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블롬캠프 감독은 4년 전 <디스트릭트 9>(2009)을 자신의 첫 장편 영화로 내놓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 살. 세계영화계의 변방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젊은 감독이 만든 저예산 장편 데뷔작은 이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포함 4개 부문 후보에 오르죠. 대체 그 영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했던 걸까요?
영화의 얘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이 나타납니다. 우주선 안에는 지치고 병든 외계인들만 가득하죠. 지구를 ‘침공’한 게 아니라 지구에 ‘표류’한 것뿐인데도, 지구인들은 외계인들을 좁은 땅에 잡아 가둔 뒤 그곳을 ‘디스트릭트 9(District 9)’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8년이 흘렀습니다.
힘없고 굶주린 250만 이주 외계인이 디스트릭트 9의 철조망 안에 격리된 채 온갖 차별과 박해를 감내하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정부가 도심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가난한 외계인들을 시 외곽으로 이주시키려 합니다.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외계인과 강제철거로 몰아세우는 지구인. 둘이 충돌하는 와중에 그만 정체불명 바이러스에 감염된 철거 용역 비커스(샬토 코플리 분)가 점차 외계인의 형상으로 변해가고, 그때부터 영화는 긴박한 도주극에서 흥미진진한 활극으로, 기어를 바꾸며 점점 속도를 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란 감독은 어릴 적 목격한 ‘흑백분리 정책’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실제로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기 이전의 남아공엔 ‘디스트릭트 6’라는 유색 인종 거주 지역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영화 속 ‘디스트릭트 9’에 사는 외계인은 현실의 ‘디스트릭트 6’에 살던 가난한 사람, 나아가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은유이자 상징인 셈이죠. 게다가 감독은 외계인 거주지역의 남루한 풍경을 CG로 만들어 넣지 않고, 실제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남아공 판자촌에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웬만한 리얼리즘 영화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인 비주얼을 얻기 위해서. 미래를 상상하는 척 실은 현재를 폭로하는 스토리를 전하기 위해서.
자, 그렇게 만든 비범한 데뷔작 <디스트릭트 9>의 성공을 발판으로 닐 블롬캠프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합니다.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로 월드 스타가 된 배우 맷 데이먼을 앞세워 여름 블록버스터를 만들죠. 그게 바로 4년 만에 선보인 감독의 두 번째 SF 영화 <엘리시움>입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서기 2154년의 지구를 상상했습니다. 가난한 대다수는 황폐해진 지구에 남아 있고, 돈 많은 상위 1% 부자들은 모두 우주로 거처를 옮긴 미래. ‘축복받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사는 낙원’으로 묘사된 그리스 신화 속 엘리시움(Elysium)의 이름을 딴 부자들의 피난처는, 가난과 질병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꿈의 공간이죠. 축복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죽기 전에(!) 사는 천상의 낙원입니다.
반면 땅위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지구인들에게 엘리시움이란, 항상 눈에 보이지만 절대 가볼 수는 없는, 영원한 신기루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감히 엘리시움에 침투하겠다고 마음먹은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 분)의 여정이 순탄할 리 없죠. 맥스처럼 가난하고 병든 사람은 돈 많고 겁도 많은 부자들이 가장 멀리하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잉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영화보다 규모도 커지고, 예산도 많아지고, 배우의 몸값도 올라갔어요. 그런데도 <엘리시움>은 여러 모로 <디스트릭트 9>을 닮았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는 척 실은 ‘우리의 현재’를 폭로하는 이야기가 닮았습니다. 웬만한 리얼리즘 영화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인 비주얼도 닮았습니다. <디스트릭트 9>을 만들면서 외계인 거주지역의 남루한 풍경을 실제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남아공 판자촌에서 찍었다고 말씀드렸죠? <엘리시움> 역시 거의 모든 인류가 가난하게 사는 지구의 황폐한 미래를 CG로 만들어 넣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이미 충분하게 황폐한 삶을 살고 있는 실제 멕시코시티의 빈민가 풍경을 담았습니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해 가을, <디스트릭트 9>이 개봉했습니다.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외계인들 처지가 용산 철거민들의 처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라간 건 분명 지구인들이었는데 그들을 외계인처럼 몰아세운 나라의 국민이어서 특히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엘리시움>은 빈부격차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커져가는 2013년, 바로 지금 개봉했습니다. ‘공존’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오직 ‘생존’의 악다구니만 남은 영화 속 지구인들 처지가 우리 모두의 처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지구인끼리 서로서로 외계인 대하듯 경계하고 배척하는 삶이 어느 새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나라의 국민이어서 특히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죠.
‘디스트릭트 9’에서 쫓겨난 외계인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은유였습니다. ‘엘리시움’에 갈 수 없는 운명을 처음부터 타고난 99%의 지구인은 누구의 은유일까요? 그게 당신은 아닐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