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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정석의 길 위의 순간들너무 많이 가진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곳
박정석 여행작가 2013년 02월호

 

가나에서 우연히 알게 된 현지인 임마누엘에게 초대를 받아 그의 아버지가 하는 카카오 농장에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코코넛을 본 적은 많아도 코코아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수도인 아크라에서 차를 타고 형편없는 도로를 두 시간쯤 달렸을까,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인사드려. 바로 저 분이야.”


아프리카는 뿌리 깊은 부족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위계질서, 특히 집안 최고 연장자의 권위가 막강합니다. 이방인이 무슨 선물을 줘도 일단 그분께 가져갑니다. 아버지께 공손히 인사를 드린 다음에야 그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차례로 악수를 했지요.


아주 소박한 농장이었습니다. 콘크리트로 대충 지은 상자 같은 건물에 방이 너덧 개 있더군요.
가나 초콜릿이 있지요. 가나는 한때 세계 2위의 카카오 생산국(1위는 이웃인 아이보리코스트)이었다고 하는데 가나산 카카오는 질이 좋아서 값을 잘 받는 축이라고 합니다. 카카오값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농산물 치고는 고가라 농장경영이 꽤 수지가 맞는다고 하더군요. 


임마누엘의 어머니인 도리스 여사는 거대한 체구에 이보다 더 거대한 미소를 가진, 아주 활달하고 재미있는 분이었습니다. 자꾸 저더러 뭐든 요리를 해보라고 하더군요. 닭과 토마토 퓨레, 마늘을 듬뿍 넣고 간단히 스파게티를 한 번 만들었더니 좀 맵긴 해도 맛이 괜찮다며 다들 잘 먹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한국 요리를 해 보라고 합니다.


난감합니다. 한 번도 고역이었는데 또 하라니요. 아프리카가 다 그렇지만 가나도 부엌 환경이 너무나 열악합니다. 마당 구석에 별채로 조그맣게 나무 오두막을 지어놓고 부엌으로 사용하는데 환기 구멍이 변변치 않아 장작에 불을 지피니 연기가 구름처럼 자욱합니다. 토끼라도 잡는 것 같네요.


콜록콜록 심한 기침에 눈물 콧물 줄줄 쏟아지고, 요리고 뭐고 당장 고통이 너무 심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고기를 썰 도마도 없고, 요리를 담을 그릇도 변변치 않고, 하다못해 숟가락조차 없습니다. 하긴 손으로 밥을 먹으니 숟가락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군요.   


한국의 부엌에 익숙한 제 눈에는 모든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 꾸역꾸역 부엌으로 몰려와 숨을 죽인 채 저의 다음 동작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네요. 결국 꾀를 내기로 했습니다. 요리는 무슨 요리. 간단히 라면이나 끓이기로 한 것이지요. 마침 비상식으로 가져간 라면 두 개가 있었거든요. 문제는 라면은 겨우 두 개뿐인데, 그걸 먹고 싶어서 눈을 빛내고 있는 배고픈 입들은 무려 스무 명도 넘는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일단 부글부글 라면을 끓입니다.  
“이게 한국 음식이란다. 자, 어서들 와서 밥 먹어라!”


임마누엘 어머니가 말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한 명씩 밥을 받아갑니다. 쌀밥에다가 라면 국물 두 숟갈씩.
아프리카식 기본 식사는 옥수수나 메이즈(maize), 카사바(cassava)나 얌(yam)을 떡처럼 만든 탄수화물 덩어리에 스파이시한 소스를 약간 뿌려 먹는 것이니 제가 준비한 식사도 아프리카식으로 먹은 것이지요. 라면은 조금밖에 안되니까 짭짤한 국물을 반찬 삼아 먹어야 합니다. 나름대로 공평히 배분하려 노력했지만 워낙 양이 적군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몇 명이 나눠 먹고…’ 이런 성경 속 기적 이야기가 저절로 생각나더군요. 하긴 그러고 보니 가나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국가네요.


임마누엘네 농장에는 물론 수도가 없습니다. 농장에 사는 일꾼의 아이들이 하루종일 몇 번이고 동네 우물에 가서 물동이로 물을 길어다가 마당의 커다란 드럼통에 채워놓지요. 아이들이 모두 합쳐 일곱 명쯤 됩니다. 처음에는 저를 잔뜩 경계하다가 점점 긴장이 풀어지더니 나중에 제가 떠날 때쯤 되니까 한 명씩 슬금슬금 다가와 악수를 청하더군요.
“우리 아들이 부탁하는데, 다음에 또 여길 올 수 있으면 그때는 자전거를 한 대 가지고 오면 좋겠다고 하네요.”


애들 어머니 한 명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제가 여기 또 올 일은 다시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저에게 카카오농장 생활은 경험을 위한 경험일 뿐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시장을 방문, 잠깐 동안 신명나게 물건을 팔아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루면 충분하지 이틀 묵기는 싫었습니다. 환기 안 되는 부엌에서 매운 눈 비벼가며 요리하기 싫었고, 휴지도 없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전전긍긍하며 일 보기 싫었고, 전등도 없는 흙바닥 방에서 벌레 걱정하며 잠자기 싫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곳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서 다시는 이곳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고 숨을 거둘 때까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매우 운이 좋은 편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평생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기호나 소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기호나 소망이란 것을 가질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 그들에게 선택이란 더없이 사치스러운 단어입니다.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요.


딱한 것은 농장에 거주하는 일곱 아이들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도와 하루 종일 목이 휘도록 커다란 물동이를 이고 나르는데 변변한 장난감 하나 없이 질척한 흙바닥을 맨발로 뛰놀면서 지냅니다. 나뭇가지와 빈병을 묶어서 조잡하게 만든 것을 질질 끌고 다니기에 그게 뭔가 했더니 자동차를 형상화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조카들 방을 가보면 장난감이 산더미라 뭐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듭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바비 인형만 해도 대여섯 개 되고 인형에 입힐 옷이며 구두며 가발까지 한 트럭입니다. 조카들 입는 옷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 애들은 제 사랑스러운 혈육들이고 이 농장 아이들은 아무 상관없는, 피부색마저 다른 종족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어쨌든 다들 같은 인간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 비슷해야 마땅할 테니까요.


임마누엘의 농장에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죄책감 말입니다. 생각 끝에 비상금으로 가지고 다니던 지폐를 한 장 내놓으니 애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고 매우 기뻐합니다. 염소 한 마리가 10달러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뜨거운 반응에 순간 당황합니다. 이상하지요. 비행기 타고 스물 몇 시간 날아왔을 뿐인데 내가 가진 것의 의미가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이 말입니다.


“신이 축복하실 거에요!" 감격한 엄마들은 이렇게 말하며 제 손을 꼭 잡습니다. 민망한 저는 김혜자 씨 흉내를 내어 성스럽게 웃어줍니다. 아이들을 한 명씩 다정하게 끌어안고 “공부 열심히 해.”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등의 덕담도 아낌없이 해줍니다.


“난 지금 아프리카에 있단다.” 또는 “난 아프리카에 갔다 왔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뺀다면, 그리고 황홀한 동물 사파리를 제외한다면, 아프리카는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꿈꾸는 것만큼 멋있는 여행지가 결코 아닙니다. 가격대 성능비로 치자면 한국에서 가까운 동남아보다 어림없지요. 그러나 이 땅을 여행하다 보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가진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저처럼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도요.

 

이타심을 경험하는 것은 언제든 좋은 일입니다. ‘내 아이는 귀하게 키워야지’ 등의 CF들로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이타심을 느끼는 것은 고귀함을 넘어서서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경험입니다. 이타심은 그 정도가 크던 작던 인간 본성과는 반대되는 감정이니까요. 결국 죄 없이 죽은 성자들이 오늘날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도 이타심 때문일 테니까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잊혀졌던 우리들의 본성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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