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백자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그릇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약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조선왕조의 왕립가마가 위치한 사옹원의 분원인 경기도 광주에서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높이 40cm가 넘는 원형의 무늬 없는 그릇이다. 경기도 광주는 조선왕조 내내 관요가 위치하면서 현재 알려진 가마터만 340여개에 이르는데 특히 이 가운데 금사리에서 구워진 대형 그릇 중 이 달항아리가 많이 나타난다. 조선왕조 후기 영조와 정조의 치세가 이어진 18세기를 흔히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고 부를 정도로 이 때 새로운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 기간 농법의 발달과 제도정비를 통해 이룩한 경제적 안정이 결정적이다. 이 시기의 회화에서 진경산수가 나타나 이전 회화와 큰 차별점을 가진다면 단연 도자기에서는 백자 달항아리를 비롯한 유백색 혹은 설백색이라고 부르는 우윳빛의 금사리 도자를 대표적인 명품으로 꼽을 수 있다.
백자 달항아리, 조선백자의 대표작 되다
왕실가마는 경기도 광주 내에서도 연료의 수급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위치를 옮겨가며 도자를 구워내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조선백자는 17세기의 여러 모색기를 거치면서 18세기에 들어 광주 퇴촌면 관음리(1680~1717년)와 실촌면 오향리(1717~1720년)를 거쳐 남종면 금사리(1721~1751년)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금사리에서는 왕실도자기만 만들지 않고 장인들의 생계를 위해 사번(私燔) 즉, 민간수요에 대응하는 도자기도 함께 만들면서 달항아리를 많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조선왕실 가마의 종착점은 남종면 분원리로 1884년까지 약 130년간 지속하게 된다.
백자 달항아리는 국보 3점, 보물 6점 등 9점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같은 곳에서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진 문화재가 이렇게 많이 지정된 것은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는 백자 달항아리에 열광할까? 그에 대한 대답 중 하나는 우리가 가진 미의식의 변화에 있다. 달항아리는 모두 지정번호가 뒤편에 있다. 사진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달항아리는 보물 1437호이며 다른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달항아리도 지정번호가 비슷하다. 이것은 이 백자들이 최근에 지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로 대부분이 1990년대 이후에 지정됐다. 달항아리가 가지는 넉넉하고 풍만한 형태 그리고 한 번에 굽기에 너무나 큰 크기 때문이다.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접합해 구워내는 동안 중앙부에 보이는 미묘한 형태상의 변화들이 눈처럼 하얀 유색과 또 기면에 나타나는 색조의 미묘한 변화와 어울려 전체적으로 풍성하면서도 다채롭고 담백한 풍만함에 우리가 모두 매혹된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도자인 청자와 백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청자의 비색과 다양한 형태, 상감공예가 먼저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백자는 청자보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백자 중에서도 조선왕조 전기의 엄정한 형식미와 화려한 청화그림을 올린 것들이 먼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구와 전시 등을 통해 조선 후기 백자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게 됐고 오늘날 중국, 일본의 자기와는 확연히 다른 18세기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게 됐다.
달항아리를 사랑한 사람들
이러한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찬탄의 대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흰 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 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고 표현했으며 한국 고고학계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김원룡 선생은 “백자의 미는 이론을 초월한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라고 하며 완벽하지 않은 원의 형태와 고르지 않은 면의 표현에서 우리 조상들이 자연 속에서 체득한 고유한 미의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인 김환기 선생은 일제강점기부터 우리 고미술에 심취했고 1950년대 다른 화가들이 서양의 화풍을 탐구할 때 오히려 달과 매화, 백자항아리를 소재로 한국 미의 원형을 찾아갔다. 특히 그는 백자 달항아리를 너무나 사랑해 실제로도 많은 유물을 수집하기도 했다. 지금은 백자 달항아리의 가치가 솟구치면서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보물이 됐다. 그러나 조금만 찾아보면 이 가을밤 넉넉하면서도 푸근한 달과 같은 이 아름다움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적지 않으니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 보면 좋을 것이다.
먼저 조선시대 도자의 흐름을 대표적인 명품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보려면 국립중앙박물관 3층 백자실을 추천한다. 아울러 주말 교외나들이를 겸한다면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경기도자박물관과 분원백자자료관도 좋다. 달항아리의 최고 명품을 찾는다면 국보 310호 달항아리를 소장한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본 309호를 전시하는 삼성미술관 리움 방문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