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것을 보는가, 보는 것을 믿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는 것을 본다. 다시 말해 ‘자신’이라는 필터(filter)를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가진 정보의 편파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지식과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단순화해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는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믿음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많이 활용되는 표현기법 중 하나가 패러디(parody)다. 패러디는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 기존 작품과는 다른 재미와 놀라움을 주는 창작활동의 한 방법이다.
대중문화의 꽃으로 통하는 영화는 소비자가 가장 많은 연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가장 빈번하게 패러디되는 장르다. 1초에 7개씩 판매된다는 세계적 장난감 브랜드인 레고(lego)도 최근 영화 패러디 광고로 큰 주목을 받았다.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12편을 레고로 똑같이 재현해낸 것이다(그림 1). <반지의 제왕>, <삼백>, , <해리포터>, <인디아나 존스> 등 널리 알려진 유명 포스터를 레고로 새롭게 재현한 이 광고는 아기자기 귀여운 레고의 모습과 멋있는 영화 장면이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크게 인기를 모았다. 비주얼뿐 아니라 영화 제목이나 카피들도 비슷하지만 위트 있게 레고식으로 바꾸면서 작은 부분까지 보는 재미, 읽는 재미를 주고 있다. 특히 이 광고는 레고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다른 영화 포스터에 대한 패러디 콘텐츠까지 확대 재생산되면서 광고 이상의 기대효과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힘을 받아 레고는 지난해 창립 55주년을 기념해 또 다른 패러디 광고를 집행했다. 일명 수수께끼 패러디 광고(그림 2)가 그것이다. 심플한 라인 드로잉 위에 레고 블록들이 놓여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노란 블록과 회색 블록, 바닥에 그려진 네 개의 라인 위에 걸어가듯 놓인 블록 4개, 그리고 거대 블록 옆에 늘어선 작은 블록들. 과연 이것은 무엇을 패러디한 광고일까? 자유롭게 정답을 상상해 보길(답은 이 글의 마지막에 있음).
LG그룹 PR광고처럼 유명 미술 작품들도 광고 패러디의 단골 소재 중 하나다. 이번에 소개할 광고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이하 M+FG)라는 프랑스 청바지 브랜드다. 아내 마리떼와 남편 프랑소와 저버에 의해 탄생된 M+FG는 1964년 런칭 이래 최초의 스톤워싱(stone washing) 기법, 최초의 배기 진(baggy jeans) 디자인 등으로 평범한 진에 혁신성과 실험성을 더한 캐주얼 브랜드로 유명하다. 프랑스 패션계의 이단아로 통하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어가듯 M+FG의 광고들은 늘 파격과 이슈를 몰고 다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포스터 광고도 그중 하나다(그림 3). 특이한 점은 <최후의 만찬>에서 보여준 예수와 제자들을 모두 여자로 바꿔 버린 것이다. 게다가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요한을 막달라 마리아로 본 것처럼 요한의 자리에 청바지를 입은 반라의 남자를 배치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2005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 동시 집행됐던 이 광고는 급기야 가톨릭 교단과 소송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들의 신앙심에 공격적 영향을 미친다.’는 가톨릭 교단의 주장과 ‘성경이 아니라 그림에 기초해 현대 사회의 여성상을 묘사한 패러디’라는 M+FG의 주장이 엇갈린 가운데 결국 그해 2월 이탈리아 밀라노시 법원으로부터 철거명령을 받게 된다. 이후 3월 프랑스 파리 법원도 같은 판결을 내림으로써 전량 폐기 처분됐다. 비록 광고물은 철거라는 수모를 겪었지만 이를 둘러싼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M+FG라는 브랜드는 더 큰 관심을 끌게 됐으니 화제성이라는 광고의 일차적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1900년대 M+FG가 있었다면 2000년 초반 젊은 층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청바지가 있다. 바로 리바이스 엔지니어드 진(Levis Engineered Jean)이다. 전 세계적인 제품의 인기와 더불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편의 광고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집행됐던 이 광고는 헨델의 ‘사라방드(Sarabande)’가 BGM으로 웅장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엔지니어드 진을 입은 남녀 주인공이 벽을 뚫고 달려가 결국 자유를 향해 날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이 광고는 각종 광고제를 휩쓸었고 여러 광고들로 패러디됐다. 그중 대표적 광고가 ‘The Face’라는 이탈리아 소재의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tion) 광고다(그림 4).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헨델의 음악이 비장미 있게 흐르는 가운데 한 명의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다. 문을 박차고 마치 리바이스 광고의 한 장면처럼 달려갈 때 그의 움직임을 카메라가 박진감 있게 쫓아간다. 광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벽을 뚫고 나와야 하는 긴박한 순간, 어이없이 텅 빈 공간만이 나타나고 깜짝 놀란 카메라가 뒤로 움직이자 벽에 부딪쳐 대(大)자로 뻗어 있는 남자의 코믹한 모습이 보인다. 그때 흐르는 한 줄의 자막. ‘후반업체가 필요하신가요?(Need a Post Facility?)’ 여기서 후반업체란 앞에서도 언급한 포스트 프로덕션을 가리키는 말로 편집, 컴퓨터그래픽(CG) 등 촬영 이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마무리 작업을 뜻한다. 리바이스 광고처럼 멋진 영상도 후반업체의 도움 없이는 썰렁하기 짝이 없는 몸 개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쉬우면서 재미있게 와 닿는다. 이 광고는 그해 칸느 광고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면서 본 작품에 비견되는 패러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광고계에선 자주 모방과 패러디 사이에 종종 시비가 붙는 경우가 있다. 남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둘은 태생부터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훌륭한 패러디 작품들은 이런 세간의 논란을 불식시킨다.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인용하고 캠벨수프의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하지만 그 누구도 앤디 워홀의 작품을 모방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