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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반 컨텐츠현실 속 환상의 섬, 코모도를 찾아서
박정석 여행작가 2013년 04월호

 

어딜 가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은 수없이 많지만 그 목적지로 코모도(Komoda)섬을 권한 적은 여태 없다. 여행의 목적이 휴양이나 학습이 아니라 모험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중동, 남미,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 어느 곳을 알려준다면 그곳은 티벳이나 아니면 최소한 네팔, 인도가 되어야지 인도네시아, 그것도 거대 휴양지인 발리에서 멀지 않은 열대의 작은 섬은 어딘지 시시하게 느껴질 테니까.


환상은 현실과 멀수록 더욱 반짝거린다. 인도네시아의 코모도는 누군가의 숙원이 되기에는 너무 가깝다. 아마존이나 갈라파고스, 킬리만자로에 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쉽다. 서울에서 발리섬까지 국제선 한 번, 발리에서 플로레스섬의 라부안 바조(Labuan Bajo)까지 국내선 한 번, 그리고 몇 시간의 배 여행.


코모도섬엔 무엇이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큰 파충류가 살고 있다. 소위 코모도드래곤(이하 코모도)이다. 전설 속의 용과 악어가 합체된 듯한 형상의 거대한 생명체로 다 자란 성체는 3m가 넘는다. 이 지역에 사는 원주민과 중국 상인이나 이슬람 상인들을 통해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 용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12년. 코모도섬 인근지역 행정관이었던 한스브로엑이 섬을 탐험하던 도중 2.2m짜리 동물을 사로잡으면서 코모도섬에 사는 드래곤이 사실은 거대한 도마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코모도는 외관상 도마뱀보다는 용에 더 가깝다. 길고 두툼한 꼬리로 한번 치면 사람의 다리뼈 정도는 쉽게 부러뜨릴 수 있고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수영도 잘하고 달리기도 아주 빠르다.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코모도의 침 속에 들어 있는 치명적인 세균들. 먹잇감이 한 번 물리고 나면 50가지가 넘는 세균의 독이 온몸에 퍼진다. 그래서 용케 도망을 치더라도 하루이틀 만에 죽음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코모도를 천연기념물로, 이들이 사는 코모도섬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섬은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라부안 바조는 플로레스 서쪽 끝의 항구마을이다. 연푸른 바다에 열대수 가득한 작은 섬들이 둥실 떠 있는 정경은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포장되지 않은 붉은 흙길을 오토바이들이 달려갈 때마다 검은 매연과 흙먼지로 금세 목이 매캐해지는 마을이다. 비가 한번 내리면 물바다가 되는 길 양쪽으로 대충 지어진 가게와 식당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고 그 앞에서 갈색얼굴의 사내들이 거친 목소리로 호객한다. 변방 특유의 불안하고 위험한 느낌이 떠도는 동네다.


이곳에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두 가지. 스쿠버다이빙 그리고 코모도다. 우선 항구로 가자. 선장들과 직접 흥정해 배를 한 척 빌리거나 혼자라면 호객꾼을 따라온 다른 외국인들에 합류, 그룹을 지어 코모도섬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비용은 1박 2일 투어에 250달러가량. 찢어진 돛을 굵은 바늘로 얼기설기 대충 꿰맨 현지인들의 고깃배다. 우리일행은 호주인 한 명, 네덜란드에서 온 남녀, 그리고 나, 이렇게 모두 네 명.


 

 

 

 

 

 

 

 

 

 

 

 

 

 

 

항구를 뒤로 하니 나오는 것은 푸른 바다, 바다, 바다. 배 한가운데 쳐 놓은 그늘막 아래 둘러앉아 잡담하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곧 지루해진다. 단조로운 해상여행에 기쁨이 되는 것은 끼니때 맞춰 짠, 하고 등장하는 식사. 부엌이라고 할 것도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풍로 하나, 도마로 쓰이는 나무판자 하나, 그리고 녹슨 냄비 하나만으로 만드는 것 치고는 놀라울 만큼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등장한다. 생선구이, 바나나오믈렛, 볶음밥, 볶음국수, 닭튀김, 간식으로 바나나튀김에 커피, 수박까지.


“다이빙 타임이다!” 코모도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던 배가 어느 순간 멈춘다. 하얀 해변이 바라보이는 얇은 연푸른 바다에 닻을 내린다. 원초적인 상태로 잘 보존된 바닷속은 이 일대의 또 다른 자랑. 여기서 멀지 않은 발리섬 인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존상태가 훌륭한 화려한 생태계를 구경할 수 있다. 커다란 조개, 빛깔 고운 산호, 거북이, 그리고 더 깊은 바다로 가면 각종 가오리들과 상어 등 대형 어류도 무수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코모도. 섬에 도착해 국립공원 사무실로 가서 등록을 한 다음 가이드를 배정받아 탐험에 나선다. 사무실 근처에서 걸어 다니는 어린 코모도는 도마뱀처럼 작고 날씬해서 전혀 무섭지 않다. 다 큰 코모도는 아주 커다랗고 무섭게 생겼지만 대부분 잠에 취한 듯 꼼짝 않고 엎드려 있다.


“어느 이상 가까이 가지 마세요. 느린 동물처럼 보이지만 마음먹으면 아주 빨리도 움직일 수 있답니다.”


가이드는 호신용인가 싶은 기다란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걷는다. 2009년 나무열매를 따던 현지인이 코모도에게 물려 죽은 사건을 포함, 몇 년에 한 명씩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가장 위험한 건 코모도들이 뭔가 먹고 있을 때에요. 그럴 때는 절대 자극하면 안 됩니다. 식욕 때문에 아주 난폭해진 상태니까요.”


그런 말을 듣지 않더라도 공원 측에서 먹잇감으로 던져준 멧돼지에 머리를 처박고 우물거리며 먹는 모습은 충분히 위압적으로 보인다. 섬을 탐험하다 코모도를 마주치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춘다. 강력한 어깨와 팔을 천천히 움직이며 기어오는 코모도에게 홍해가 갈라지듯 황급히 길을 터주고 자세히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그러나 갑자기 달려든다 해도 잡히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찍이 서서 바라볼 뿐이다. 바로 저 생물을 보기 위해 비행기 타고 배 타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코모도는 구경꾼인 우리에게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배가 부르고, 갈 길이 멀고, 인간 따위에게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벌판에 피어난 들꽃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기고, 코모도섬은 한가로워 보인다. 코모도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사람이 천연기념물인 그들을 죽였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강하고, 우리는 숨죽인 구경꾼에 불과하다. 여기는 코모도섬. 지구에서 유일한 코모도들의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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