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여년 한국경제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전반 30여년은 연평균 8~9%의 초고속 성장에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성장과 일자리 그리고 분배가 동반 개선되는 양질의 발전을 시현해 세계로부터 가장 모범적인 동반성장국가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과 경제민주화 정책기조가 도입된 1990년대부터 20여년은 반대로 성장률은 지속 하락하면서 이제 0% 추세성장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고, 동반성장 메커니즘이 작동되지 않아 소위 경제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경제불균형 심화 추세가 바로 경제의 균형과 민주화를 추구한 1990년대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한국의 개발연대(1960~1980년대) 동반성장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수출주도 성장전략하에서 성장하는 수출기업들이 수출의 과실을 국내 투자로 환원시킴으로써 수출이 내수 부문과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기업들은 정부의 적극적 독려 아래 내수투자를 늘릴 수 있었다. 노조를 지나치게 억압한 문제가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투적 노조는 없었다. 수출을 많이 해 대기업이 되는 것이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점이 됐으며 경제력집중 규제라는 이름으로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규제하는 일은 없었다. 대기업이기 때문에 수도권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수도권규제 정책도 없었다. 수출종합상사들이 수출을 늘리는 일은 중소기업들과의 연대 없이는 불가능했다. 수출이 내수, 중소기업, 서비스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양산함으로써 동반성장을 이끈 것이다.
그럼 왜 오늘날에는 양극화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동반성장이 안 되고 있는가? 근로자를 위한다는 전투적 노조 방치, 크기 때문에 규제하는 대기업규제, 작기 때문에 지원하는 중소기업지원정책, 지방을 위한다는 수도권규제 등 경제적 약자를 더 우대한다는 재분배적 경제 균형과 민주화 정책들이 결국은 투자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들의 해외투자와 국내고용회피 자동화투자를 과도하게 조장함으로써 좋은 일자리는 해외에 팔고 청년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 일자리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전투적 노조와 투자규제를 피해 해외로 떠나고 중소기업들은 성장하기보다 작은 기업으로 안주해온 한국경제가 좋은 일자리 부족과 경제 하향 평준화 속에 경제양극화에 봉착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사회정의나 공정 혹은 경제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도입된 대기업 투자에 대한 규제나 노조편향정책들이 경제적으로는 수출ㆍ제조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 공동화와 과도한 자동화나 자본투자를 초래해 결국은 국내 일자리 감소, 국내 중소기업과 서비스 부문에 대한 수요기반 잠식을 초래함으로써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양극화와 성장과 분배의 괴리현상을 오히려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장하는 기업이 아니라 작은 기업이 우대받는 경제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름없다. 대기업규제와 수도권규제, 전투적 노조 문제를 풀지 않고 대기업 투자와 양질의 일자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득권 노조 문제를 풀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은 없다.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우대하지 않고 중소기업 성장을 유도할 방법도 없다. 기업규모에 관계없이 기업투자의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만이 양극화의 해법이다. 신규고용 없는 대기업 자본투자마저도 중소기업 고용창출의 원천이 된다. “투자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들의 투자를 억제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정치권이나 일부 학계의 궤변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경제의 미래는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