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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학 산책우리는 빵보다 인문학이 필요하다!
노영덕 미학자 2013년 09월호

                                                

누구나 느끼듯 미와 예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면을 지니고 있다. 미와 예술은 논리가 아니라 감성의 대상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율배반적인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미가 있는가 하면 혁신적이고 낭만적인 미가 존재한다. 조화, 균형, 자제, 근엄 등의 느낌을 동반하는 미가 고전미다. 수적 비례에 의거한 이런 미는 마치 객관적인 사물의 속성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반면 객관적인 수적 비례와는 무관히 강력한 감정이나 도취에 의해 내적으로 창안되는 미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낭만미다. 여기서는 직관, 느낌, 충동, 열광 등의 개념이 도출된다. 이것은 상상력이나 영감 등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창출해내는 주관적인 미이다.

 

고전과 낭만, 예술의 영원한 쌍두마차


미의 이러한 이원성에 따라 예술의 모습이 달라진다. 조화와 수적 비례가 지켜진 이상적인 미를 객관적으로 정해놓고 그것을 엄격한 규칙에 따라 작품에 재현해내고자 하는 예술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을 무시하고 신비한 창조동인에 의해 창작을 하며 새로운 미를 구사하고자 하는 예술 또한 가능한 것이다. 고전미를 구사한 예술의 대표적인 경우는 고대 그리스기의 예술, 그리고 르네상스, 또 근대의 신고전주의를 꼽을 수 있다. 낭만미를 구사하고자 했던 예술은 낭만주의와 바로크라고 할 수 있으며 중세의 예술 또한 현세의 규정적 미보다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미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같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낭만주의 이후로는 객관적 외부 사실의 수용인가, 주관적 내면의 표출인가의 문제로 기준이 바뀌고 현대에 와서 이는 다시 초월과 내재라는, 낭만과 고전의 또 다른 양태로 변형되어 예술에 나타나고 있다.


미와 예술이 이렇게 두 가지 경향으로 양분되는 이유는 그 주체인 인간 존재 자체가 이중적이고 모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월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내재에의 욕망을 지니는 양면적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합리적인 이성을 따르고자 하면서도 또한 비합리적인 감성에 이끌리는 부조리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와 같은 이중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미와 예술은 한마디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것이다. 예술이 인문학 범주에 포섭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대학에서 무리한 학과 구조조정으로 특정 학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금을 받으려면 교육부에서 행하는 대학평가 순위에서 하위로 평가되어서는 안 되는데,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 중 중요한 요소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취업률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취업률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순수학문, 기초과학의 학과들이 속속 문을 닫는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정말 우울하다. 대학의 순위를 정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고, 더욱이 취업률을 중심으로 그렇게 한다고 하니 더욱 개탄스럽다. 아예 나라가 나서서 학문탐구의 상아탑을 취직이 목적인 취업준비 기관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꼴이다. 뭔가 애쓰고 노력하고 투자해서 빨리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면 무시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경박한 풍조가 문제라고 본다. 이런 사고방식이 순수학문, 기초과학에 대한 등한시로 이어진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이 당장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라. 칼이 중요한가? 칼을 쥐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가? 그래서 모든 것을 잃고 길에 나앉은 노숙자들에게 의식을 변화시켜 새로운 용기를 주는 것은 빵이 아니라 인문학 강좌라는 신문기사를 접할 때 인문학의 가치는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결국은 인간의 마음, 정신, 내면세계가 중요한 것이다.


인문학 소양 키워주는 예술 교육 절실해


이렇게 볼 때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나라에서 예술이 왜 ‘예체능’이라는 교과목으로 분류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무슨 기준으로 예술과 체육이 같은 범주의 것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이는 명백히 오류요, 예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라고 본다. 이런 시각은 예술을 기능적인 것으로만 보는 편협함 때문이다. 예술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에 표현 수단인 기능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본질이 되는 정신이 보다 중요하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정신과 관객의 정신을 연결해주는 매개물이다. 예술가의 정신에 용해되어 있는 인간과 삶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통해 관객의 정신에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감과 깨달음을 낳고 감동을 이끌어낸다.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해가 없다면 인간을 감동시키는 예술작품은 탄생될 수 없다. 어쩌면 예술이란 기능적인 솜씨로 발휘되는 인문학적 성찰 내지 직관이요, 예술가는 솜씨가 아주 좋은 인문학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도 예술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 예술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예술대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시켜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술교육은 한낱 기술자 육성 프로그램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음대나 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한 손에 악기나 붓을 쥠과 동시에 다른 한 손에 인문학 서적을 쥐게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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