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들은 인간과 컴퓨터의 차이를 기억에 대한 메커니즘에서 찾는다고 한다. 컴퓨터는 저장된 그대로 기억해 내지만 인간은 저장된 기억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변형하여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지극히 ‘인간적인’ 기억 체계는 소비 행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누구나 자신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실험 중 하나였던 A제품과 B제품의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 결과였다. 브랜드명의 노출 없이 맛에 대해서만 평가했을 때 51%가 B제품을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을 알려주고 다시 평가했을 때는 65%가 A제품을 선택했다. 실제로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뇌를 촬영해 보면 브랜드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떤 브랜드를 맛보더라도 맛을 관장하는 영역인 전두엽만이 활성화된 반면, A제품이라는 브랜드를 알고 뇌를 스캔했을 때는 전두엽 이외에 중뇌, 선조체, 전전두피질 등 인간의 쾌감을 관장하는 뇌가 전체적으로 활성화됐다고 한다. B제품의 경우는 이 영역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A제품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그간 오랜 마케팅 활동으로 축적된 긍정적 이미지들이 쾌감중추를 자극시켜 더 맛있고 더 좋은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제품 그 자체가 아닌 브랜드가 주는 가치에 열광하며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알기에 기업들도 앞장서서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고(logo)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심볼(symbol)로서 브랜드 로열티(brand royalty)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브랜드 컨설팅 전문 회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해마다 전 세계 수백 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자산 가치를 평가한 자료에 의하면 20년 넘게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브랜드는 코카콜라로 조사됐다.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는 자기들이 소유했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아이덴티티(identity)인 레드 컬러에 화이트로 흘려 쓴 글씨체인 로고에 있다. C를 강조한 이 로고는 이제 읽히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탄산이 입안 가득 퍼질 때 느껴지는 풍요로움과 오랜 마케팅 활동으로 형성된 행복의 이미지를 기억해 내게 한다. 하루 6억 병이 팔리고 690억 달러(한화 85조원)의 자산 가치를 지닌 코카콜라라는 이름과 로고가 유명 그래픽 아티스트의 작품이 아닌 당시 경리 사원이었던 프랭크 M. 로빈슨이 만든 것이라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코카콜라는 오랜 기간 동안 로고를 활용해 현재까지 유명한 캠페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빨간 옷의 산타 할아버지라는 가공의 인물을 크리스마스의 얼굴로 만들어 버린 크리스마스 캠페인, 하얀 곰과 코카콜라라는 언발런스한 이미지의 조합을 만들어낸 백곰 캠페인 그리고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때부터 공식 후원사로서 꾸준히 집행되고 있는 올림픽 캠페인 등이 있다. 이번에 소개할 캠페인은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독일 맥켄 에릭슨에서 제작한 올림픽 캠페인이다. 코카콜라만의 레드 바탕에 화이트의 로고를 그래픽화하여 성화의 횃불로, 높이뛰기의 가로대 등으로 형상화했다. 로고의 일부만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코카콜라임을 연상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코카콜라 로고가 지닌 막강한 힘을 알 수 있다.
나이키도 코카콜라만큼 강력한 로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이키는 1962년 오레곤 대학 트랙 선수였던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와 육상 코치였던 빌 바워만(Bill Bowerman)이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로, 1971년 나이키라는 새로운 기업명에 대한 로고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모두가 열광해 마지않는 나이키 로고지만 당시에는 평범한 학생 디자이너인 캐롤라인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에게 작업 시간당 2달러씩, 총 35달러에 주고 의뢰한 12개 평범한 디자인 중 하나였다. 심지어 임직원 모두 이 로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감에 임박해 할 수 없이 선택한 스워시(Swoosh) 마크는 조깅화 붐을 타면서 나이키의 얼굴로서 나이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1980년대 마이클 조던을 모델로 한 농구화가 큰 인기를 누리면서 나이키 로고는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넘어 스포츠 정신의 상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할 광고는 러닝화 라인 중 하나인 나이키 에어(NIKE AIR) 광고다. 사람들의 처진 뱃살을 나이키 로고로 형상화해 지금 바로 나이키 에어를 신고 뛰기 시작한다면 로고 모양 그대로 뱃살을 오려낸 것처럼 날씬해질 수 있음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로고는 브랜드의 얼굴이다. 좋은 이미지를 가진 얼굴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호감을 갖게 되는 것처럼 한번 잘 만든 로고는 수백 년 간 사랑 받는 브랜드의 원동력이 된다. 로고를 마치 한때 유행처럼 심심하면 바꾸는 기업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형을 자주 하는 연예인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상실한 채 그저 그렇게 잊혀지는 것처럼 로고를 자주 바꾸는 것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다. 진정 로고의 힘을 아는 브랜드들은 때에 따라 살짝살짝 세련미를 가미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이미지를 강화시켜 나간다. 당신이라는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차별화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가치를 계속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에게 남들과는 차별화된 ‘그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