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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과거와의 대화, 미래를 향하는 길잡이가 되다
이배용 전 이화여자대 총장 2013년 02월호

어렸을 때부터 기억력이 좋아 동화책을 읽고 나면 금방 다 외우고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대상이 할머니였다. 낮에는 가문의 큰 어른이시지만, 밤마다 혼자 주무시는 할머니가 심심할까봐 한편으로는 외로우실까봐 어린 마음에 안쓰러움과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늘 할머니 곁에서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쯤부터였는데 매일매일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해 들려드렸더니 할머니는 매우 즐거워하시면서, 세상에서 우리 손녀가 최고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이 나를 자신감 있게 만들었고 이야기 기술은 날로 발전했다.


이렇게 쌓아온 실력이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초등학교 6학년 국사시간이었다. 내가 연대를 잘 외우고 이야기를 잘 한다는 것을 담임선생님께서 이미 아시고 나에게 그 기회를 준 것이다. 친구들 앞에서 신나게 역사이야기를 꾸려갈 때, 너는 이다음에 꼭 역사 선생님이 되라고 꿈을 심어주셨다. 또 조회 때마다 그 시절에는 애국가 4절도 우렁차게 부르고 삼일절, 광복절 등 기념일마다 기념절 노래를 부르니 애국심은 절로 가슴 벅차게 들어와 역사를 해도 꼭 국사선생님이 돼야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굳건하게 갖게 됐다.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그 꿈은 흔들리지 않았다. 칭찬하는 교육, 꿈을 주는 교육이 내 인생의 길을 예시하고 결정해준 것이다.


그 후 대학에 들어와 역사를 본격적으로 전공하게 되면서 새롭게 눈을 뜨게 된 것은 역사 현장에서 찾은 우리 민족의 영혼이었다. 제일 처음 답사지였던 강화도로부터 서원, 사찰, 고궁, 왕릉 등을 수없이 다니면서, 항상 마주 대하는 유적지에서의 설렘과 과거와의 대화는 어느덧 미래를 향해 가는 길잡이가 됐다. 드라마틱한 결정적 순간이라기보다는 이슬비 젖듯 내 인생 속에서 역사의 순리를 터득해가는 길이 열리면서 그때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나에게 지혜와 용기를 줬다.


특히 역사를 통해 조화의 지혜를 배웠다. 첫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조화다. 그래서 나는 역사는 오래된 미래라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오래전에 만들어졌어도 현재에 되살아나 미래의 길에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세종대왕의 한글이 15세기 중엽에 창제됐지만 그것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무한한 자긍심과 독창성을 갖추게 할 뿐 아니라 한글 창제를 통한 세종대왕의 나눔과 배려, 소통과 화합의 진정한 인간 사랑의 정신은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천년만년의 길을 닦은 것이다. 둘째, 역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배웠다. 우리의 문화 창조는 반드시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뤄졌다. 일례로 소수서원에 가면 학자수(學者樹)라고 명명한 소나무 숲이 있는데 한결같이 소나무들이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공부하고 싶은 나무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한정된 지혜로는 거스를 수 없는 오묘한 자연의 언어, 자연의 마음을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헤아리고 존중하면서 어떤 건축물이라도 자연의 순리를 저버리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던 것이다. 셋째, 역사를 통해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배울 수 있었다. 역사가 부단히 이어져오는 것을 보면, 만드는 사람의 창의성, 지키는 사람의 보존의식과 책임감, 내일의 길을 열어가는 희망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의 자긍심 속에서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극복하고 지킬 수 있는 힘이 됐다.

 

전국 곳곳에 우리가 자긍심을 갖고 세계에 자랑할 귀중한 국가브랜드의 보석이 박혀 있다. 이제 우리는 국가브랜드의 보석을 더 많이 찾아내어 지역 간의 소통과 화합의 진정한 자산으로 키워야 한다. 아울러 역사의 길을 통해 함께 가야 할 상생과 공존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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