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언니의 수다여자에게는 두 개의 방이 필요하다
남인숙 에세이스트 2013년 02월호

“결혼하고 나서 전업주부로 사는 게 나을까요? 제 일을 계속 하는 게 나을까요?” 결혼을 앞둔 독자들이 제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사실 전문직이거나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라면 이런 질문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 사이의 이해득실 차이가 갈등의 여지가 없을 만큼 명확하니까요. 고민의 주인공들은 대개 아무리 고상하게 포장해도 결국 고된 밥벌이일 뿐이라고 스스로 정의내린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해 아이를 낳았을 때 드는 육아비용, 규모 있게 살림살이를 못해 낭비되는 돈, 남의 손에서 자랄 아이의 정서적 손실 등을 고려해 계산기를 두들겨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는 그 계산에서 플러스가 나왔건 마이너스가 나왔건 일을 계속 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조언을 합니다. 일의 특성상 일정 부분 전업주부로 살아온 저는 전업주부가 누리는 것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일상과 자유가 거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을 그만두면 처음 몇 년간은 참 좋을 것입니다. 늦잠을 자도, 하고 싶은 시간에만 일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고 아이와 항상 같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없이 소비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삶에서 마음을 다쳐도 잠시 피신해 쉴 곳이 없다는 것을요.


전업주부는 단 한 개의 삶의 방을 가지는 일입니다. 방이 하나면 그 방을 어떤 사정으로 못쓰게 됐을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방의 복구도 늦어지고 그 공간에서 마지못해 버텨야 하는 방주인도 병들기 쉽습니다. 직장과 가정, 둘 다 꾸려가는 일이 한국사회에서 참 버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하는 여자들은 두 개의 방을 오가며 서로 다른 방에서 받은 피로를 풀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말붙이기도 조심스러운 사춘기 딸과 영 내 맘 같지 않은 남편에게 실망이 느껴질 때면 바깥사람들과 만나 일하며 생기를 회복합니다. 반대로 냉정한 일터에서 난타당하고 온 날은 ‘그래도 내 편’인 가족의 따뜻함에 힘을 얻습니다.


한 개의 방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방의 주인은 더욱 현명하고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항상 환기에 신경써야 하고, 방이 더러워지거나 망가지지 않게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하지요. 때로는 그 방 안에 예쁜 칸막이라도 하나 들여 잠시나마 방 두 개의 효과를 누리기도 해야 하고요. 그 모든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저는 제게 조언을 구해 오는 이들에게 차라리 방 두 개를 가지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가 단순히 수익의 덧셈뺄셈에만 있지 않다는 걸 일하는 여성들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혼하고도 일하는 여자들이 점점 많아져서 ‘대세’가 된다면, 두 개의 방을 꾸리는 일도 지금보다는 덜 힘겨운 일이 될 테지요. 우리 딸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아도 고민 없이 두 개의 방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되면 좋겠습니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