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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반 컨텐츠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상상력
노영덕 미학자 2013년 04월호

예술이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일종의 상식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생각이 생겨난 것은 불과 이삼백년 전으로 근대에 들어와서다. 근대 이전까지 사람들은 예술을 상상력과 연관짓지 않았다. 그것은 예술개념이 오늘날과 달랐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뜻인 아트(Art)라는 말이 생겨난 시기는 18세기에 와서 프랑스의 미학자 바뙤(A. C. Batteux)가 ‘순수예술(Fine Arts)’ 개념을 수립하고 나서부터다. 그 전까지 예술은 ‘테크네(Techne)’로 불렸다. 테크네는 오늘날 아트처럼 심미적인 감상 대상으로서 향유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어떤 인공적 제작물을 제작해내는 행위가 아니라 이성적 상태에서 합리적 제작규칙에 의거해 이루어지는 모든 기술 그리고 일부 학문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유명한 경구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Ho bios brakus, he de techne makra)’는 철학자나 예술가가 한 말이 아니다. 엉뚱하게도 의사인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이때의 ‘예술’은 테크네를 옮긴 말이다. 전문지식에 기술과 규칙이 동반되는 의술 역시 옛날에는 예술, 테크네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의술은 어렵고 터득하기에 오래 걸리는 데 비해 인간의 생명은 짧으니 젊을 때에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 이 경구의 의미였다.


근대 들어 정립된 예술적 상상력


중요한 것은 테크네가 상상력을 배제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의사가 수술할 때 상상력을 발휘해서 집도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과거의 예술, 테크네는 상상력이 개입되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옛 사람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인식능력과 관련해서만 탐구했지 창조적 능력과 연관해 이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시학」(Poetica)에서 미메시스(Mimesis) 개념을 통하여 영향력 있는 예술론을 펼쳤던 예술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학」에서 그가 한 주장은 시가 치밀한 지성의 산물이요, 제작학이라는 것이었다. 시는, 예술은 상상력이나 영감의 산물일 수 있다는 오늘날 우리의 생각이 그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대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최고의 시인이 될 수 있는 선천적 조건을 든다. 바로 은유(metaphor)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타고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은유가 시의 생명이라고도 주장한다.


은유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유비(類比), 즉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것을 비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것들 간에 닮은 점을 찾아내어 닮았다고 판단된 두 번째 것에게 처음의 것의 이름을 전용하는 것이 바로 은유이다. 예컨대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라고 해보자. ‘봄’과 ‘고양이’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각은 이들 둘 간의 유사함을 찾아냈고 그래서 ‘고양이’에게 뜬금없게도 ‘봄’이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버린 것이다. 이렇게 은유를 잘 만들어내려면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것에서 유사한 점을 찾아내는 이 예술적 능력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상상력에 기인한다.


‘내면의 빛’이 풍부해야 상상력 발달해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단 ‘보는’ 능력이다. 상상력을 뜻하는 영어 ‘이매지내이션(imagination)’의 어원은 판타지아(pantasia)이며 이 말은 ‘나타나 보이게 하다’라는 동사 ‘판타제인(phantasein)’에서 변형된 것이다. 그리고 판타제인은 ‘파오스(phaos)’라는 말에서 왔다. 파오스는 ‘빛’이라는 뜻이다. 상상력이 일종의 보는 능력이라는 주장이 이 때문에 가능하다. 빛이 있어야 뭔가를 보는 것이 가능해지니까. 하지만 상상력은 사물의 차이를 보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사물의 닮은 점을 보는 능력이다. A를 A로 보았다면 그것은 상상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A를 B로 보는 것이 상상력의 결과이다. 그래서 상상력의 본질은 ‘Seeing as if(마치 ~처럼 보는 것)’라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질적이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는 어떤 매개 능력인 것이다.


우리는 눈을 감고 정신의 스크린에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려서 볼 수 있다. 눈을 감아 빛이 차단되었는데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내면의 빛이 있다는 증거이다. 내면의 빛,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이 내면의 빛이 풍부한 사람이 소위 상상력이 발달한 사람이다. 오늘날 예술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가히 상상력이 예술을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까?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평소에 서로 상이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보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뿐 아니라 자신의 저작물 그 어디에서도 예술적 상상력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유를 강조함으로써 사실상 예술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셈이다. 어쩌면 예술은 그 본질이 은유인지도 모른다. 모더니즘 이후 모방이나 재현의 원리에서 벗어난 지 한참인 현대예술은 더욱 그러할 수 있다. 실제로 아서 단토(A. Danto)같은 현대 미학자는 예술을 은유로 본다. 하긴 A를 A라고 곧이곧대로 보여주면 예술이 되질 않는다. A를 B라고 뻥튀기 할 때 예술이 이루어진다.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던 백남준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상상력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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