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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평경제민주화와 박근혜 정부의 과제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혁신 최고과정 주임교수 2013년 04월호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야기된 세계 경기침체 이후 한국경제의 성과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해외에선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빨리 경제를 회복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하는 데 반해 국내의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않다. 왜 그럴까? 밖에서 한국경제를 평가할 때는 경제성장률, 무역수지, 일자리 창출 등 소위 거시경제지표를 보고 판단하는 데 비해 개개인의 관심사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내 가게의 매출액은 지난해에 비해 어떤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내 아이는 취직이 될까, 전세금은 얼마나 오를까 등등.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은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 덕분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현상은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수출과 대기업이 경제 회복을 주도했다면 그 반대편인 내수 기업과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어려웠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비중은 각각 어느 정도인가? 통계청 사업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 우리나라 총사업체 346만9천개 중 종사자수 300인 이상 대기업은 3,398개로 0.1%에 해당한다. 종사자수로 보면 대기업에 종사하는 숫자는 전체 1,821만1천명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273만1천명이다. 요컨대 전체 종사자의 85%에 달하는 중소기업 종사자 대부분은 경기회복을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한편 내수 기업의 어려움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동네 가게들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12년은 20년 만에 한 번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가 같은 해에 치러진 선거의 해였다. 경기회복의 효과가 모든 계층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양극화, 쏠림현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여야 정치권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구호로 총선에선 복지 약속, 대선에선 경제민주화를 내놓았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를 선점함으로써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학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정치)민주화 이후 개정된 9차 개정 헌법의 경제 관련 조항으로 새롭게 들어간 개념이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국가는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경제학에서 쓰이는 개념이 아닌 만큼 정치경제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먼저, 분배 측면에서 보면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기 위한 맞춤형 고용복지 같은 분배정책을 들 수 있겠다. 다음으로 생산 측면에서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규제와 조정을 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국내 시장뿐 아니라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무대에서도 싸워야 하는 우리 대표선수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정부는 대기업이 불공정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ㆍ조정을 해야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는 대표선수의 발목을 지나치게 붙잡아서도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부흥을 위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직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차세대 먹거리와 신규 일자리 창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심화되는 양극화, 소득 및 빈부격차 문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이는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납품가격 후려치기 같은 횡포를 근절하지 않고 중소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 가운데 어딘가에서 가장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일, 이것이야말로 신정부의 당면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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