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은 난해하다고들 한다. 추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회화는 물론이고 현실과 가상이 뒤섞이며 내러티브(narrative)가 일관되지 않거나 아예 아무런 스토리텔링도 없는 작품이 오히려 잘된 문학이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한다. 음악 역시 특정 멜로디 라인이 없는, 마치 소음 같은 음악이 현대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연주된다. 게다가 장르 간의 혼합이 활발히 일어남으로써 이제는 숫제 장르의 해체를 진단할 지경까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현대예술
예술이 전에 없이 난해해지기 시작한 것은 모더니즘 예술이후부터다. 모더니즘은 기발함과 새로움을 위해 형식실험에 몰두했던 시기였다. 자연히 지나치게 삶과 유리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됐고 이는 결국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현대예술을 난해하게 만든 여러 요인 중 하나는 미(美)와 예술의 분리다. 또는 현대예술이 그 표현범위를 전에 없이 넓혀 전통적으로 미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들까지도 표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추(醜)의 개입이라고 할 만하다.
예술의 거부대상이었던 추가 작품에 적극적으로 구사되기 시작한 것은 고전주의에 대한 일탈을 꾀했던 바로크 때부터다. 엄격한 규칙에 따라 자연을 모방하는 것을 강조한 고전주의 예술이 데카르트적 이성의 예술이라면 이에 대립되는 바로크는 감정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크가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을 시도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과장과 왜곡이 용인됨으로써 추가 포섭될 수 있었다.
낭만주의 역시 무한한 상상력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기이한 것을 그려내길 좋아했기 때문에 추가 자연히 끼어들 수 있었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도 추를 예술에 끌어들인 예술사조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를 묘사해내야 할 객관적인 사실과 자연에는 오로지 미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매우 적극적으로 추가 예술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표현주의 전후에서다. 특히 표현주의는 반(反) 문명을 표방하고 원시적인 것을 그려냄으로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상에서 벗어난 격렬한 감정이나 내적 심상의 표출을 목적으로 했기에 자연히 추를 많이 다루게 됐다.
표현주의 이후 현대예술은 근대 이전과 달리 추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을 띤다. 이제 추는 버젓이 예술이 표현할 미적 범주의 하나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은 잘해야 자극이요, ‘공포와 충격’만을 줄 뿐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역겹고 추하기까지 하다.
추나 무질서를 인간성의 중심으로 인식
사실, 예술이 미와 만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원시시대에 예술은 주술과 하나였다. 주술행위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다. 아름다우면 물론 더 좋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덤으로 주어지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최초의 예술은 미와 무관했던 것이다. 그 후 그리스 시절, 이제 예술은 기술과 하나가 됐다. 그 명칭도 아트(art)가 아니라 테크네(techne)였다. 그것은 예컨대 구두 만드는 기술처럼 자체적인 제작규칙에 의거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일부 학문이었다.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술 역시 아름다움과는 별 관련이 없다.
고대 그리스 때의 예술작품에 구사된 미는 인식론적, 기하학적인 것으로서 근대 이후의 미와는 다른 개념이다. 중세가 되면 예술은 종교의 시녀가 된다. 그것은 성경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물질세계가 아니라 신의 영광을 위해, 신을 찬양하기 위해 활용된 도구였다. 종교 또한 미적가치를 구현해내려고 노력하는 분야가 아니다. 그것은 미와는 또 다른 세계다. 중세 천년 동안에도 예술은 미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예술은 지식과 가까워졌다. 원근법이 연구돼 회화에 활용됐고 인체 해부로 얻은 지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지식과 학문은 미와는 별개의 것이다.
이렇게 미와 무관하던 예술이 18세기에 와서 소위, 파인아트(Fine Arts) 개념이 탄생하면서 드디어 미와 만난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예술이다. 종교, 기술, 학문 등에서 독립해 순수 관조의 대상으로서 미적가치를 담지하며 그것으로서 소통되는, 어떤 ‘즐길 거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미는 예술의 본래 파트너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와 예술 간의 결별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겨우 200년쯤 전에 탄생한 신생 개념에 현대인들은 여전히 푹 빠져 있다. 모더니즘 이후 이미 예술은 잠깐 있었던 미와의 밀월을 끝냈는데 관객은 아직도 18세기적 타성에 젖어 예술을 미와 관련된 어떤 것으로만 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 미를 찾으려 하니 예술이 난해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니면 추를 끌어안지 못하는 너무 협소한 미만을 예술에서 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현대에 와서 예술은 미와 분리되고 추와 결합하는 추세다. 이것은 과거 비정상적이고 예술적으로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되던 추나 무질서 등이 이제는 예술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오히려 인간성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도래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전까지 진, 선과 결합됐던 고대적 미 그리고 칸트 이후 탄생한 독립된 형식으로서의 근대적 미 등을 대체할 어떤 새로운 미가 모더니즘 이후 예술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지켜볼 일이다. 어쨌거나 미와 예술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