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후배는 벌써부터 걱정이 많습니다. 임신과 출산, 젖먹이를 떼어놓고 울면서 출근하던 고비까지 잘 넘긴 수많은 선배들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산을 넘지 못하고 사표를 내는 걸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고민이 한 보따리인 후배는 예전에 신문에서 읽었다는 기획기사를 인용하며 또 다른 걱정거리를 털어 놓습니다.
“언니, 전업주부들은 일하는 엄마들 왕따시킨다면서?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친구가 곧 아이친구라는데 내가 일 계속하면 우리 애도 왕따되는 거 아닐까?” 후배의 눈에서 진심 어린 염려를 읽어낸 저는 적이 놀랐습니다. 전업맘들이 일진도 아니고 왕따라니요?
사실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전업맘과 워킹맘의 대결구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습니다. 전업맘들은 워킹맘들이 자신들을 무지렁이 취급하며 잘난 척 한다고 생각하고, 워킹맘들은 전업맘들이 자신들을 질투하며 쓸데없이 학교에 치맛바람을 일으킨다고 여기며 서로를 껄끄러워 한다고 말입니다. 모두 언론과 드라마 같은 곳에서 그려지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이 학부모가 되고, 전업맘과 워킹맘의 경계에서 수시로 오가다 보니 이 모든 것들이 편견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요즘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다 보니 전업주부들도 다들 한때는 한 가닥 하는 커리어우먼이었습니다. 그래서 워킹맘들을 질투하기보다는 그녀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쪽에 가깝지요. 그 대척점에 있을 것만 같은 워킹맘들도 전업맘들을 무시할 처지는 아닙니다. 학부모로서 더 많은 정보와 인맥을 쥐고 있는 전업맘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싶습니다.
저는 곧 워킹맘 처지에 놓일 후배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줬습니다. 나중에 회사에 있더라도 아이가 친구네 집에서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지 수시로 확인하고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쪽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걸 잊지 말라고요. 그러면 왕따 걱정은 없을 거라고요.
간혹 워킹맘들 중에는 자기 아이가 친구 집에서 놀고, 그 뒤치다꺼리를 그 집 엄마가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웃 전업맘이 내 아이를 돌볼 의무가 없는 게 당연한데도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그 사실을 잊게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전업맘들도 처음에는 호의로 아이를 거둬들이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고 상대방 엄마가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눈치면 슬슬 그 집 아이와 멀어질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걸 편협한 전업맘들의 왕따라고 해석해서는 곤란하지요. 그 어떤 것이건 호의를 주고받아야 균형으로 유지되는 것이 인간관계인데 이건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친 것이니까요.
전업맘과 워킹맘은 결코 적이 아닙니다. 워킹맘들은 전업맘들이 키우고 있는 딸들이 나중에 여성으로서 당당히 일을 할 수 있게 힘들게 길을 닦고 있는 사람들이고, 전업맘들은 워킹맘들의 일터의 구성원들을 후방에서 지원해 주는 인력입니다.
워킹맘이 되면 그저 폐만 안 끼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웃과 단절한 채 지내지 말고 전업맘들과 친구가 돼 보세요. 내가 너무 힘들 때는 잠깐 아이를 맡기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과일을 선물해 보기도 하고, 가끔은 주말에 아이친구들을 몽땅 데리고 영화관이라도 다녀오세요. 학부모가 되면 안 주고 안 받는 것보다 서로 주고받는 게 기분도 좋고 얻는 것도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