고 시인하는 것은 소중한 일인 것이다. “내가 왜 꼭 거기 가야 돼?” 그 답은 그곳에 온전히 이르러본 자만이 알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