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예측의 중요성은 예측이 얼마나 잘 들어맞았는가다. 사회학자로서 미래학의 원조이며 세계적 석학인 허만 칸 박사(1922~1983년)는 박정희 대통령의 미래학 교사였다. 당시 허만 칸은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은밀히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사실 미래학자들은 20~30년 후를 예측하기 때문에 현실사회에선 ‘사기꾼’이라는 별칭을 얻는다. 현재 한국은 허만 칸이 예측한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하고 성장했지만 그 당시에는 허만 칸이 사기를 친다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 동력은 미래기술예측을 바탕으로 조언한 허만 칸의 역할이 컸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래기술 예측’에 관심이 많았다. 앞으로 어떤 기술, 어떤 산업이 세계적으로 가장 부상하는지, 몇 년도에 부상하며 세계시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한국정부가 어디에 투자하고 어떤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정밀하게 허만 칸 박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도 미래기술 예측이 큰 역할을 했다.
허만 칸의 「세계경제 발전, 1979년 이후」(World Economic Development, 1979 and Beyond)는 1979년 출간된 저서로, 이 책에는 박 대통령과 나눈 대화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은 미국인들에 의해 외국 홍보용으로 우선 계획됐다. 한국정부(박정희 정권)가 1962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세계은행 등 원조금, 대외차관을 결정하는 미국인 자문위원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결정됐다. 차관을 결정하는 국가에 한국 경제발전계획을 청사진으로 내놓아 신뢰도와 당위성을 고취시키기 위함이었다. 세계은행 등 외국투자전문가들이 개발국가에 차관이나 금융 지원을 하려면 자신의 정부에 한국개발 청사진을 제시해 미래에 차관회수가 가능함을 보여줘야 했다.”
허만 칸은 박 대통령에게 “한국 등 개발도상국은 정권유지를 위해서도 미래비전을 보여주고 국민들에게 목표를 만들어줘 그 목적이 달성되면 잘 산다는 ‘Images of Future’(미래비전, 미래계획)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선 장기적 계획, 즉 5개년 개발계획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실 새마을운동도 허만 칸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안한 프로젝트였다. 전태일 사건 이후 박정희와 만난 허만 칸은 “도시노동자 운동이 더욱 격렬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고급 노동력은 농촌인구다. 농촌인구들을 한가하게 만들어 도시노동자로 투입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도시에 와서 노동하라고 하면 폭동을 일으키므로 이들에게 다가가 한가하게 만들어야 한다. 짚 지붕 가는데 3개월, 슬라브로 바꾸고 아낙네들 물 길어오는 데 3시간, 부엌에 펌프 넣고. 이들을 서서히 훈련시켜 도시노동자 혹은 농촌소득을 올리는 일을 하되, 이런 일을 녹색운동, 정신개혁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