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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국경 없는 유럽, 「먼나라 이웃나라」에 영감을 건네다
이원복ㆍ만화가, 덕성여대 시각디자인과 석좌교수 2012년 11월호

1975년 즈음이었다. 독일 유학 중 우연히 들른 파리의 한 책방에서 나는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다. 베스트셀러나 차지할 수 있다는 중앙책장으로 정갈하게 도열된 만화책들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채와 양장 형식이었으니, 우리나라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민의 대다수가 빈곤에 얽매여 있던 당시 한국사회에서 만화는 저급문화로 분류됐다. 배우지 못하거나 마땅한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삼는 업일 뿐이라며 천대하기 일쑤였다. 반면 유럽에서 만화는 순수미술보다 더 추앙받는 장르였다. 만화야말로 고도의 지식과 감각적 스킬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극히도 합리적인 사고와 논리에 감탄했고, 금세 매료됐다. 국가들 간의 경계를 허물고 편안하게 왕래하는 생활방식도 부러웠다.


얼마 후 소년한국일보로부터 청탁이 들어왔다. 유럽생활에서 얻은 소스를 토대로 연재만화를 구성하자는 제안이었다. 마침 ‘유럽의 오늘을 있게 한 역사적 배경을 만화와 접목시키는 작업’을 구상한 차였다. 더구나 소년한국일보는 경기고 재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만화를 그리면서 인연을 맺은 매체이기에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야흐로 1981년도 10월께였다.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유럽생활을 정리한 1984년 이후에도 2년이나 더 연장연재를 했으니까, 5년 3개월에 걸쳐 무려 1,367회를 실은 셈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이듬해 단행본이 출간됐는데, 바로 「먼나라 이웃나라」 초판이었다. 그리고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내게 있어 행운 자체다. 강산이 세 차례나 옷을 갈아입는 동안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1,500만부의 판매 규모를 기록, ‘국민만화가’라는 호칭까지 가져다준 존재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만화가를 직업으로 인정 않던 대한민국의 인식이 「먼나라 이웃나라」로 인해 시원하게 타파되고 있다 하니, 저자로서는 감격스러운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생명력이 굳건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글로벌화’라고 대답한다. 이는 내 여타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정신이다. 소통과 자유가 정착돼 있는 유럽 특유의 정서가 내 만화의 뿌리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종이 비슷한 것만 눈에 띄면 쏜살같이 달려가 만화를 그리곤 했던 나는, 한 번도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만화만큼 흥미를 끄는 대상이 없었거니와, 만화만큼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없는 까닭이었다. 때문에 나는 만화를 늘 숙명처럼 여겼다. 만화와 함께하는 찰나에만 행복감을 느꼈다.


만화는 이제 나의 사명으로 발전했다. 최근 유럽판을 중심으로 「먼나라 이웃나라」 전면개정을 실시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시대의 격변과 더불어 한층 향상된 한반도의 위상을 반영해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날카롭게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판단했다. 이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아끼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내년 봄이면 스페인편을 마지막으로 「먼나라 이웃나라」가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그렇지만 또 다른 세계를 만화에 투영하는 내 노력은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호흡할 수 있는 유일의 수단이 곧 만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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