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로만 카프리초’라는 제목의 그림 한 점이 있다. 화면은 온통 고대 건축물로 가득 차있어 마치 폐허의 옛 도시를 연상케 한다. 정면 약간 왼쪽에는 로마의 모든 신들을 모신 판테온[만신전(萬神殿)이라는 뜻]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로마황제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다이내믹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이 두 가지 건축물과 조형물은 모두 로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장소에 터를 잡고 있는 것들이다. 판테온은 로마 중심부 서북쪽 로톤다 광장에 있고, 기마상은 남쪽의 카피톨리노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약과다. 눈을 옆으로 돌리면 더 기가 막힌 풍경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맨 왼쪽의 건물은 로마 북쪽 마르티우스 광장에 자리한 하드리아누스의 신전이고, 기마상의 오른쪽에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조형물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재위 379∼395년)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투트모제 3세 오벨리스크(기원전 15세기)로 터키의 이스탄불(그림이 그려진 당시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것이다. 그 오른쪽의 멀리 언덕 위에 자리한 원형의 신전은 티볼리의 시빌 신전이고 다시 그 오른쪽은 프랑스 남부 도시 님에서 ‘공수’해 온 파르테논 신전을 본 딴 매종 카레(네모난 집이라는 뜻)다. 다시 그 오른쪽의 콜로세움 같은 형태의 건물은 로마 서쪽 티베르 강 부근에 자리한 마르셀루스 극장이다. 극장 앞에는 동로마 제국을 건설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석관이 버려진 듯 길가에 방치돼 있다. 모두가 2천여 년 이상의 세월을 이겨내고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이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이 로마시대 유산들의 집결은 작가가 꿈속에 본 풍경일까. 그렇지 않다.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Giovanni Paolo Pannini, 1691∼1765년)라는 이탈리아 화가의 유쾌한 상상의 산물이다. 판니니는 1711년 고향인 파아젠차를 떠나 로마에 정착해서 베네데토 루티한테 데생을 배웠고 그 후 궁전 장식미술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빌라 파트리치, 카롤리스 궁전, 세미나리오 로마노는 그의 손길이 닿은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그는 실기 지도 교수로도 이름을 떨쳐 산 루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719년에는 로마 소재의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로코코 미술의 대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를 지도하기도 했다. 판니니는 특히 고대 로마 건축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과 폐허 이미지로 유명했는데 이런 그의 그림들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귀족사회에 불기 시작한 ‘대여행’(그랜드 투어) 붐에 힘입은 것으로 그의 그림은 관광객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그의 그림은 요즘으로 치면 로마방문 기념사진인 셈이었다.
판니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옛 로마제국 영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관광 명소들을 한 군데 모아 마치 모자이크하듯 그렸는데 이 기발한 상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그림을 ‘카프리초’(capriccio)라고 불렀다. ‘로만 카프리초’는 그런 기발한 착상의 산물인 것이다. 카프리초는 원래 문학에서 사용되던 용어인데 나중에 회화는 물론 음악으로까지 확대 적용됐다. 르네상스 화가 열전을 저술한 조르조 바사리는 카프리초를 ‘화가가 그림 속에 병치한 환상적이고 기묘한 생각들’이라고 정의했는데 나중에는 이런 생각들이 표현된 그림 그 자체를 뜻하게 됐다.
유명 건축물과 기념조형물을 절묘하게 조합한 건축적 카프리초는 판니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당대 한창 진행되던 고대유적의 발굴과 함께 그리스로마 문명에 대한 동경심이 판니니가 이런 그림을 그리는 데 커다란 자극제가 됐고 여기에 덧붙여 방문지의 추억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아가길 희망했던 여행객들의 염원도 판니니의 모자이크 상상화가 인기를 끈 배경이 됐다.
그는 로마의 폐허를 기독교의 영원성과 이교문명의 덧없음을 대비시키는 서사적 무대로 설정하기도 했다. ‘고전시대 폐허의 카프리초’의 경우 로마의 폐허 뒤로 로마황제 티투스의 전승을 기념하는 개선문이 아치만을 남긴 채 무너져 내리고 있고 왼편에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본 따서 축조한 로마 행정장관 세스티우스의 무덤이 하나의 풍경을 형성하고 있어 카프리초의 대가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오른쪽 신전에 서 있는 여신상은 흘러간 옛 영화를 쓸쓸히 되새기게 할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치 아래 설교하는 수도사를 배치한 점이다. 그는 폐허의 현장에서 청중을 향해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이교문화(로마제국을 의미)가 이렇게 퇴락하고 말았다고 목청을 높이며 생생하게 현장학습을 시키고 있다. 그가 승리의 아치 중심에 자리한 것은 이교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판니니의 시공을 무시한 기념비적 건축물의 유쾌한 모자이크는 기발함을 추구한 로코코의 시대정신과 그랜드투어 관광객의 요구를 바탕으로 꽃핀 독특한 장르로 피라네시, 위베르 로베르 같은 후배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계승됐다. 시공을 넘나든 초현실주의의 원조는 바로 판니니인 것이다. 살바토레 달리, 조르지오 데 기리코, 르네 마그리트 같은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은 다 판니니가 뿌린 씨앗을 바탕으로 꽃핀 까마득한 후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